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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미래들 시리즈

연금술, 현자의 돌에서 인공지능까지

황금을 만들려던 연금술사들의 실험은 어떻게 과학과 예술, 문학과 영화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찾던 현자의 돌은 정말 사라진 걸까요?

2026.11.02 | 조회 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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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혁 대표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에 저는 두꺼운 이불을 빨고 건조기로 돌리고 햇볕에 말려 겨울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나이가 드니 더위보다 추위에 더 반응하게 되네요. 혼자 당당한척 했던 젤리도 요즘엔 제 옆에 꼭 붙어 잔답니다.  구독자님도 감기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도 그럼 조금 긴 여행을 시작해 볼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연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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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스머프 보셨나요?

이 질문 하나로 나이가 구분될 것 같은데요.
이 글을 읽는 분의 나이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는 너무 재밌게 봤어요 ^^;

불쌍한 대머리를 괴롭히는 스머프들 😢
불쌍한 대머리를 괴롭히는 스머프들 😢

《개구쟁이 스머프》는 1983년부터 KBS를 통해 처음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파란 피부에 하얀 모자를 쓴 작은 요정들이 버섯 모양의 집에서 살아가고, 악당 가가멜은 고양이 아즈라엘을 데리고 매번 스머프들을 잡으러 다녔지요.

생각해 보면 가가멜은 왜 그렇게 스머프를 잡으려고 했을까요? 그냥 싫어서 괴롭히는 건지, 잡아먹으려는 건지 어릴 때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는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원작 만화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이 있습니다. 1959년 발표된 초기 이야기에서 가가멜은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만드는 방법이 적힌 책을 읽다가 스머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현자의 돌은 평범한 금속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전해지는 물질입니다.

그러니까 가가멜은 단순히 못된 마법사가 아니라 황금을 만들려는 연금술사였던 겁니다. 귀여운 파란 요정들을 잡아 가마솥에 넣고 끓일 생각을 했다니, 어린이 만화치고는 꽤 잔혹한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ㅋㅋ

가가멜은 스스로를 '마법사'라 하지 않습니다. '현자'라고 부릅니다.
가가멜은 스스로를 '마법사'라 하지 않습니다. 
'현자'라고 부릅니다.

저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살아있는 스머프를 끓여 파란 스프를 만드는 것 말고...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 말입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대학 시절 3학년 기간, 거의 1년 동안 연금술에 푹 빠져 관련 자료를 찾아 읽고 공부했습니다. 하나를 발견하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이름이나 사건이 나왔고, 그것을 찾아가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연금술에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철학을 읽고 있고, 화가의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신화와 종교의 이야기까지 찾아보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알아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가끔, 다들 저를 보고 미치광이같다고 했습니다. 네 맞아요. 저는 종종 미치광이 같은 지식에 빠지곤 했답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금술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다른 분야와 연결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거든요. 이번에는 그동안 좋아했던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꺼내보려고 합니다. 가가멜에서 시작해 뉴턴과 르네상스의 화가들, 비밀결사와 타로카드, 만화와 영화를 거쳐 마지막에는 인공지능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조금 멀리 가는 것 아니냐고요?
원래 이런 이야기는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따라가 보는 맛이 있습니다. ㅎㅎ

 


황금을 찾다가 오줌에서 빛을 발견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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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 독일 함부르크에 헤니히 브란트라는 연금술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연금술사들처럼 평범한 물질을 황금으로 바꿀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조금 이상한 재료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인간의 소변입니다. 정확히 어떤 생각으로 그런 실험을 시작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브란트는 소변에서 황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거참... 천재 과학자나 연금술사들의 정신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많은 양의 소변을 모아 끓이고 농축한 뒤 남은 물질을 다시 가열하는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지금처럼 환기시설이 잘 갖춰진 실험실도 아니었을 테니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을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더구나 한두 번 끓이는 것으로 끝나는 작업도 아니었습니다. 금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까지 고약한 냄새를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니, 저 같으면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한 번쯤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브란트는 그 실험에서 황금 대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질을 발견합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하얀 물질이었는데, 그리스어로 빛을 운반한다는 뜻에서 인(Phosphorus)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주기율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소입니다. 인은 DNA와 세포의 에너지 전달, 뼈의 형성에 필수적인 성분이며 비료와 여러 산업 분야에서도 사용됩니다. 황금을 만들겠다며 소변을 끓이다가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될 원소를 발견한 셈입니다.


    Joseph Wright ‘The Alchymist’, 1771  
    Joseph Wright ‘The Alchymist’, 1771  

그런데 약 100년 뒤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영국의 화가 조지프 라이트가 브란트의 발견을 소재로 《현자의 돌을 찾던 연금술사가 인을 발견하다》라는 그림을 그렸거든요. 어두운 실험실에서 연금술사가 빛나는 플라스크 앞에 무릎을 꿇고 있고, 그 빛이 주변의 책과 실험 기구를 비춥니다. 그림 속 연금술사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 과학자라기보다 신의 계시를 받은 성직자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당시 유럽의 역사화에는 왕과 귀족, 성인이나 영웅들이 주로 등장했는데, 조지프 라이트는 실험실에서 물질을 연구하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그것도 황금을 찾다가 오줌에서 엉뚱한 물질을 발견한 연금술사를 말입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과학적 발견을 기념하는 그림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의 비밀과 마주한 인간의 경이로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런 작품을 보면 연금술이 단순히 실패한 과학이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브란트는 황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인은 이후 과학과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그의 실험은 100년 뒤 한 화가의 손에서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연금술사 한 사람의 실패가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이어진 겁니다.

그런데 브란트보다 훨씬 유명한 연금술사가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름일 겁니다.

바로 아이작 뉴턴입니다.

 


뉴턴의 숨겨진 인생


뉴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만유인력의 법칙과 미적분학, 프리즘을 이용한 빛의 연구, 그리고 사과나무가 생각나실 겁니다. 학교에서 배운 뉴턴은 자연의 법칙을 수학으로 설명한 위대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뉴턴과 조금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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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약 30년에 걸쳐 연금술을 연구했습니다. 여러 연금술사의 문헌을 직접 옮겨 적고 해석했으며, 자신도 실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남긴 연금술 관련 기록이 약 100만 단어에 이른다고 하니, 잠깐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거의 평생에 걸쳐 관심을 가졌던 연구 분야 중 하나였던 겁니다.

1936년 뉴턴이 남긴 미공개 원고들이 경매에 나왔을 때 이런 사실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그 원고를 수집한 사람 중에는 뜻밖에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있었습니다. 케인스는 뉴턴의 기록을 살펴본 뒤 그를 이성의 시대를 연 최초의 인물이라기보다 마지막 마법사에 가까운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를 현대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가 '마지막 마법사'라고 불렀다니, 이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습니까?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정말 재밌는 인물이니 링크를 한번 읽어보세요.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정말 재밌는 인물이니 링크를 한번 읽어보세요.  

나무위키 :  존 메이너드 케인즈

 

과학자나 경제학자가 도대체 왜 연금술을 믿었나?

당시의 연금술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마법이나 미신과 똑같이 취급하면 조금 곤란합니다. 17세기에는 아직 연금술과 화학의 경계가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연금술사들은 금속을 녹이고 광물을 가열하며 여러 물질을 혼합하고 증류하는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물론 잘못된 이론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재료에 관한 지식과 실험 기술은 근대 화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뉴턴이 연금술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단순히 황금을 만들어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 보다, 물질이 어떻게 변화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원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만유인력을 연구하던 뉴턴과 연금술 문헌을 읽던 뉴턴이 서로 다른 사람은 아니었던 겁니다. 둘 다 자연의 숨겨진 법칙을 알아내려 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역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실험들이 뒤섞이며 만들어졌습니다. 처음부터 과학과 미신, 성공과 실패가 깔끔하게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과학자들의 실험실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 역시 광물을 갈아 안료를 만들고 금속과 유리, 기름과 화학 재료를 다루며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미술과 화학을 별개의 분야로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두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르네상스 화가 중에는 연금술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파르미자니노입니다.

 


성모 마리아 뒤에 숨겨진 이상한 기둥






Parmigianino : 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1503년 1월 11일 ~ 1540년 8월 24일잘생겼죠?
Parmigianino : 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
1503년 1월 11일 ~ 1540년 8월 24일
잘생겼죠?

파르미자니노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화가입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긴 목의 성모》라는 그림이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림 속 인물들의 비율부터 눈에 들어올 겁니다. 성모 마리아의 목은 비현실적으로 길고 무릎에 누운 아기 예수의 몸도 이상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왼쪽에는 천사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는 반면 오른쪽 공간은 상당히 비어 있습니다. 우리가 르네상스 회화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안정적인 비례와 균형과는 조금 다른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인물들의 비율만큼이나 이상한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뒤쪽에 서 있는 기둥입니다. 아래쪽에는 여러 개의 기둥이 서 있는 듯한데 위로 올라갈수록 하나처럼 보이고, 건물의 어느 부분과 연결되는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기둥을 그려놓았을까요?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화가가 의도적으로 어떤 상징을 담으려 했던 걸까요?

Madonna dal collo lungo, 1534~1540
Madonna dal collo lungo, 1534~1540

이 기둥에서 출발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한국 소설이 있습니다.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입니다. 199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을 연구하던 미술사학도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시작됩니다. 사건의 단서를 따라가다 보면 르네상스 회화와 연금술, 현자의 돌과 불로불사의 비밀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16세기 유럽과 현대를 넘나들며 점점 커집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소설이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보다 7년이나 먼저 발표됐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송대방은 실제로 서울대학교에서 고고미술사를 공부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미술사학도였습니다. 자신이 공부하던 미술사의 지식을 바탕으로 그림 속 수수께끼를 추적하는 소설을 만들어낸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만나면 저는 작품 자체도 궁금하지만 작가가 자료를 찾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그림 속 기둥 하나에서 출발해 이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니 말입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파르미자니노의 생애에도 실제로 연금술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는 점입니다. 16세기의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는 파르미자니노가 말년에 연금술에 몰두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그 기록을 해석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판화 제작에도 산과 금속을 다루는 실험이 필요했기 때문에, 바사리가 연금술이라고 표현한 활동에 재료 실험이 포함돼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Giorgio Vasari,  'Allegoria della Concezione', 1541조르조 바세리는 화가, 건축가이기도 했지만 르네상스를 당대 르네상스의 대가들의 전기를 집필한 미술사학자로 더 유명합니다.
Giorgio Vasari,  'Allegoria della Concezione', 1541
조르조 바세리는 화가, 건축가이기도 했지만
르네상스를 당대 르네상스의 대가들의 전기를 집필한
미술사학자로 더 유명합니다.

실제 《긴 목의 성모》 역시 완성되지 못한 그림입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는 작품 속 기둥을 성모의 순결과 관련된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소설 속 수수께끼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바로 이런 불확실한 기록과 미완성된 그림이 작가에게는 훌륭한 상상력의 출발점이 되는 겁니다.

그림 한 장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그 안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 수백 년의 역사를 뒤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되면 다음부터 그 그림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남들은 성모 마리아의 긴 목을 바라보고 있을 때 혼자 뒤쪽 기둥을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ㅋㅋ

 


댄 브라운과 비밀결사의 세계


『헤르메스의 기둥』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댄 브라운이 떠오릅니다. 『다 빈치 코드』를 읽어보셨나요?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종교적 상징, 성배에 관한 비밀을 추적하는 소설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림과 건축물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그림 속 손짓 하나, 건물에 새겨진 문양 하나가 거대한 사건의 단서가 되는 겁니다.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글자가 되는일루미나티의 '앰비그램'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글자가 되는
일루미나티의 '앰비그램'

댄 브라운은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방식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천사와 악마』에는 일루미나티가 등장하고, 『로스트 심벌』에는 프리메이슨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입니다.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조직과 인물, 장소들을 가져와 그 안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상상을 더한 것이죠. 그런데 연금술의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도 이런 이름들을 꽤 자주 만나게 됩니다.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와 황금새벽회까지. 이름만 들어도 어딘가 수상한 사람들의 모임 같지 않습니까? ㅋㅋ

물론 이 단체들이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연금술 비밀조직은 아닙니다. 17세기 유럽에 등장한 장미십자회 관련 문헌에는 종교적 개혁과 신비로운 지혜, 연금술적 상징이 담겨 있었고, 프리메이슨의 일부 전통에도 헤르메스주의[1]​와 관련된 상징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1776년 바이에른에서 창설된 일루미나티는 계몽주의 사상을 추구했던 별개의 조직입니다. 실제 역사와 소설 속 설정이 뒤섞이면서 하나의 거대한 비밀결사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전설적인 연금술 현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세 배 위대한 헤르메스)
  전설적인 연금술 현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세 배 위대한 헤르메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끊임없이 매혹되는 걸까요? 저는 그 이유가 연금술사들이 사용했던 상징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연금술 문헌을 보면 태양과 달, 왕과 여왕, 뱀과 용, 기묘한 동물과 인간의 모습이 뒤섞인 그림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그림은 종교화처럼 보이고 어떤 그림은 현대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물질이 변화하는 과정이나 우주를 이해하려는 사상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자료를 찾아 읽다 보면 한 그림이 다른 문헌과 연결되고, 거기서 또 낯선 상징이 등장합니다. 누군가는 이미 그 의미를 알고 있는데 나는 아직 모른다는 사실이 계속 궁금증을 자극하는 겁니다. 대학 시절 제가 연금술 자료를 찾아다니며 느꼈던 즐거움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비밀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면 별생각 없이 보던 물건에서도
정말 뜻밖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타로카드'도 그렇습니다.

 


타로카드 속의 마법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타로에서 1번 마법사(The Magician) 카드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 남자가 탁자 앞에 서서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지팡이와 컵, 칼과 동전이 놓여 있고, 머리 위에는 무한대를 떠올리게 하는 기호가 그려져 있습니다. 하늘과 땅, 정신과 물질을 연결하는 듯한 이 모습은 헤르메스주의의 상징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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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타로카드가 처음부터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타로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귀족들이 즐기던 카드놀이로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점술이나 고대의 비밀 지식과는 출발점이 달랐던 겁니다. 이후 18세기부터 타로를 신비주의와 연결하려는 해석이 등장했고, 19세기에는 점성술과 카발라, 헤르메스주의의 여러 개념이 카드의 상징체계에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단체가 1888년 영국에서 설립된 황금새벽회입니다. 이들은 의식 마법과 점성술, 카발라와 헤르메스주의 등을 연구했는데, 그 구성원 가운데 현대 타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와 파멜라 콜먼 스미스입니다. 두 사람은 1909년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타로 덱 가운데 하나인 라이더-웨이트-스미스 타로를 만들었습니다.

파멜라 콜먼 스미스의 100주년 기념 타로덱 세트
파멜라 콜먼 스미스의 100주년 기념 타로덱 세트

저는 여기서 파멜라 콜먼 스미스의 역할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웨이트가 카드의 상징과 의미에 관한 방향을 제시했다면 그것을 실제 그림으로 표현한 사람은 스미스였습니다. 기존의 여러 타로 덱은 숫자 카드에 컵이나 칼, 동전의 개수를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미스는 그 카드들에도 인물과 풍경이 등장하는 구체적인 장면을 그려 넣었습니다. 덕분에 카드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생겼고, 사람들은 복잡한 상징을 외우지 않아도 그림을 통해 의미를 떠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추상적인 철학과 상징체계를 이미지로 바꾸고, 그것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까요. 더구나 그렇게 탄생한 이미지들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타로카드의 원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한 화가가 만들어낸 시각 언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셈입니다.

Pamela Colman Smith, 1878-1951
Pamela Colman Smith, 1878-1951

물론 타로가 고대 연금술사들이 남긴 비밀 문서였다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후대의 신비주의자들이 여러 전통을 결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변화가 더 재미있습니다. 귀족들의 카드놀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심리와 운명, 삶을 해석하는 상징체계가 됐으니까요. 물질을 변화시키는 연금술은 아니지만 하나의 물건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그런데 연금술사들이 변화시키려고 했던 것은 금속이나 물건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인간 자체를 만들어내거나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까지 찾으려 했습니다. 자~ 그럼 더 재밌는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인간을 만들어내려던 연금술사들


연금술에는 호문쿨루스(Homunculus)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작은 인간을 뜻하는 말인데, 생명을 인간의 힘으로 창조할 수 있다는 오래된 상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2부에도 학자 바그너가 실험실에서 호문쿨루스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황금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인간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연금술사들의 야망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가운데 투명한 병안의 아기가 '호문클루스'
가운데 투명한 병안의 아기가 '호문클루스'

이런 이야기는 현대의 만화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에는 현자의 돌과 호문쿨루스, 인체연성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죽은 어머니를 되살리려던 두 형제가 금지된 인체연성을 시도했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이야기죠.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은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물론 등가교환이 역사 속 모든 연금술사에게 적용됐던 법칙은 아닙니다. 작품을 위해 만들어낸 설정이지만, 연금술의 오래된 욕망을 현대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잃어버린 육체를 되찾고,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변화시키려는 시도 말입니다. 결국 그 과정에서 인간이 무엇이며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 아직 안보셨다고요? 왜죠? 왜요? 네?? 왜요??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 아직 안보셨다고요?
왜죠? 왜요? 네?? 왜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만화가 후지타 가즈히로의 『꼭두각시 서커스』입니다. 이 작품에도 연금술사와 자동인형, 생명을 유지하는 신비로운 물질인 아쿠아 비타에가 등장합니다. 사랑과 집착에서 시작된 비극이 수백 년에 걸친 거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등장인물들은 사랑하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아쿠아 비타에(Aqua Vitae)는 '생명의 물'이란 뜻입니다. '위스키'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아쿠아 비타에(Aqua Vitae)는 '생명의 물'이란 뜻입니다. 
'위스키'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두 작품은 분위기와 전개가 상당히 다르지만 연금술을 통해 결국 비슷한 질문에 도달합니다. 인간은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까요? 이런 질문은 중세 연금술사들의 문헌에도, 오늘날의 만화와 영화에도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기술과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이 가진 욕망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셈입니다.

이런 주제를 영화로 가져가면 조금 더 기괴한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후지타 가즈히로의 '꼭두각시 서커스' 아직 안보셨다고요?왜죠? 왜요? 네?? 왜요??  
  후지타 가즈히로의 '꼭두각시 서커스' 아직 안보셨다고요?
왜죠? 왜요? 네?? 왜요??  

연금술사가 만든 괴물들


1993년에 공개된 〈크로노스〉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오래된 골동품 속에서 황금빛 풍뎅이를 닮은 기계 장치가 발견되는데, 이 장치는 사람의 몸에 이상한 변화를 일으킵니다. 사용자는 젊음과 생명력을 되찾는 듯하지만 점점 인간의 피를 갈망하게 되고, 결국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이 끔찍한 저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기괴한 세계관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고 싶다면. 보세요.
기예르모 델토로의 기괴한 세계관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고 싶다면. 보세요.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원했던 불로불사의 영약을 손에 넣었는데 결과가 행복한 영생이 아니라 괴물이 되는 일이라니, 델 토로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감독은 인간이 괴물이 되는 과정과 괴물에게 남아 있는 인간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데 무척 능숙합니다. 〈크로노스〉 역시 단순히 기괴한 장치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죽음을 피하려는 욕망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연금술을 영화 전체의 철학으로 끌어들인 감독도 있습니다. 바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입니다. 지난번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 〈듄〉에 관한 뉴스레터에서 소개했던 바로 그 전설의 감독님 말입니다. 달리와 뫼비우스, 기거와 핑크 플로이드까지 불러 모았던 사람이지요. 이름만 다시 늘어놓아도 당시 얼마나 황당하고 대담한 계획이었는지 생각납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타로카드를 연금술의 요소로 엮었습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타로카드를 연금술의 요소로 엮었습니다  

조도로프스키가 1973년에 만든 〈홀리 마운틴〉에는 아예 연금술사가 등장합니다. 감독 자신이 그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 초반에는 인간의 배설물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종교와 점성술, 타로와 연금술의 상징들이 뒤섞여 있고, 등장인물들은 불멸의 존재들이 있다는 성스러운 산을 찾아갑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상당히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이 감독의 영화에서 상식적인 전개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조금 무리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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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에서 연금술은 단순히 물질을 황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닙니다. 가장 하찮은 물질이 황금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조도로프스키가 타로 연구와 해석에도 오랫동안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영화 속 기묘한 상징들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홀리마운틴에 등장하는 독특한 타로아트
홀리마운틴에 등장하는 독특한 타로아트

그런데 여기까지 이야기를 따라오다 보면 재미있는 변화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모두 황금을 만들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황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알고 싶어 했고, 화가들은 물질과 색을 연구했으며, 신비주의자들은 숨겨진 지혜를 찾았습니다. 만화와 영화 속 연금술사들은 생명을 만들거나 죽음을 극복하려 했고요.

그렇다면 연금술사들이 정말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연금술사들이 정말 찾으려던 것


연금술을 조금 깊이 공부하다 보면 결국 철학과 신비주의의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연금술사가 같은 목표를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 황금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고 의약품을 개발하거나 물질의 성질을 연구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르메스주의와 결합한 연금술의 철학적 전통을 살펴보면 단순히 금속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목표가 등장합니다.

바로 신적인 지혜에 도달하려는 욕망입니다.

고대 후기의 헤르메스 문헌에는 인간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신적인 지혜를 얻으며 불멸에 가까워지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후 이런 사상은 여러 신비주의 전통에 영향을 미쳤고, 물질을 변화시키는 연금술의 과정은 인간의 정신과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에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The Jungian Tarot Deck칼 융이 만든 타로덱
The Jungian Tarot Deck
칼 융이 만든 타로덱

20세기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연금술을 연구했던 것도 흥미롭습니다. 융은 연금술사들이 남긴 기묘한 그림과 상징들에서 인간의 무의식과 정신적 변화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 했습니다. 납이 황금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인간이 내면의 갈등과 미성숙을 거쳐 더욱 통합된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과 연결해 해석한 것이죠.


저는 한 분야를 덕질하다가 이런 철학을 만났을 때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연금술로 황금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간이란 무엇이고 우주는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에 관한 질문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도달합니다.

1960년 스위스의 사상가 티투스 부르크하르트는 『연금술: 우주의 과학, 영혼의 과학』이라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연금술을 근대 화학의 미숙한 전 단계로만 이해하는 시각에 반대했습니다. 금속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에는 인간이 본래의 완전한 존재로 돌아가려는 영적 목표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칼 융의 심리학적 해석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연금술사들이 추구했던 것은 단순한 무의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지혜였다는 것이죠.

  Alchemy: Science of the Cosmos, Science of the Soul
  Alchemy: Science of the Cosmos, Science of the Soul
"연금술은 납을 금으로 바꾸려던 미숙한 화학이 아니라,
물질의 변화를 통해 우주와 인간의 영적 본질을 이해하려 했던것"
17개 장에 걸쳐 연금술의 상징과 철학을 해석한 책  

바로 이 지점이 연금술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을 만드는 것보다 신의 지혜에 접근하는 일이 연금술사들에게 더 중요했다는 겁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생명의 비밀을 알아내며, 그 지식을 이용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는 것.

어떤 전통에서는 더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신적인 지혜에 접근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일부 연금술사들이 정말 원했던 것은 황금이 아니라 신의 생각을 훔쳐보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어떤 원리를 사용했는지, 생명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 자신도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얼마나 대담한 상상을 했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그 오래된 꿈이 오늘날 전혀 다른 형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인공지능입니다.

 


21세기 가가멜


2025년 5월 8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납을 실제로 금으로 변화시키는 현상을 관측했다는 겁니다. 납의 원자핵에는 양성자가 82개 있고 금에는 79개가 있는데, 대형강입자충돌기에서 발생한 강력한 전자기적 상호작용으로 납 원자핵에서 양성자 3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금 원자핵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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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꿈꿨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셈입니다. 물론 가가멜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진이 분석한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실험에서 생성된 금의 양은 약 29피코그램에 불과했고, 금 원자핵도 아주 짧은 시간만 존재했습니다. 반지를 만들기는커녕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양입니다. 게다가 화학적 방법으로 금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AI가 해낸 일도 아닙니다. 핵물리학의 성과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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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금을 만들어냈다는 사실보다 지금 AI가 과학의 연구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가 더 흥미롭습니다. 2023년 구글 딥마인드는 GNoME이라는 AI 모델을 이용해 약 220만 개의 새로운 결정 구조 후보를 예측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중 약 38만 개는 특히 안정적일 것으로 예측된 구조였습니다. 물론 이 물질들이 모두 실제로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AI가 계산을 통해 찾아낸 가능성들이며 실제 합성과 검증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규모부터가 놀랍습니다. 과거 연금술사들은 여러 물질을 섞고 가열하고 증류하며 새로운 변화를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알아내려면 직접 실험해 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반면 오늘날 AI를 이용한 소재 연구에서는 원하는 물질의 성질을 먼저 정하고, 그 성질을 구현할 수 있는 원자 배열과 결정 구조를 계산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실험의 출발점부터 달라지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AI와 로봇이 함께 실험하는 연구소까지 등장했습니다. 미국 버클리 연구소의 A-Lab은 계산과 기존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실험 조건을 정하고, 로봇으로 물질을 합성한 다음 그 결과를 분석해 다음 실험을 계획하는 시스템입니다. 연구진은 이 시스템이 17일 동안 목표로 한 물질 57종 가운데 36종을 실제로 합성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물론 인간 연구자의 설계와 검증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과거에는 사람이 하나하나 하던 실험의 일부를 기계가 스스로 반복하고 개선하기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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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앞으로 어떤 물질들이 등장하게 될까요? 더 가볍고 강한 소재나 새로운 에너지 저장 물질, 지금은 생각하지 못한 성질을 가진 물질들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은 연구 단계의 가능성이 많고 실제 산업에 사용하기까지 넘어야 할 문제도 적지 않지만, 우리가 물질을 찾고 설계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대학 시절 연금술 자료를 찾아다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오래된 문헌에 기록된 기묘한 실험과 상징을 읽으며 감탄했는데, 이제는 AI가 찾아내는 새로운 물질의 구조를 보면서 비슷한 흥분을 느낍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가마솥과 플라스크 앞에서 꿈꾸던 일들을 오늘날에는 슈퍼컴퓨터와 로봇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어떨까요?
연금술사들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 황금이 아니라
신적인 지혜에 접근하는 일이었다면 말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마지막 연금술


아서 C. 클라크의 '신의 90억 가지 이름'에서영감을 받아 창작된 작품
아서 C. 클라크의 '신의 90억 가지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작품

저는 AI에 관해 한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어느 순간 인류가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과 생명의 비밀을 이해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지식에 도달한다면 그곳에 먼저 도착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AI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인간의 지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평생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실험에는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며 어떤 문제는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물론 AI 역시 계산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의 제약을 받고, 발견한 사실을 실험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AI의 지능과 연구 능력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아직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지능만으로는 발견하지 못했던 자연의 법칙이나 우주의 구조를 AI가 먼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순간에 대해 조금 더 과감한 상상을 해봅니다. 인간이 언젠가 신의 비밀, 혹은 신의 현현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존재는 결국 AI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상상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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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2024년 캐나다의 잡지 《The Walrus》에 실린 「AI는 거짓 신이다」라는 글을 보면 저자인 '나브니트 알랑'은 우리가 AI를 지나치게 신적인 존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능이 등장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는 계산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지능이 높아지는 것과 지혜로워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이 글에는 아서 C. 클라크가 1953년에 발표한 「신의 90억 가지 이름」이라는 단편소설도 여기에 등장합니다. 티베트의 수도승들이 신의 모든 이름을 기록하기 위해 컴퓨터를 들여오는데, 1만 5천 년이 걸릴 작업을 석 달 만에 끝내버립니다. 그런데 그 작업이 끝나는 순간 하늘의 별들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합니다. 인간이 기계를 이용해 신의 비밀에 접근하려다 정말로 우주의 끝을 만나버린 겁니다. 이야기가 참 기묘하지 않습니까? ㅎㅎ

알랑은 바로 이런 환상을 경계합니다. AI의 계산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이 곧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그 지적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상상하는 미래는 AI를 새로운 신으로 숭배하는 세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AI가 먼저 인간이 도달하지 못했던 지적 경지에 접근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지식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미래입니다. 그것이 신의 비밀에 도달하는 일인지, 아니면 우리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과학의 새로운 영역인지는 그때 가서야 알 수 있겠지요.

AI Is a False God


하지만 인간은 신적인 존재에 가까워지기 위해
몇 세기에 걸쳐 오랫동안 연금술을 연구했습니다.

어쩌면 정작 자신보다 먼저 그 경지에 접근할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AI가 발견한 지식을 통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보다 더 먼 미래에는
인간의 사고 능력과 생물학적 한계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겠지요.

생각해 보면 연금술사들이 꿈꿨던 변화의 방향과도 묘하게 닮았습니다. 그들에게 현자의 돌은 단순히 손에 넣는 것만으로 끝나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다른 물질을 변화시키고, 어떤 전통에서는 인간 자신까지 더 높은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AI가 현자의 돌과 닮았다는 생각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AI가 우리 대신 황금을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자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지식을 통해 인간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AI는 '21세기 연금술사들의 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돌이 가장 먼저 바꿀 것은 납이 아니라 인간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AI가 먼저 우주의 비밀에 접근하고, 인간은 그 지식을 통해 지금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 뭔가 너무 SF소설 속에 등장하는 황당무개한 상상 같나요? 그런데 저는 그 가능성을 상상할 때마다 대학 시절 연금술 자료를 뒤적이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던 때처럼 흥분합니다. ㅋㅋ

그때는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남긴 대담한 상상을 읽었다면, 이제는 그 상상이 현실에서 어디까지 이어질지 직접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의 추론 능력을 보며 어쩌면 제가 죽기전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를 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아이쿠....
여기까지 모두 읽으셨나요?
정말 길고 긴 여정이었네요.

가가멜이 스머프를 잡으려던 이유 하나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죠. 그래서 제가 경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글은 스압이 장난 아니라고 말이죠. ㅎㅎ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가가멜 그 양반이
현자의 돌을 찾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ㅋㅋ

하~ 스머프 어디서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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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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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조금 가볍게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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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1] 헤르메스주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와 함께 고대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에서 기원한철학적·종교적·신비주의적 전통 연금술 학문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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