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19. 스피커 한 대 놓으셔야겠어요.

세점사이의 열아홉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05.14 | 조회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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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열아홉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세점사이 봄 호도 어느덧 두 편이 남았네요. 슬슬 봄보다는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일주일 내내 20도가 넘어가더라구요. 완연한 반팔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며칠은 이러다가 얇은 셔츠조차 버거워지는 날이 금방 와버리겠다 싶어서 뒤늦은 셔츠 패션쇼를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다른 색깔의 셔츠를 입고 출근을 합니다. 누굴 딱히 만나는 것도 아니면서. 웃긴 일이죠.

땀을 좀 많이 흘리는 편이어서 사실 반팔을 개시한지는 좀 됐습니다. 25도가 넘어가는 날에는 고민 없이 반팔을 꺼내입어요. 안 그러면 땀이 흠뻑 나거든요. 딱히 더위를 타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사실 반팔을 입어도 땀을 삐질삐질 흘립니다. 20대 초반쯤까지만 해도 땀이 거의 안 나는 체질이었는데,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금방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간단하게 운동을 하면서부터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시기는 성격적으로도 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해요. 사진을 시작하고, 강사 일을 하던 시기였거든요. 많이 바깥쪽으로 열리게 된 시기죠. 그래서 성격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도 합니다. 변치않은 게 있다면 이런 쓸데없는 데서 상징성을 찾으려 드는 습관이겠죠.

사진을 처음 시작한 2017년의 사진들은 요즘의 사진들과 묘하게 다른 느낌이 있어요. 오늘은 카메라를 어설프게 처음 잡았던 시절, 혹은 카메라를 잡기 전의 사진들을 보여드릴게요.

카메라를 살 거란 생각도 못 했던 2016년의 사진이에요. 묘하게 요즘 찍는 것들과 일관성을 가져요.
카메라를 살 거란 생각도 못 했던 2016년의 사진이에요. 묘하게 요즘 찍는 것들과 일관성을 가져요.
카메라를 처음 사서 간 곳은 집앞 강변이었어요. 저 때 물 색깔이 참 맘에 들었더랍니다.
카메라를 처음 사서 간 곳은 집앞 강변이었어요. 저 때 물 색깔이 참 맘에 들었더랍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도 참 많았어요. 저때는 일본풍 보정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도 참 많았어요. 저때는 일본풍 보정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핸드폰 사진의 문법.
핸드폰 사진의 문법.
예나 지금이나 배경 날리는 사진은 참 좋아합니다. 저 때는 겹벚꽃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찍었네요.
예나 지금이나 배경 날리는 사진은 참 좋아합니다. 저 때는 겹벚꽃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찍었네요.
예나 지금이나 대칭을 참 좋아하구요.
예나 지금이나 대칭을 참 좋아하구요.
부산여행의 기억. 2017년에 가보고 그 뒤로 부산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부산여행의 기억. 2017년에 가보고 그 뒤로 부산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오늘 글은 스피커를 보고 어느날 문득...든 생각을 적어봤어요. 편하게 읽으실 수 있는 글일 것 같습니다.


스피커 한 대 놓으셔야겠어요.

내 방 책상 양 옆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한 쌍 있다. 내 방의 대표적 낭만이다. 각각의 스피커는 책꽂이 한 칸의 절반을 채울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꽤 몸집이 있다고 해야겠지. 나름대로 배치를 신경써서 한다고 커다란 스탠딩 스탠드까지 장만해 그 위에 올려다 놓았다. 스피커는 예전에 자취할 적에 구매한 물건인데 가족들과 함께 살다 보니 아무 때나 틀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이내 시끄럽다는 소리를 듣고 얌전히 헤드폰을 끼게 되겠지. (그치만 거실 TV소리는 항상 큰걸.) 나름대로 열심히 구색을 갖춰놓은 장비인데도 편히 쓰질 못하니 아까운 건 사실이다. 하긴, 여럿 사는 곳에서 편하게 쓸 물건은 아니다. 그런 회의감.

 

사실 쓸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피커는 공간을 꽤 차지해서. 내 작은 방 안에는 스탠딩 스탠드와 커다란 스피커 두 짝이 들어와 있다. 그 존재감이 여러모로 거슬리는 것은 당연하다.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 옷이나 가방이 스피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건 이제 익숙하다. 침대 아래 서랍 여닫기가 불편한 것도 이제 익숙해졌다. 가장 큰 이슈는 그 부피 때문에 방 안에 뭔가를 더 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협탁같은 것.

늘 협탁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침대 옆에 있으면 완벽할 것 같았다. 무엇을 올려놓을지 상상만 해도 벌써 설렜다. LP판이나 음반을 소소하게 모으고 있으니 그것들을 둘 공간으로 삼아도 좋았을 테고, 아예 그 판들을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 플레이어를 올려 두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읽다 만 책들을 잠시 올려둘 자리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방을 밝힐 탁상등이 있었어도 예뻤겠지. 그러나 의미없는 가정이다. 그 자리는 두 대의 스피커가 채우고 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사용하는. 어쩌면 내 생활패턴에는 스피커보다 더 잘 어울리는 물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위와 비슷한 내용의 볼멘소리를 가끔 친구들에게 늘어놓는다. 다 듣고 나면 친구들은 대체 왜 그걸 계속 가지고 있느냐고부터 묻는다. 그렇게 실속없이 거추장스럽게만 데리고 있을 거면 내놓는 게 맞지 않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언을 수용하지는 않는다. 사실 한 술 더 떠서, 친구들에게 집에 괜찮은 스피커를 갖춰둘 것을 권하는 편이다.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가끔 찾아오는 모종의 압도적 경험이 나를 거기에 묶어둬서. 라이브 콘서트 홀이라는 것도 결국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소리를 스피커로 내놓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어폰이나 헤드폰하고는 본질적으로 경험이 다르지. 이건 단순한 소리를 넘어서 공간에 관한 거야. 음악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몇 번은 영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예전에 공포영화 유전을 볼 때였다. 영화의 사운드에서 나오는 공간감 때문일까, 도저히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완벽하게 압도된 기분이었다. 영화가 제안하는 공간 속에 완벽히 빠져든 것 같은, 두렵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 게임을 할 때도 나는 종종 숲에 있었다 사막에 있었다 했다. 스피커는 공간의 소리를 그럴싸하게 재현했다. 체험에 있어 어떤 완결성이 생기는 느낌. 그 감각은 아무래도 포기하기 어렵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종종 이것들을 그냥 거실에다 내다놔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한다. 그러면 가족들이 그걸로 드라마를 보든 뭘 하든 할 텐데. 종종 스피커보다 LP에 먼저 관심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아마 그걸 먼저 들여놓느라 스피커 놓을 공간이 없었겠지. 그랬다면 20235월쯤에 이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LP 플레이어가 있는데 공간이 없어서 정작 괜찮은 스피커를 놓을 수가 없다고. 그건 참 웃긴 일이라고. 둘 중 어떤 게 더 가치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게 먼저 온 건 스피커다.

 

종종 그런 질문을 받는다.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을 것 같냐는 내용의. 선명하게 상상해 대답하기는 어렵다. 사진은 너무 한참 전에 내 삶에 깊이 뿌리박았다. 나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회적 활동이나 인간관계가 사진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라서 이제 사진 없이는 나를 설명할 수조차 없다. 하여 어쨌든 출근하지 않을 때도 카메라는 매일 가방 안에 들고 다닌다. 휴대용 작은 카메라까지 따로 구해서.

사실 가방 속의 카메라가 뭔가를 찍는 날이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다. 오히려 보통은 파우치 안에서 나오는 일이 잘 없지. 작은 카메라라도 가끔은 그 존재감이 부담스럽다. 핸드폰 카메라가 좋아진 시기에 굳이 카메라를 꺼내는 일은 그것대로 유난스러운 일이므로. 무거운 장비를 반복적으로 드는 오른손의 손목은 직업병으로 완전히 너덜너덜해졌고. 그러한 와중 과연 사진이 나에게 주어진 최선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래도 내 전공은 문학이긴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은 넉넉하게 돈이 되는 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찍는다. 나의 언어는 생생한 디테일을 전달하는 데에 약하고 관념세계에서 빙빙 맴도는데, 사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이 가진 생생함을 툭 던진다. 가끔씩은 어영부영 내뱉었어야 했을 긴 말들을 완벽히 대신한다. 아주 간명하게. 그런 순간들의 명쾌함을 잊을 수 없다. 물론 더 나은 수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표현으로서든 생계로서든. 미술용 브러쉬를 먼저 잡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내 삶에서 사진은 나에게 너무 큰 비중을 가진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덧붙이고야 마는 것이다. 괜찮은 음향기기를 들이는 건, 네가 듣는 모든 소리를 바꾸는 거야. 그건 꽤 의미가 있는 거라니까. (으 재수없어.) 어찌됐든 나는 내 방에 놓인 스피커의 존재가 꽤 마음에 들어서 종종 이것들이 등장하는 방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걸 본 사람들은 종종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실 그게 작동하는 건 일 주일에 한 번이면 많은 축이지만. 그럼에도 그럴싸한 낭만이다. 사람들은 스피커의 존재가 나의 일상을 훅 바꿔놓았음을 상상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일련의 생활 체험에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길을 걷다 보는 모든 대상들을, 사진 속에서 어떻게 담을지 떠올린다. 카메라 센서와 피사체에 담길 거리감을 상상하고 빛이 비치는 방향을 생각한다. 글을 쓰다 문득, 어떤 사진이 내 축축한 설명을 보송하게 대신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카메라가 시신경을 대체해버린 느낌. 뇌과학의 이야기로 보면 어느 정도는 맞을 것이다. 사진을 시작하고 가장 좋은 점은 그런 거다. 화장실 쓰레기통에 비친 빛줄기를 보고서도 단순히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 구체적인 인식 전에 이미지로서. 왜인지는 몰라도 그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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