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20. 제주도로 향하는 버릇

세점사이의 스무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05.22 | 조회 156 |
0
|

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스무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지난 호는 일요일날...발송이 되어 버렸죠...!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보니 요일감각이 무뎌져 버렸어요. 주말을 감각하지를...못하고 있네요.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덧 세점사이 봄 호의 마지막 회를 보내게 되었네요! 두 달 반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봄 호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뭇가지들이 앙상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딜 가나 풍성한 초록이 있어요. 연녹색 수국이 피어나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가끔 이렇게 시간이 가지는 부피감을 느낄 때마다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 

 

그런 부피감은...어찌되었든 기억 속에만 남아 있게 되잖아요. 저는 그게 좀 안타까운 기분이 들어서 평소에도 사진을 많이 찍는데요 (이제와서 말하기에 그다지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저의 상반기를 요약할 수 있는 사진들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대단할 건 없지만.

원래도 안경 쓰는 걸 좋아했지만 올 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눈에 뭘 걸치는 걸 즐기게 되었답니다. 돈을 많이 썼다는 소리예요 ㅎㅎㅎ...
원래도 안경 쓰는 걸 좋아했지만 올 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눈에 뭘 걸치는 걸 즐기게 되었답니다. 돈을 많이 썼다는 소리예요 ㅎㅎㅎ...
원래도 좋아하던 초록을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했구요. 사실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컬러를 크게 바꾸지 않고 몇 년간 사용했는데요, 올봄에는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컬러들을 많이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원래도 좋아하던 초록을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했구요. 사실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컬러를 크게 바꾸지 않고 몇 년간 사용했는데요, 올봄에는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컬러들을 많이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다 나았다고 생각한 손목 건초염이 재발했어요. 그래서 늘 손목보호대를 차고 다녔던 계절이기도 합니다. 아, 글을 쓰기 위해서 키보드도 새로 좋은 걸 장만했답니다.
다 나았다고 생각한 손목 건초염이 재발했어요. 그래서 늘 손목보호대를 차고 다녔던 계절이기도 합니다. 아, 글을 쓰기 위해서 키보드도 새로 좋은 걸 장만했답니다.
너무 좋아하는 가수...! 김수영님의 콘서트를 오랜만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너무 좋아하는 가수...! 김수영님의 콘서트를 오랜만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다양한 꽃들을 찾아다니며, 오, 나 꽃 좋아하네, 를 생각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벚꽃스냅은 찍어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찍어본 것 같아요. 사진을 7년을 하면서 벚꽃스냅이 처음이라니!
그리고 다양한 꽃들을 찾아다니며, 오, 나 꽃 좋아하네, 를 생각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벚꽃스냅은 찍어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찍어본 것 같아요. 사진을 7년을 하면서 벚꽃스냅이 처음이라니!

 

올봄, 앓는 소리만 내내 했는데 되돌아보니 아주 그렇기만 한 계절은 아니었네요. 평온한 기분이 듭니다. 오늘은 마무리니까, 마무리에 대한 글을 보내드릴게요. 저는 뭔가를 끝낼 때마다 제주도에 가는 버릇이 있거든요.


제주도로 향하는 버릇

일을 관둘 때면 제주도에 갔다. 원래 내가 어디 있었든지간에, 사표를 낼 즈음이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020년 여름에도 2022년 봄에도. 사실 저 때 외에도 제주도에는 꽤 자주 갔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원체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저 정도면 회전문을 돌듯이 들락거렸다고 할 수 있겠다. 여행길은 대부분 혼자였다.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혼자 있을 시간을 만들곤 했더랬다. 좀 웃기고 미안한 일이긴 했지만.

 

여러 번 갔지만 여행 경로가 다채로운 편은 아니었다. 면허가 없으니 애초에 동선이 제한적이었다. 너무 외진 곳은 거기서 다시 돌아나올 수 없으니 제외했고, 드라이브 루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곳도 제외해야 했다. 버스가 닿지 않는 곳, 중간을 이을 교통편이 없는 곳도. 아니면 너무 먼 곳도. 그러다 보니 가봤던 곳들만 자꾸 갔다. 아부오름, 새별오름, 성산일출봉 같은 곳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모두 ‘오르는’ 곳들이었다. 짧고 가파른 곳들. 몇 분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면 딱 기분좋을 만큼 머릿속이 비었다. 사람들이 있어도 산만하지 않았다.

단순함은 여행자의 특권이다. 제주에 있는 며칠동안은 머릿속에 많은 생각을 둘 필요가 없다. 혼자 있는 방에서 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미리 짜둔 동선에 따라서 대중교통을 탄다. 마음이 급해지면 택시를 타기도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걷는다. 하루에 천 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다. 아무와도 대화할 필요가 없는 하루. 집에 오면 그 날 뭘 했는지 글을 쓰거나 아이패드로 사진을 다시 보거나 했다. 뭐랄까, 작정하고 보내는 무작정의 일상.

강의는 보람있는 일이었지만 성격하고는 잘 안 맞는 일이기도 했다. 여럿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있고 크게 말하는 일. 사실 나는 그걸 꽤 잘 한다. 그리고 꽤 무서워한다. 재능과 적성은 별개라서 나는 종종 도망치고 싶었다.

 

말할 필요가 없을 때는 말하는 게 편안해진다는 걸 제주도에서 알았다. 제주도에서 나는 종종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상대는 한 명 혹은 두 명 단위로 온 사람들이었다. 말을 걸어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이런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요, 혼자 여행을 왔는데 인물사진을 좀 찍고 싶어서요. 조금 찍어드려도 괜찮을까요? 서울에서라면 할 수 없었을 말들. 사람들은 잘 거절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이메일이나 번호를 받은 뒤 작업한 사진들을 보내줬다. 좋은 기억도 있고 불쾌했던 기억도 있고. 어느 쪽이든 지금 생각하면 희미하고 가물가물하다. 다만 그 때의 사진들을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어쩌다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이나 지나가는 아저씨나 카페 주인 분이나, 뭐 그런 사람들. 태연하게 내 소개도 하고 질문도 던졌다. 기억을 해뒀다가 생각나는 것들은 글로 쓰기도 했다. 말할 필요가 없을 땐 그렇게도 말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아유, 비가 와가지고 다 젖었어요. 이런 너스레도 떨었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궁금한 메뉴 두 개를 전부 시키고 꾸역꾸역 해치우는 하루들.

 

서울로 돌아오고 난 뒤에는 금방 다른 일들을 구했다. 돌아와서 방에 혼자 앉아 몇천 장의 사진들을 보정하고 있으면 왠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됐다. 무엇보다 왠지 방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고, 여행을 다녀오면 잔고가 비어 버리기도 하니까. 사실 그런 어설픈 전능감은 당연히 착각이었다. 삶은 여행을 다녀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그지같지. 갑자기 내 마음에서 에너지가 퐁퐁 솟아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래, 기대하지도 않았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강했다.

뭐라도 하려고 드는 하루들. 사람들 사이에서 또 부대끼며, 말을 하지 않고 싶어하며. 어쨌든 제주도에 다녀오면 그런 생각을 했다. 말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말은 하고싶을 수도 있다. 가끔은 도망칠 수 있을 때도 있다.

 

제주도에 가지 않은지는 꽤 됐다. 군복무를 마친 이후로는 그래도 꾸준히 매년 갔던 것 같은데, 작년 3월 이후로는 아직 간 적이 없다. 하기사 경기도 바깥으로 나간 일이 드물지. 한두 번 일 때문에 대전을 갔을 때를 제외한다면. 한 번은 기차 타고 내리는 방법도 잊어버려서 대전을 간다는 게 그대로 동대구까지 실려갔더랬다.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승무원 분이 오도착 처리를 도와주셨었지.

그래서 어디라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주가 제주여서 특별했던 것은 아니겠지. 어딜 가나 여행자는 그렇게 능청을 떨 수 있는 법이니까. 먹고 살려고 들면 어차피 먹고 살 동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에세이에서는 일주일간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지내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사실, 어디조차 아니어도 되는 거겠지. (물론 그 에세이의 작가분은 여행자였지만.) 어찌보면 여행과는 조금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도망이라고 부르곤 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도망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제주도에 가기 전에 언제나 말끔한 뒷마무리를 했다. 약속된 계약만큼 일을 하고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슬퍼하고 후련해하고, 그 뒤에야 훌쩍 떠났지. 그러지 않은 채로 떠날 수 있는 성격은 애초에 아니니까. 그럼에도 나는 제주도로 가는 걸 도망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거다. 서울에 있는 것들은 일만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거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너무 복잡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도망일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돌아가야만 했겠지.

 

마지막 제주행 이후 아직까지 아무것도 그만두지 않았다. 올 가을에는 제주에 가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나날들을 지나고 있다. 여름이 지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세점사이 봄 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과 사진들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세점사이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