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17. 치악산 복숭아 당도 최고

세점사이의 열일곱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05.01 | 조회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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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열일곱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낮이 이제는 정말로 꽤 길어졌더라구요. 오후 일곱 시인데도 하늘이 밝은 걸 보고 있자니 왠지 설레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밤산책의 계절이 슬슬 다가오는 걸까요? 서울로 갓 상경한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는 왠지 봄에는 한강에 가야만 할 것 같았어요. 동아리 친구들을 모아서 뚝섬한강공원에 갔고...저희는 하나둘 봄 추위에 쓰러졌죠. 그 때의 기억이 납니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 편인데도 그 때는 왠지, 겨울보다도 추운 것 같았어요. 강바람과, 으슬으슬한 기온.

 

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의 낭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크닉이라고 부를만한 걸 간 지가 너무 오래됐거든요. 우스갯소리로 종종 말하곤 합니다. 서울 여기저기 가본 곳은 많은데, 그 동네들의 음식점은 하나도 모른다고. 사진을 찍으러만 가서. 그냥 거기에 함께 있겠다는 마음만으로 버텼던 으슬으슬한 밤들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밤 사진들을 보여드릴게요.

석양이 어둠에 잡아먹히는 모습이 장관이었어요.
석양이 어둠에 잡아먹히는 모습이 장관이었어요.
그리고 점점 검어가는 파도.
그리고 점점 검어가는 파도.
한강의 밤을 수놓는 보랏빛 노을과...
한강의 밤을 수놓는 보랏빛 노을과...
제주의 석양도 참 아름답죠.
제주의 석양도 참 아름답죠.
그리고 도심의 풍경
그리고 도심의 풍경
왠지 차가운 질감의.
왠지 차가운 질감의.

 

며칠 전에는 안경도 새로 사고 머리도 새로 했어요. 둘 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기념해서 기록을 남기려고 했더니 제 셀카 실력이 너무 끔찍한 거 있죠. 오늘은 거기서 생각난 것들에 대해서 써봤습니다.


치악산 복숭아 당도 최고

다분히 외모지상주의적인 옛날 유머를 하나 꺼내보자. 본인의 외모가 빼어난 편인지에 대한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하와 같다고 한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못생김을 한탄하는 것. 만약 그 말을 들은 타인이 정색하고 화를 낸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뛰어난 외모를 갖추고 있다. 만약 타인이 당신을 위로한다면, 당신은 그런 쪽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 역시 구리네. 하지만 이 사고 흐름은 묘하게 사람 심리를 건드리는 뭔가가 있어서, 다른 부분에서도 그럴싸한 응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번 시험을 망쳤다라고 서러워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나는 대체로 남의 헛소리에 화내는 쪽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친구에게 내가 셀카를 너무 못 찍는다고 한탄했었다. 왜냐면 나는 정말로 셀카를 못 찍으니까. 물론 내 생김새의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핸드폰 전면 카메라에 담기는 그 상은 언제나 너무 괴상했다. 못생김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미학적 파산이었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너는 다른 건 잘 찍잖아. 그럼 됐지.

 

그러니까, 내가 가장 못 찍는 피사체는 다름아닌 . 한 번은 안경테를 바꾸고서 뿌듯한 마음에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했다. 얼마 안 있다가 몇 개의 답장이 왔는데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반응은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의 답변이었는데, ‘선생님, 태어나서 셀카 처음 찍어보는 거예요?’ 였다. 그 말투가 너무 조심스러워서 더 충격적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셀카를 찍어 왔다. 그 숙련도가 도무지 늘지를 않았을 뿐이다. 카메라를 들고 스스로를 찍으려고 하면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되곤 했다. 그래서 몇 초, 도망치듯. 실력이 늘 리가 없다. 남들은 현란하게 각도도 지정해 가며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냈지만 나는 간단한 거울셀카조차 버거웠다. 아주 옛날에 태어났어도 비비안 마이어는 못 되었겠지.

그러다 한 번은 집 안에서 찍은 멀끔한 사진이 가지고 싶어졌다. 남들처럼 할 자신은 없어서 그냥 내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방 안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무선 연결해 스마트폰으로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했다. 각도를 맞추고 포즈를 잡았다. 민망하고 머쓱한 일이었지만 별 수 없지.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찍었는데 나름대로 괜찮은 사진이 나왔다. 프로필 사진으로 한 사흘쯤 올려놨다가 부끄러워서 웃긴 짤방으로 다시 프로필을 바꿨다. 나는 나보다는 남을 찍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리고 카메라는 원래 내 바깥을 찍도록 만들어진 도구다. 물리적으로 그렇다.

 

카메라가 본질적으로 바깥을 향한다면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안을 향한다. 생김새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건 남에 대한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에세이 장르의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그런 모양새이기도 하고. 윤리적으로도 타인을 등장시키는 것보단 모노드라마를 연출하는 쪽이 부담이 덜하다. 물론 에세이에 타인을 등장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들이 있다. 이슬아 작가가 대표적으로 그렇지. 하지만 나는 그만큼의 힘도 에피소드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들로 글을 가득 채운다. 셀카만 가득한 사진첩 같은 이야기들.

그러나 이것을 잘 하는 일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가? 이것은 별개의 의문이다. 횡설수설 무작정 말이 많은 사람을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글 쓰는 일도 같다. 나에 대해서 자주 다룬다고 하여 내가 스스로를 잘 기록하는 사람이라 부를 순 없다는 거다. ‘솔직하지 못한 글이라는 주제는 내 글쓰기의 오랜 문제였다. 나는 늘 소극적인 거짓말을 했다. 하고자 하는 말의 일부를 쓱 감추거나, 괜한 한 마디를 더해 뉘앙스를 슬쩍 틀어 버리는 식이었다. 나를 백일장에 데리고 다니던 엄마는 답답해서 늘 가슴을 쳤다.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없잖아.

아무래도 그랬다. 가장 중요한 말은 왠지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게 딱히 어떤 구체적인 공포는 아니었다. 그냥 그러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 그리고, 민망했다. 그래서 마음은 늘 부정되거나 우스갯소리가 됐다. 아주 솔직하지만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사람. 어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은 그대로 남았다. 진심 외의 모든 것을 말하는 사람. 모든 걸 쓰지만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 한 친구는 내가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친절했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를 정말 좋아했는데도 그랬다. 아마 오랜 습관이 내가 구사하는 모든 언어에 스며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젠 나도 내 맘을 모른다.

치악산 복숭아 당도 최고. 치악산 복숭아를 어디서 사면 되는지, 그래서 그게 얼마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복숭아에 대해서 전부 말했다고 할 수 있을까? 웃긴 짤방으로 온 인터넷을 돌아다니지만 내가 이걸 보고 웃어도 될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내 인스타그램 광고가 형편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글들이 근본적으로 그런 모양새를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현수막의 주인은 연락처를 쓰는 것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르겠네.

 

글을 오래오래 쓰면서도 여전히 진솔이라는 덕목을 가지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노련해져서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는 힌트를 제시할 수 있게 됐다. 비유를 하고 관계성을 그리고. 올해 소설을 쓰게 된다면 거기에 아주 유용하게 써먹게 될지도 모르지. 다만 이제는 진심이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의 근원이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에 대해서 찾아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 자체가 거대한 자의식 과잉 같기도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당분간은 잘 쓰는 사람은 못 되어도 많이 쓰는 사람은 되어볼 작정이다.

잠깐잠깐씩 찍은 형편없는 셀카들을 보면서 볼멘소리를 했더니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원래 셀카는 수백 장을 찍어서 한 장을 건지는 거야. 민망해서 핸드폰 내려버리면, 아무 것도 못해. 아무것도 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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