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열 번째

세점사이의 열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2.11.07 | 조회 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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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열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이번 레터를 마지막으로 세점사이의 첫 번째 시즌은 막을 내립니다. 편지를 가을동안 보내드린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과연 언제까지가 가을일까, 에 대해서 고민하곤 했는데 숫자 10이 되었을 때 아침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시작했으니 이쯤이 적절한 타이밍일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처음으로 전기장판을 켰고, 누빔이 들어간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겨울을 맞이하셨나요?

저는 몸살과 함께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분주하게 살아간다는 말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실속 없는 성실로 제 몸을 너무 소홀히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은데 하고 여러 번 생각하다가 결국 양동이를 넘치게 하는 마지막 물방울을 받아버린 것 같습니다. 성실에는 자신이 버틸 수 있게 하는 자기관리와 점검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무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가을의 끄트머리를 기념하며,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겨울 사진들을 공유해 봅니다.

학교 건물 위에 달이 너무 예쁘게 떠 있어서 담았어요. 겨울의 청명함!
학교 건물 위에 달이 너무 예쁘게 떠 있어서 담았어요. 겨울의 청명함!
저희 집은...대자연입니다. 눈이 오면 저희 집 앞에는 장엄한 설산이 보여요.
저희 집은...대자연입니다. 눈이 오면 저희 집 앞에는 장엄한 설산이 보여요.
눈 오는 날 사진을 찍겠다고 무작정 필름 카메라 한 대만 들고 나가서, 폰카로 찍은 사진입니다. 네온사인이 창에 비치는 게 너무 좋지 않나요?
눈 오는 날 사진을 찍겠다고 무작정 필름 카메라 한 대만 들고 나가서, 폰카로 찍은 사진입니다. 네온사인이 창에 비치는 게 너무 좋지 않나요?
그렇게 나가서 이런 사진들을 잔뜩 들고 돌아왔습니다. 삼성의 똑딱이 필름카메라였어요.
그렇게 나가서 이런 사진들을 잔뜩 들고 돌아왔습니다. 삼성의 똑딱이 필름카메라였어요.
DDP의 천장에 쌓인 눈
DDP의 천장에 쌓인 눈
낙산공원의 귀여운 눈사람. 코닥 프로이미지 100 필름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제게는 너무 입자감이 지저분한 느낌이더라구요.) 요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낙산공원의 귀여운 눈사람. 코닥 프로이미지 100 필름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제게는 너무 입자감이 지저분한 느낌이더라구요.) 요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너무 가지고 싶었던 필름 카메라 렌즈를 사고 처음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필름은 아마 엑타 100
너무 가지고 싶었던 필름 카메라 렌즈를 사고 처음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필름은 아마 엑타 100
흑백으로 찍은 눈 사진도 너무 좋지 않나요?
흑백으로 찍은 눈 사진도 너무 좋지 않나요?
새해 일출을 보러 강원도에 간 날입니다. 구름 때문에 해가 뜨는 건 못 봤지만 붉게 변하는 하늘도 충분히 아름다웠어요.
새해 일출을 보러 강원도에 간 날입니다. 구름 때문에 해가 뜨는 건 못 봤지만 붉게 변하는 하늘도 충분히 아름다웠어요.
네...저희 집 앞은 대자연입니다...
네...저희 집 앞은 대자연입니다...
저의 유일한 해외여행 경험도 겨울이에요. 2019년 크리스마스에 혼자서 코타키나발루에 갔답니다.
저의 유일한 해외여행 경험도 겨울이에요. 2019년 크리스마스에 혼자서 코타키나발루에 갔답니다.
지난 주에 보내드렸던 레터에서 말씀드린 할머니의 장례식 때 찍은 사진입니다. 짙은 눈이 왔어요.
지난 주에 보내드렸던 레터에서 말씀드린 할머니의 장례식 때 찍은 사진입니다. 짙은 눈이 왔어요.
지금은 관둔 전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입니다.
지금은 관둔 전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입니다.
간이 캠핑을 가서 이것저것 구워먹던 기억!
간이 캠핑을 가서 이것저것 구워먹던 기억!
정말 좋아하는 집 앞 책방 겸 카페가 처음 열었을 때 처음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붕어빵 귀여워요.
정말 좋아하는 집 앞 책방 겸 카페가 처음 열었을 때 처음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붕어빵 귀여워요.
이건 냉동 크로와상 생지를 구워 커피와 함께 먹은 사진!
이건 냉동 크로와상 생지를 구워 커피와 함께 먹은 사진!

겨울이 온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는데 이렇게 사진을 쭉 보고 나니까 왠지 설레는 기분으로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겨울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번 주의 글은 몸살을 앓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본 것들과, 그걸 보며 생각한 것들을 담은 글입니다.


기억해줘요, 기억하지 말아 줘요

아침에는 병원을 다녀왔다. 며칠 전 몸이 아플 때 시간을 아낀다고 일터 근처에 있는 병원을 갔다가 토요일 아침에 한 번 더 오라는 통보를 받고 별안간 몸살에도 불구하고 주말 아침 출근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생활 패턴을 늘어지지 않게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엊그제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후회하게 되었다.

햇살 좋은 날 종로 5가에서 내려 병원을 들렀다가 사무실이 있는 동대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날도 좋고 공기도 적당한 만큼만 차가워서인지, 사람이 많았다. 동대문 근처는 꽤 좋은 산책로가 많다. 이화동 벽화마을, 낙산공원, 청계천, DDP. 어디를 택해도 느슨한 군중 속의 호젓한 익명이 될 수 있다.

 

동대문 역에서 사무실로 가는 길에는 횡단보도 옆 작은 풀밭이 하나 있는데 그 풀밭에는 비둘기 수십 마리가 상주한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날고 때로는 둘 다 한다.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무서운 광경이기도 하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비둘기를 보고 놀라는 걸 좋아하는 쪽이다. (나에게 날아들면 나도 무서워지겠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 한가운데에 음식그릇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한가운데 앉아서 밥을 먹거나 할 만한 장소는 아니어서 대체 누가 저기에 저런 걸 놨을까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할 거리는 아니었다. 그냥 얼른 사무실에 짐을 풀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나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신호 주기가 꽤 길어 멍하니 앞을 봤다.

그러다 한 할머니가 무단횡단을 하려다가 차가 오니 멈칫 돌아서는 모습을 봤다. 사실 이 길에서 무단횡단은 잦아서 주목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그새 무단횡단을 한 번 더 시도했을 때 나는 뭔가 잊기 힘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가 길을 건너 풀밭에 접근하자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는 익숙한 듯 풀밭에 비둘기 모이를 흩뿌렸다.

그 즈음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말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비둘기, 하는 단어가 여러 번 들렸다. 왜 비둘기에게 밥을 주는 건지 묻는 완성된 말들도 잦았다.

 

그가 모이를 꺼내기도 전에(일단 나는 그가 모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비둘기들이 그를 알아보던 모습이 나는 잊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에 모여있던 것이 그를 기다리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프랑스 낭테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비둘기는 사람의 얼굴을 구분해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였다고 한다. 어떤 존재이든간에, 그는 기억되고 있었다. 비둘기의 마음은 잘 모르지만 꽤 살가운 방향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라고 단문으로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한국의 도시에서 생활할 때 있어 최고의 미덕은 익명이 되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갈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삶. 나는 그 미덕에 충실하게 사는 편이다. 오히려 길을 걷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일부러 피해갈 때도 있었다. 듣던 음악을 계속 듣고 싶어서라는 자기합리화를 하곤 했지만 음악을 듣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길게 할 변명은 없다. 그냥 완전히 소외된 채로 걷고 싶었다. 지하철을 탈 때도 매번 내가 이 공간과 완전히 분리되길 원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옷을 이것저것 골라입는 걸 좋아함에도 튀는 것이 너무 싫어 마지막에는 가장 무난한 종류들만을 골랐다. 혼자 걷는 익명의 산책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영영 익명이기를 꿈꾸었는가, 하면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밤에 혼자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면서 나는 종종 친구끼리 같이 걷거나 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으니까. 내 이름을 걸고서 글을 쓰기도 했고 내 이름을 걸고서 사진 SNS를 운영하기도 했다. 내가 쓴 글이 포털의 메인에 걸렸을 땐 뛸 듯이 기뻐 자랑을 하기도 했다. 친구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건네며 웃기기도 자주. 익명만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결국 나도 누군가에게 불리우고 싶은 절실함이 자주 있었다. 나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기억되고 싶었다.

슬프게도 도시에서 기억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는 사람이 끔찍하게 많고, 대체재 많은 사람들은 사실 누구에게 누구라도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나를 기억하는 것 같은 사람마저 우리는 계속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이 거대한 익명의 도시에서, 비둘기 군체에게 기억되는 건, 도덕, 환경의 가치는 뒤로 밀어놓고서라도 누군가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의 삶을 감히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나를 명확히 기억하는 수십 마리의 생명.

 

나는 익명의 보행자로 그 곁을 쓱 스쳐갔다. 퇴근시간 즈음에는 지옥이라 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인파가 많은 동네다. 그래서 누구도 누구를 알아볼 수 없다. DDP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골목으로 빠져 사무실로 왔다. 주말 정오 즈음이라서 사무실에는 인기척이 없다. 나는 또 완벽한 고요에 만족하며 맥북의 전원을 넣는다. 아는 얼굴들이 찍힌 사진을 보정하고, SNS에 게시글을 올리고, 뉴스레터에 보낼 글을 쓴다. 설명할 수 없는 도시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며 그 경계선에 선다.

설명한다면 이미 익명이 아니다.

종종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홀로 고독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황홀한 상상은 일주일 정도의 일상이 얼마나 완벽할지에 대해서 찬찬히 설명한다. 아마 일주일쯤 지나면 슬플 것이다.


세점사이의 열 번째 레터까지 모두 마무리가 되었네요. 지금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마음깊이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시즌이라는 표현을 쓴 건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분명 올 거라는 생각에서였어요. 아마도 어느 순간 다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쉬운 것들이 사실 좀 많습니다. 인터뷰도 담고 싶었는데 담지 못했고, 글의 테마도 다양하지 못했던 면이 있어요. 예전에 쓴 글을 다듬어 다시 보낸 글들도 좀 있구요. 구성도 더 깔끔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열 번을 모두 끝내고 나니 괜히 또 뿌듯하기도 해요. 사실 저는 글을 정말 많이...씁니다. 세점사이를 주간 스불재라고 자조하면서 맘속으로 울기도 했지만 사실 이것보다...더 많은 글들을 엄청나게 썼어요. 이 레터를 시작한 것도 그 중에 일부는 좀 아카이빙을 해두자 하는 마음이 컸답니다. 아마도 사는 동안은 계속 그렇게 쓰고 찍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연재 마무리 후로도 저의 더 많은 글과 사진들을 보고 싶으시다면

인스타그램 

여기로 오시면 저의 일상 사진, 일기 글, 2000자 이내의 짧은 글, 사진 작업 기록 등을 보실 수 있구요 (질릴 만큼 많이...)

여기로 오시면 좀 더 정제된 형태의, 상업 사진 기록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블로그

여기는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인스타에 쓴 것보다 좀 더 긴 호흡의 글, 주간일기, 사진이 많이 들어간 글, 뉴스레터에 보내드린 것보다 더 시의성이 강한 글들을 보실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더 튼실하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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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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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

    0
    over 1 year 전

    세점사이님은 주간 스불재..라고 표현하셨지만 제겐 세불행이었습니다••• (세점사이가 불러온 행운이라고 할까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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