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27. 델리만쥬에서 길을 잃다

세점사이의 스물일곱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10.30 | 조회 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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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스물일곱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최근 일 년간 있던 작업실에서 나왔다가, 좋은 기회가 있어 이번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어요. 사실 집에서 다른 건 해도 글은 정말 쓰기 힘들었어서, 최근 얼마간은 정신이 좀 사나운 채로 글을 썼습니다. 이번에 다시 들어가면 글에 또 어떤 영향이 있을는지 좀 궁금하네요. 이번 글도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 글은 음식에 관한 글입니다. 제 친구들이라면 저거 또 햄버거 타령 하네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라서, 오늘은 글의 스타일에 조금 변주를 줘봤습니다.


델리만쥬에서 길을 잃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 먹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뭐랄까, 차력쇼를 하듯이 먹었다. 커다란 코스트코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고서 다른 사이드 메뉴를 탐냈다. 매번 그런 식으로 먹어 대고 나서 별 경각심도 없이 벌러덩 누웠고, 다음 날이면 속이 좀 불편하다며, 나는 아무래도 치즈랑 잘 안 맞나봐 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점심에 탄수화물 폭식을 하고서도 식곤증이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던 날들이었다. 지금 그 때의 팔팔함은 간 곳이 없다. 내가 치즈랑 잘 안 맞나, 하던 불평은 요새 입이 좀 마르는데 혹시 당뇨 초기 증상은 아닐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아있는 건 흔적기관 같은 선호 뿐이다. 형편없어진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은 오래도록 전승된다. 내 피의 색깔이 버건디 색일 거란 몇 년 묵은 말장난과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두 가지 갈래로 나눈다. 계시와 회로. 계시는 하늘에서 갑작스레 내려오는 명령처럼 문득 ‘존재하게 되는’ 식욕이다. 대체로 구체적인 카테고리로 내려온다. 예를 들어, 페퍼로니가 잔뜩 올라가 있는 미국식 얇은 피자나 살짝 바삭할 만큼 구워진 패티가 들어가 있는 햄버거. 그냥 갑자기 떠오르는 그 욕구는 어설픈 대체제를 찾으려 들었다가는 오히려 더 사무치게 된다. 명령은 정확히 수행되어야 한다. 회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혹은 명확한 계시가 없을 때 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는 음식이다. 대체로 ‘그냥 대충 그런 거를 파는 곳에 간다’의 형태로 실현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피자나 햄버거. 이 욕구는 언제나 존재한다.

어릴 때는 식곤증이란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릴 때는 식곤증이란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며칠 전에도 계시가 내려왔다. 한 끼를 애매하게 굶은 채 촬영을 나갔다가 작업실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됐다. 뒤에도 일정이 있어서 햄버거가 딱이었다.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역에서 내리면 나오는 길에 롯데리아가 있던 걸 떠올리고 모짜렐라 인 더 버거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내 그걸 생각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서, 하차를 했다. 그러나 햄버거에 대한 기대를 가득 품고 역사 밖으로 나온 내가 마주한 것은 롯데리아 터에 있는 웬 폐업세일 현장이었다. 가게는 빠지고 임시로 뭐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하여 플랜 비가 필요했다.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서 맘스터치는 갈 수 없었고, 좀 걸어서 동대문역 쪽에 있는 KFC에 가기로 했다. 그 생각을 하자 더블 징거버거 다운 맥스가 먹고싶어졌고, 점심을 굶고 사진을 찍었으니 나에겐 그런 걸 먹을 자격이 있다는 합리화가 곧 끝났다. 그냥 홀린 것처럼 모든 과정이 이루어졌다. 서둘러 가게에 가 주문을 하고, 큰 기대를 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첫 입을 먹고 든 생각은, 이걸 먹는 게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거였다. 오히려 불행한 쪽이었다. 모양은 입 안에 넣기도 힘들었고, 간은 너무 짰고, 기름이며 소스며 그런 것들이 손에 잔뜩 묻었다. 이런 맛을 싫어하냐, 하면 좋아하는 쪽이었는데도 그렇다. 그냥 문득 그 모든 게 불쾌했다. 옆에서는 어떤 할아버지가 카운터에 혹시 오미자차를 파느냐고, 아픈 사람이 있어서 그가 마실 게 필요하다고 물었다. 종업원은 그런 건 팔지 않는다고 답했고, 그는 그럼 어떻게 하지 하고 한참 고민하다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그 주변의 모든 게 왠지 울렁거렸다. 롯데리아는 사실 문을 닫은 게 아니라 옆 건물로 옮겼을 뿐이라고 누가 알려줬다.

사실 또 그런 것도 좋아하는데. 깔끔한 쌀국수나 맑은 국물 음식들, 별 게 안 든 오일 파스타, 계란 볶음밥 그런 것들. 먹고 나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들. 건강에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밤에 그런 걸 먹은 적은 거의 없다. 밤에 먹는 건 거의 치킨이나 양 많은 떡볶이 같은 것들. 난 사실 치킨을 그렇게 막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냥 튀긴 닭고기인데 뭐. 그런데 남들이 치느님 치느님 하니까 그냥 엄청 맛있는 음식인가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치킨 시켜서 먹는 걸 생각한다. 먹고 나면 묘한 불쾌감이 있다.

한 번은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 관념적인 라면을 먹고 싶어. 친구는 대체 그게 무슨 라면이냐고 되물었다. 계시처럼 특정한 상태의 라면에 대한 식욕이 끓어오를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퇴근을 벼르고 벼르다가 집에 가자마자 냄비에 물을 올린다. 인덕션 위에, 완벽하게 계량된 물의 양, 스탑워치로 재는 시간, 풀어지지 않은 달걀. 완벽한 라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먹은 첫 입은, 생각보다 맛이 없다. 늘 그랬다.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다. 우리는 사실 거대한 델리만쥬의 징벌 속에서 사는 건 아닐까? 우리는 영원히 지하철 역사 안을 지나는 벌을 받은 거야. 델리만쥬 가게가 있는. 그러다가 한 번씩 참지 못하고 사먹고 마는 거지. 그리고 결국 내뱉고 마는 거야. 아, 생각보다 별로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또다시 델리만쥬 냄새를 맡으며 행복이 거기 있을 거라고 상상해.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중독의 면면들을 그린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라는 책의 어느 글은 불닭볶음면과 맥주를 소재로 한다. ‘스트레스를 푼다는’ 그런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것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감명깊었으나, 나는 그걸 보고 나서 불닭볶음면과 맥주가 먹고 싶다는 욕망에 한없이 사로잡혀 버렸다. 정작 나는 불닭볶음면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이후로는 먹은 적이 없었는데도 그렇다. 이제는 가끔 불닭볶음면을 끓여 맥주와 함께 먹는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더더욱 그렇게 한다. 사실 햄버거나 피자에 대한 마음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겠지. 나의 선호 한 주먹과 남들이 그러길래 한 사발.

맥주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지만 사실 맥주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술이라는 것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 술자리라는 데에 일년에 세 번은 갈까? 내가 살면서 쓴 글 중에 가장 잘 된 글이 맥주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맥주 네 캔 만이천원을 사서 한 달 넘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 달 넘게 버틴다는 것은 결국 냉장고 안에 맥주가 있기는 하다는 것. 나는 냉장고에 맥주가 왠지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맥주를 산다. 갑갑하고 힘든 날이면 맥주를 한 캔 꺼내 마신다. 그냥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듯이, 그런 구체적인 이미지로 화를 표출하고 싶어서. 하지만 그러고 나면 정말로 스트레스가 풀리나? 살다 보니 술은 늘고 체력은 약해져서, 맥주를 마셔도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캔씩 마시면 불쾌해지겠지. 생각해 보면 거기에 취한다고 해서 기뻐지지는 않았더랬다. 결국 실질적으로 행복을 가져오지도 못하는 걸,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사마셔온 것이다. 하기사 담배라고 뭐가 다르겠어.

혼자 술 한 잔을 마시는 걸 낙이라고 종종 생각하지만...그게 정말로 낙일까요?
혼자 술 한 잔을 마시는 걸 낙이라고 종종 생각하지만...그게 정말로 낙일까요?

그러나 분명 진심으로 피자 한 판을 다 먹으며 행복했을 때가 있고 그러나 분명 징거더블다운맥스를 먹으며 적당한 포만감을 느꼈을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불닭볶음면 안에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과 슬라이스 치즈를 넣고 전자레인지에 삼십 초 돌리면서 스트레스가 풀렸을 것이고 어떤 때는 맥주 한 캔과 함께 행복한 저녁을 보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분명 행복했고, 지금은 불쾌해진 무언가. 그리고 왠지 그럴 것만 같아서 그렇게 되었던 무언가. 그렇다면 나의 어떤 선호라는 것에 의미란 게 존재할까? 그 선호가 영원한 것도 아니라면. 심지어 내가 온전히 만든 것조차 아니라면?

물론 안다. 삶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연속되는 긴 선이라는 걸. 그 선이 지나가는 점의 면면 역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간이란 바깥의 영향을 받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완벽한 내것이란 없는 것이고 그 완벽함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부질없다는 걸.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들조차 내 근처를 잠깐 스쳐지나갔던 것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하자 왠지 씁쓸해지는 것이다. 징거더블다운맥스만 그렇겠는가. 좋아하는 마음도 계절처럼 오고 가고 나는 이제 입병과 입마름을 생각하고 1호선 지하철역 옆 KFC에 온 할아버지의 당황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난 사실 쌀국수를 좋아하는데, 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 있으면 왠지 슬픈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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