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다섯 번째

세점사이의 다섯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2.10.03 | 조회 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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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다섯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생각외로 이번 가을에는 평범한 월요일이 잘 없네요. 편안한 출근길의 레터를 만들고 싶었거늘, 빨간날과 태풍이 번갈아 오더니, 이번에는 큰 비와 빨간날이 함께 옵니다. 저는 프리랜서라서 일을 나가고 있긴 하겠지만요. (다음 시즌에는 적당한 요일을 골라야겠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합니다.) 이 비의 영향으로 이번 주 후반부부터는 최고기온이 15도 안팎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간 가을 치고는 좀 더웠는데, 이제는 정말로 외투를 입어도 좋은 날씨가 오려는 것 같아요. 저는 맨투맨 아래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 속에 찜해두었던 가을옷이 있나요?

 

이번에는 제가 그동안 촬영 도중 중간중간 시점에 찍은 사진들을 공유해 볼게요. 가끔 사진을 찍다가 틈이 나서 찍는 사진들도 있고, 그냥 넋이 나가서 찍는 사진들도 있어요. 찍을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한 번 봐 주세요!

지지난 주에 사진을 찍다가 촬영장이 문득 너무 예뻐 보여서 남겼어요. 빛이 정말 좋은 날이었습니다.
지지난 주에 사진을 찍다가 촬영장이 문득 너무 예뻐 보여서 남겼어요. 빛이 정말 좋은 날이었습니다.
모델님께서 소품으로 쓰시겠다며 복숭아를 하나 가져오셨어요. 창문의 널찍한 빛이 측면에서 들어왔고, 나무 테이블 위에 있으니 정말 예뻤습니다.
모델님께서 소품으로 쓰시겠다며 복숭아를 하나 가져오셨어요. 창문의 널찍한 빛이 측면에서 들어왔고, 나무 테이블 위에 있으니 정말 예뻤습니다.
덕수궁에서 촬영을 하다가 석조전이 예뻐서 찍었어요.
덕수궁에서 촬영을 하다가 석조전이 예뻐서 찍었어요.
조그만 자전거가 너무 귀엽지 않나요?
조그만 자전거가 너무 귀엽지 않나요?
물론 사람을 찍는 중이었지만, 손에 들린 건 접사 렌즈였고, 꽃 위에 나비가 앉았어요.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겠죠?
물론 사람을 찍는 중이었지만, 손에 들린 건 접사 렌즈였고, 꽃 위에 나비가 앉았어요.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겠죠?
올림픽 공원의 여유로운 느낌은 언제나 좋아요.
올림픽 공원의 여유로운 느낌은 언제나 좋아요.
노을공원입니다. 저 때는 아직 초봄이었어서 조금 황량해 보이기도 하네요.
노을공원입니다. 저 때는 아직 초봄이었어서 조금 황량해 보이기도 하네요.
후암동의 골목을 고양이가 위풍당당하게 걸어갑니다.
후암동의 골목을 고양이가 위풍당당하게 걸어갑니다.
대교 위에서 사진을 찍는데 해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바로 담았습니다.
대교 위에서 사진을 찍는데 해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바로 담았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네요. 다섯 번째 글을 보내드립니다. 가끔 내 성격, 내 과거에 대해서 곱씹게 될 때가 있지 않나요? 그 때 쓴 메모를 바탕으로 발전시켜본 글입니다.


오바하는 오바하는 오바하는 마음 없이

 

친구들이 나에게 가지는 서운함의 팔 할은 머쓱함에서 온다. 어디 좋은 회사에 합격을 했다거나, 어디 당첨이 되었다거나, 아무튼 친구들에게 그런 좋은 일들이 있을 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건 짧은 문장과 꾹꾹 눌러적은 느낌표 몇 개 정도가 전부다. 마음이 거기서 끝나기 때문은 아니다. 종종 마음을 더 전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몇 문장 정도를 더 덧붙이기도 하지만 그 문장들에 담긴 어색함은 우리 서로가 안다. 누군가 원한다면 구구절절의 편지는 써볼 수 있겠지만, 글쎄. 2022년에 그런 식의 축하를 하는 사람은 유아인 팬클럽 열성회원 정도로 보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단문 혹은 초장문. 친구 역시 그것이 나의 최선임을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머쓱해지고 만다.

단순히 축하만 잘 못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텐데 나는 다른 데에도 딱히 능숙한 리액션 자판기는 못 된다. 로봇 같은 마음을 가져서라기보단 로봇 같은 몸뚱어리를 가져서인 쪽이다. 끝없이 가라앉는 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지만 튀어오르는 건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와 내 조용한 친구들은 만나면 고장난 서브우퍼 같은 리듬으로 대화를 한다. 속닥거리는 게 큰 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목에 부담이 더 간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들. 하지만 우리는 즐겁지.

그런 의미에서 리액션이 큰 친구들을 만나면 내 세상의 외연이 확장된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내 즐거워진다. 일종의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좋다. 물론 마주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굳어버리지만, 어쨌든 마음은 좋아하고 있다. 어쩌면 충격은 충격대로 전해올 뿐 좋아하는 마음은 그들이 내 몫의 텐션을 대신 끌어올려주고 있어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실실 웃고 있다는 것이다. 내 주변의 하이텐션 친구들이 이를 보증한다.

그럼에도 오버는 내 평생의 경계 대상이 될 것이다. 물론 성정상 오버도 급발진도 영영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여전히 매일 내가 너무 오버하지는 않았는가 하고 고민하곤 한다. 할 필요 없는 말을 하진 않았는지, 작게 말했어도 될 것을 크게 말하지는 않았는지, 별것 아닌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숨겨 마땅한 것을 드러내진 않았는지.

 

초등학교 5, 6학년 때쯤의 일이다. 기존에 다니던 학원을 관두고 더 잘나가는 학군의 학원에 다니게 됐다. 수학이었는지 영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학원은 우리집과 멀었으므로 학원의 봉고차를 타고 등하원을 하게 됐다. 우리집은 봉고차의 거의 마지막 코스였고, 따라서 나는 차에 가장 오래 타고있는 학생이었다. 나는 열 시가 넘어 차에서 내렸다.

차에 타는 건 모두 일고여덟 정도였다. 나보다 좀 어린 남자아이 둘 정도가 말없이 앉아 있었고 나머지는 나와 동갑의 여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은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면, 내가 그 학원에 새로 다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봉고차에 타고 등하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보이며 이것저것 질문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도 활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외향적인 편이었다. 그 질문들에 유창하게 답했다는 이야기다. 맘에 들었는지 그 친구들은 나를 패거리에 끼워줬다. 봉고차를 오래 타는 나는 같이 이야기할 친구들이 생겨 좋았다. 같이 이야기할 친구들을 어디서든 곧잘 만들던 때였으므로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음악 이야기나 책 이야기나 공부 이야기나 그림 이야기를 했다. , 이 점은 지금이랑 똑같네.

그 이후로 디테일하게 무슨 일들이 지나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십 년이 넘게 지난 어린시절 일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딱 한 마디의 말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 진짜 왜 저래. 패거리에 편입되고 며칠 되지 않아 나는 거기서 쫓겨났다. 봉고차는 여전히 오래 타야 했고, 나는 그 아이들이 나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걸 모두 들은 뒤에 내렸다. 스마트폰 같은 장난감이 없던 시절이므로 그걸 무시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다시 친구로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 아이들에게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었다. 멋진 갑옷 그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이 흥미를 가질 종류의 뭔가는 아니었긴 하네,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그들은 내 그림을 보지도 않고 왜 저러냐는 말을 했으므로 그건 이미 잘못이 될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장면은 기억 속에 필요 이상으로 오래 남는다.

아무튼 짧은 며칠의 친구-기간동안 나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오버를 많이 했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림을 보여줬던 것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대체 그걸 왜 보여줘. 오바하는 사람은 친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스물일곱의 언어로(그다지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 때의 깨달음을 옮긴다면 대충 저렇다.

 

다음날 그 그림을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는 다들 너무 멋지다고 해줬다. 나는 제법 탄탄한 교우관계를 가진 어린이였고, 그림이나 책 이야기를 하면 내 친구들은 다들 좋아했다. 그 학원은 교우관계 외의 사유로 얼마 가지 않아 그만뒀다. 그냥 학원이 별로였다. 15년 전쯤에 학원에서 친구 못 사귄 이야기를 가지고 택도 없는 자기연민에 빠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냥 그랬겠구나, 하는 것이다. 이런 말 하면 좀 재수없지만 나는 꾸준한 수요가 있는 타입의 사람이다. 그냥, 오버하지 않기로 작심하게 된 것이 저 때가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고 떠올려 보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의 일들도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내가 스스로를 오래 살았다고 말하려 들면 온 세상 어르신이 하하하하 웃어서 그 소리가 당나라까지 들리겠지만, 어쨌든 어른이 되고 슬프게 걷다 보면 아 그랬구나, 하는 순간들이 온다. 더 어린 시절의 간절했던 순간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곤 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아 역추산인 셈이다.  

의외로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성격 요소들 중 아주 고착화된 것은 아주 명확한 사건들에서 온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오버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은 방금 언급한 그 사건에서 왔다. 문제가 있다면 그 근원을 안다고 뭐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랬겠거니 하는 것 정도다. 성인이 되고 오랫동안 국어 강사로 일하며 보아온 세계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면 해답이 보이는 세계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랬구나 하는 말뿐이다. 내가 안 하는 게 오버뿐인 줄 아니? 하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어찌되었든 나는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오바하는 오바하는 오바하는 마음 없이 살아갈 것이다. 친구들은 반응이 그게 다냐고 서운해할 것이고 나는 웃으며 박수를 치는 사람을 보고 바싹 얼었다가 삼십분쯤 뒤에 해실거릴 것이다. 삶은 비가역적이고 비가역성 흔적들은 누적된다. 유노왓, 인생은 중금속이야. (그러니까 헤비메탈을 듣자 친구들.)

그리고 친구들은 어찌되었든 감정 표현을 필요 이상으로 절제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비가역적인 흔적은 또다시 누적된다. 나 역시 흔적으로 남겠지. 그러다 언젠가는 또 하이한 리액션이 습관인 사람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하이텐션의 반응이 나쁜 게 아니라는 사실 자체는 학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렇다.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아주 웃기는 이야기를 했다는 듯 웃을 것이다.

 

,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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