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로 만든 이 뮤직비디오의 제작 과정이 흥미로운 이유

맥락을 살피고 새로운 질문을 발견합니다.

🤖 HYNN(박혜원)의 뮤비에서 AI가 만든 장면은?

‘HYNN(흰)’이란 활동명(이 이름은 한강 작가의 소설 [흰]에서 따왔다)으로 알려진 박혜원은 [슈퍼스타K 2016]에 출연해 ‘인천 에일리’라는 별명을 얻은 가수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킹더랜드], [닥터슬럼프], [열혈사제 2] 등의 드라마 OST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2022년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WSG워너비'의 유닛 '가야G'에 합류하면서 꽤 큰 인지도를 얻었고, 대표곡으로는 "시든 꽃에 물을 주듯"이 있다.

얼마 전, 2025년 1월 15일에 싱글 "영하"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했다.

이 비디오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툴인 클링(KlingAI)으로 제작된 컷과 씬이 포함되어 있다. 눈 밝은 사람이라면 이미 몇 장면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의 장면들도 꽤 많다. 어떤 장면인지 한 번 찾아보자.

AI로 이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디자이너는 아래 설명과 함께 AI 영상의 제작 과정을 별도로 만들어 공개했다.

안녕하세요. 모션디자이너 김그륜입니다.
이제 AI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수 HYNN(박혜원)님의 신곡 '영하' 뮤직비디오 제작에 AI를 적극 활용하여 주요 장면을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촬영 없이 AI로 만들어진 장면들이 과연 실무에서 활용될 수 있을까요?
눈 내리는 오두막,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슴, 손 위에 얼음 결정이 피어나는 장면까지 이 모든 장면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번 뮤비 제작을 하면서 AI를 활용한 제작에 앞서 중요한 점 뿐만 아니라, 노지훈 뮤직비디오 감독님의 AI 사용에 대한 견해와 전망도 담았습니다. 실무 활용 사례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이 영상에는 제작 과정이 매우 디테일하게 설명되어 있다.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거나 몇 개의 프롬프트 정도만 공유하는 다른 영상들과 달리, 거의 모든 제작 과정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공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추가로 본인이 직접 만든 챗GPT 프롬프트 생성기와 디스코드 커뮤니티 초대장 등 실무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도 공개했다.

김그륜은 아마추어 제작자는 아니다. 모션 그래픽, 애니메이션, CG와 라이브 콘텐츠와 메인 타이틀, 게임 트레일러, 광고, 뮤직비디오에 이르는 거의 모든 매체의 그래픽 작업을 하고 있는 Elastic(2008년 설립) 팀에 소속된 그래픽 디자이너다.

리사 볼란(Lisa Bolan)과 같은 특 A급 디자이너가 포함된 Elastic은 나이키, 구글 같은 대기업 광고 뿐 아니라 HBO [왕좌의 게임 시즌 8], [왓치맨], [하우스 오브 드래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넷플릭스 [펩시, 내 제트기 내놔], [앤디 워홀 다이어리], [러브x데스+로봇] 등의 오프닝 타이틀 제작했고, 에미, 칸 라이언즈, 아카데미, BAFTA, SxSW 등의 시상식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 3개의 주제들

이 영상에서 나는 크게 3개의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1. AI는 제작의 파이프라인을 해킹한다

예나 지금이나 실제 동물, 특히 야생 동물을 촬영하는 것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보통 CG로 제작된다. 그런데 김그륜 디자이너는 AI로 사슴 영상을 제작했고, 그 완성도는 다소 충격적이다. 특히 그 모든 장면은 겨우 몇 시간 만에 완성되었다.

심지어 김그륜 디자이너는 그 제작 과정을 매우 세심하게 공유한다. 한 마디로 '영상 제작의 파이프라인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방법'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지금 AI가 크리에이터에게 기대와 공포를 동시에 선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방향성과 우연한 발견은 '같은 페이지'에 있다

AI는 척척박사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AI의 오류를 지적하며 실무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 AI는 이미 여러 방식으로 실제 현장에 도입되고 있다. 다만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건 AI의 뛰어난 성능보다 정확한 기준과 체계적인 준비 과정이다. 작업 과정이 복잡하고 큰 프로젝트일수록 프리 프로덕션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AI는 보통 한정된 자원으로 하이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프로젝트에 활용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필요한 건 고성능의 나침반 보다는 명확한 지도다. 잘 설계된 지도가 있어야 '피부에서 눈 결정이 돋아나는 장면' 같은 우연한 발견도 가치를 얻는다.

3. 연출이 핵심이다

제작 과정 영상을 모두 보고 나면, 결국 뮤직비디오처럼 내러티브를 가진 영상의 핵심은 연출에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의외로 기술이 휘몰아치는 시대에는 이러한 상식을 잊기 쉽다.

연출은 제작자의 의도다. 의도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다. 뚜렷한 목적이란 바로 가야 할 곳, 해야 할 일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야말로 연출의 핵심이다.

이것은 AI가 있든 없든 제작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선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 필요하다. AI 시대의 크리에이티브는 바로 철학과 관점, 역사와 태도 같은 교양의 토양 아래 꽃 필 가능성이 높다.

🗿 "과거는 오래된 미래"

지난 몇 년 동안 [엔터문화연구소]에서는 AI 관련 이슈와 칼럼을 정리했다. 웹3, 인공지능,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내 관점은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AI 시대에는 비-예술의 예술성이 등장하고 크리에이티브는 재정의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좀 더 함께 읽고 싶은 글을 공유한다.

1. SORA로 만든 최초의 뮤직비디오와 MTV의 명작들

인공지능 SORA로 만든 최초의 뮤직비디오와 80년대 MTV

오래된 미래: 혁신적인 80년대 뮤직비디오 12편을 리서치합니다

maily.so

워시드 아웃(Washed Out)의 "The Hardest Part"(2024) 뮤직비디오를 만든 폴 트릴로 감독은 시간과 재정적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SORA를 활용했고, 이상하고 기이한 장면도 그대로 사용하면서 특유의 미학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초반의 MTV 뮤직비디오들도 그랬다. 새로운 사운드와 새로운 영상의 미개척지를 탐험하던 음악가와 감독들. 요컨대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 내일이 불안한 우리는 어둠 속을 더듬는 대신 과거의 뚜렷한 흔적을 살피는 게 더 필요할 것이다.

2. 하이브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식

📸차우진의 스냅샷 | 하이브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식

기술이 음악(혹은 케이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maily.so

나는 이 질문이 케이팝의 지속가능성이나 글로벌 성공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아티스트를 어떻게 도울까. 그리고 이것이 음악 기업이 외부의 기술 기업들과 협업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 부서에서 작동할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인공지능이 어떻게 아티스트를 도울 수 있을까?

3. 인공지능이 창작도 좀 할 수 있죠, 뭐

👩‍💻인공지능이 창작도 좀 할 수 있죠, 뭐

'인간 vs 인공지능'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기 위한 질문

maily.so

이전에는 예술이라고 불리지 않던 것들이 앞으로는 예술로 불리게 될 것이다. 1950년대 '엘리베이터 음악'이나 ‘무작(muzak)’으로 불리던 기능적인 BGM도 얼마 뒤 존 케이지나 브라이언 이노, 백남준 같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수년 전만 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좋아한다고 말하기조차 어렵던 만화, 드라마, 케이팝도 이제는 당연히 종합 예술로 여겨진다.

🎃 인공지능은 권력을 재배치한다

인공지능은 실제로 현실에 깊이 관여한다. 호들갑은 아니다. 인공지능 툴의 발전 속도는 확실히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넓게 확장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이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흔해졌다. 몇 년 만에 인공지능은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위협적이다. 특히 아티스트를 위협한다는 인공지능의 포지션은 쉽게 뒤집히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위치는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득권과 아티스트 모두 인공지능을 활용한 창작 활동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생산성 자체가 현재의 산업 구조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쪽 모두 제도권을 압박하고 대중적인 지지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 인공지능 그 자체든, 인공지능을 쓰는 사람이든 제도적으로 통제되는 순간, 제작사와 아티스트(크리에이터)의 관계에는 균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21세기의 생산 수단이다. 새로운 자본이다. 인공지능은 산업과 정치의 권력을 재배치한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저작권, 수익성, 시장 같은 쟁점들은 사실 주변적인 문제일 수 있다.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인공지능 도구의 보편화는 생산성 폭발과 양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대안으로서 극단적인 태도가 주목 받을 수도 있다. 요컨대 게으름, 나태함, 방만함, 무계획, 우연성, 이타성, 무가치함의 가치 재배치. 어떤 곳에서는 극단적 비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새로운 효율성으로 재정의될 지 모른다.

물론 중요한 것은 모종의 이분법을 벗어난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을 저울질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저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구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김그륜 디자이너의 영상이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징후적이었습니다. 구독자님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떠오르는데, 함께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구독자님이 조직의 리더라면, AI로 콘텐츠 제작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까요?
AI는 저예산 프로젝트에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라면 이유는 뭘까요?
구독자님이 실무자라면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요?
얼마나 자주(혹은 능숙하게) AI를 이용하시나요? AI 활용 능력이 취업이나 승진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세요?
김그류 같은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AI로 높은 수준의 뮤직비디오나 콘텐츠를 쉽게 제작할 수 있을까요?
AI 시대에 우리는 당장 무엇을 배우거나 시작해야 할까요?
미래는 희망적입니까?

이 질문 외에도 구독자님의 생각을 자유롭게 SNS나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은 1500명의 독자들이 모여있는 MIT(뮤직인더스트리토크) 단톡방에 감상을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 under10kpop | 김오키 - 럭키 (feat.원슈타인)

엊그제 발매된 김오키의 새 앨범 [힙합수련회]의 수록곡입니다. 원슈타인이 피쳐링으로 참여했고요. 다른 곡들에는 김일두, 오메가 사피엔, 탁경주, 갤럭시 익스프레스, 오리사카 유타, 동이 같은 다국적/다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습니다.

김오키는 정말 쉼 없이 새로운 곡을 발표하는 아티스트인데, 언제나 기대 이상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저는 그게 너무 신기하고 고맙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 느꼈던 순간의 감정을 제목으로 만들어 놓고 그대로 쓴다”는 김오키의 우연한 작법은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주목 받을 만한 방법론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인공지능이야말로 우연한 결과물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생각해보죠.)

심지어 이 곡의 메인 테마는 너무 아름답죠. 오후 5시 무렵의 차갑게 식은 한강 공원 어디 쯤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기분이 됩니다. 앨범 소개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그냥 흔하디 흔한 만나고 헤어지고 잊어가고 살아가는 이야기'.

창작이란 대체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