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로 제작한 최초의 뮤직비디오
지난 5월 2일, 워시드 아웃(Washed Out)의 싱글 "The Hardest Part"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이 비디오는 오픈A.I.의 텍스트-투-비디오 제너레이터인 SORA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문가들과 협업한 최초의 결과물이자 A.I.로 제작된 영상 중 가장 긴 버전이다.
연출은 폴 트릴로 감독이 맡았다. 80년대 분위기를 배경으로, 어느 커플의 삶을 고등학교부터 결혼 이후까지 빠르게 훑어가는 내용이다. 인생의 수많은 우연과 선택과 복잡함 속을 관통하는 장면 위로 "Don't you cry / He is alright now / The hardest part / Is that you can't go back"이란 가사가 흐른다. 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SORA가 생성한 700여 개의 짧은 영상 중 55개를 선별하고 편집해 약 6주 만에 완성했다.
공개된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비디오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유튜브 댓글의 입장은 명확하게 갈라진다. 주로 소름끼친다는 의견이 많지만, 인공지능 영상의 미학에 대해 놀라는 입장도 많다.
그런데 폴 트릴로 감독이 인공지능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10월, 루브르 박물관에서 촬영된 자크(Jacques)의 "Absolve"는 기존 VFX의 기술을 인공지능에 접목해 제작한 뮤직비디오다. 그는 광고, 뮤직비디오 등에서 창의적인 기법과 연출을 선보이면서 Vimeo에서 20회 이상 '에디터 픽'에 선정되었고, 뉴욕 타임즈, 롤링스톤, 바이스, 애틀랜틱, 뉴요커, GQ, MIT 리뷰 등의 미디어에 '주목해야 할 30세 이하 감독' 등의 타이틀로 소개되었다. 새로운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시대의 개척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시간과 재정적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SORA를 활용했고, 이상하고 기이한 장면도 그냥 사용하면서 특유의 미학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도구로서 매우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많은 뮤직 비디오는 큰 꿈을 꿀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전에는 감히 꿈꿀 수 없었던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AI가 음악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기술을 그 기술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모드를 열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1980년대 초반의 MTV 뮤직비디오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사운드와 새로운 영상의 미개척지를 탐험하던 음악가와 감독들 말이다. 요컨대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 내일이 불안한 우리는 어둠 속을 더듬는 대신 과거의 뚜렷한 흔적을 살피는 게 더 필요할 것이다.
오래된 미래: 혁신적인 80년대 뮤직비디오 12편
물론 MTV 시대 이전에도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그때는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필름 클립'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시초도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TV가 대중화된 1960년대에 음악의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비디오는 음악가가 노래하는 장면이나 방송이나 콘서트를 전후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촬영된 게 전부였다. 세르쥬 갱스부르도 초기 뮤직비디오 시대의 스타였다.
그런데 MTV가 중요한 이유는 뮤직비디오를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초중반의 뮤직비디오는 현대 음악 영상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최신 기술을 접목해 실험적 미학을 시도하는 각축장이 되었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연출한 뮤직비디오 감독들은 광고업계로 진출하거나 할리우드로 진출하기도 했고, 혹은 역으로 영화 감독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커리어를 확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 시기의 뮤직비디오가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폴 토마스 앤더슨,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즈, 데이빗 핀처 등은 1990년대에 뮤직비디오로 활동했던 감독들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오히려 1980년대의 뮤직비디오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데이빗 보위 - ASHES TO ASHES | 데이빗 말렛, 1980
1980년 MTV의 역사는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후 MTV의 미학에 영향을 준 것은 데이빗 보위였다. "Ashes To Ashes"의 뮤직 비디오는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뉴 로맨틱스 밴드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MTV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꽃피게 될 창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피에로 광대 의상을 입은 데이빗 보위는 뉴 로맨틱의 제자들(특히 비저지(VISAGE)의 스티브 스트레인지)와 함께 아트 팝의 정점을 찍은 순간을 묘사한다.
이 영상을 연출한 데이빗 말렛(David Mallet) 감독은 1970년대 후반 스콧 밀라니, 브라이언 그랜트, 러셀 멀케이와 함께 공동 설립한 MGMM에서 새로운 형식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했다. 아이언 메이든의 "Run To the Hills",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 러쉬의 "Distant Early Warning", 퀸의 "Radio Gaga", "I Want to break free" 등을 연출했고, AC/DC의 수많은 뮤직비디오를 감독했다. 이 경력을 토대로 그는 소프라노 사라 브라이트먼의 콘서트 영상과 태양의 서커스 실황, 핑크 플로이드의 [Pulse], U2의 [Pop Mart] 콘서트의 감독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토킹 헤즈 - ONCE IN A LIFETIME | 토니 바실, 데이빗 번 (1981)
장기하와 얼굴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던 토킹 헤즈의 1981년 싱글 "Once in a Lifetime"는 MTV 초기의 가장 혁신적인 비디오였다. 뮤직비디오에 블루스크린을 처음 도입한 작품이며, 종교적인 분위기의 영상이 강렬한 이미지를 만든다. 이 영상의 연출은 데이빗 번과 토니 바실이 공동으로 감독했고, 토니 바실이 안무를 맡았다.
토니 바실은 치어리딩의 대명사인 "Mickey"로 유명한 바로 그 가수 겸 댄서다. 이 노래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0대였다.
토니 바실은 "Once in a Lifetime"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빈 방에 카메라와 데이빗 번을 두고 내버려뒀다고 했다. 이후 그는 편집으로 그의 동작을 골라냈다. 목표는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 최저 예산과 최소한의 기술을 실험하는 데 있었다. 이 뮤직비디오는 이후 TV라는 매체에 어울리는 뮤직비디오 기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측면에서 매우 큰 영향을 줬다.
듀란 듀란 - Hungry Like the Wolf | 러셀 멀케이, 1982
1980년대의 MTV와 듀란듀란을 분리할 수는 없다. 이들은 초기 MTV의 인기를 이끈 동력이자, 뮤직비디오에 가장 다양하고 대중적인 실험을 한 밴드였다. 이들의 비디오 파트너는 러셀 멀케이(Russell Mulcahy) 감독으로,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연출한 바로 그 감독이다.
다른 아티스트들이 뮤직비디오를 저예산으로 찍을 때 듀란듀란은 고예산으로 영화적인 연출을 지향했다. 스리랑카의 정글 로케이션에 35mm 카메라가 도입된 이 뮤직비디오는 1981년에 박스오피스 히트한 [인디아나 존스: 레이더스]의 분위기를 음악 영상에 도입하는 시도였고, MTV에서 높은 시청률을 차지하며 빌보드 핫 100 3위까지 올랐다. 1960년대 비틀스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다면 듀란듀란은 1980년대에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끈 주역이었다. 러셀 멀케이가 연출한 듀란듀란의 "Rio"는 이후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준 뮤직비디오로 손꼽힌다.
러셀 멀케이 감독은 1981년 MTV에서 재생된 최초의 뮤직비디오인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연출하며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후 그는 보니 타일러의 "Total Eclipse of the Heart", 엘튼 존의 "I'm Still Standing", 킴 칸스의 "Bette Davis Eyes", 컬쳐 클럽의 "The War Song" 등으로 80년대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정의했다. 이후 1985년 크리스토퍼 램버트와 숀 코너리가 주연한 컬트 영화 [하이랜더]를 감독하며 할리우드에 진입했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퀸이 맡았고, 주제곡은 퀸의 "Who Wants To Live Forever"다.
신디 로퍼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 에드 그릴스, 1983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은 역대 뮤직비디오 중 가장 경쾌한 에너지를 가진 작품이다. 이 비디오는 3만 5천 달러 미만의 저예산으로 촬영되었고, 신디 로퍼와 함께 춤을 추는 엑스트라들은 음반사 사무직원들이었다. 까칠한 아버지로 출연한 덩치 큰 남성은 프로레슬러로 유명한 루 알바노다.
비디오의 연출은 에드 그릴스(Edd Griles)로, 1979년 딥 퍼플과 레인보우 같은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블루 엔젤이라는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는데, 이 밴드의 멤버가 신디 로퍼였기 때문에 그가 솔로 데뷔한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의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었다. 1984년 빌보드 어워드에서 이 비디오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 비디오로 MTV VMA(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감독 후보에 올랐다. (동시에 그는 이 쇼의 연출자이기도 했다.) 이후 TV쇼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1990년대에는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쇼를 연출했고 2000년대에는 HBO와도 일했다.
마이클 잭슨 - Thriller | 존 랜디스, 1983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는 원래 뮤직비디오로 제작될 예정도 없었다. 앨범 [Thriller]의 리드 싱글은 "Billie Jean"이었고, 이미 앨범 판매가 잘 되는 중이라서 홍보 영상을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이클 잭슨이 "Thriller"의 비디오를 만들고 싶어했다. 존 랜디스가 연출한 1981년 영화 [아메리칸 웨어울프 인 런던]을 보고 그 아이디어를 뮤직비디오에 넣고 싶어한 것이다. 존 랜디스는 이미 1980년작 [블루스 브라더스]로 할리우드의 히트 감독으로 인정받았고, 한 번도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뮤직비디오 연출을 제안받은 존 랜디스는 마이클 잭슨에게 일반적인 뮤직비디오가 아닌 극장용 단편 영화로 제작하자고 역제안을 했다. 거기에는 뮤직비디오가 잘 되어 봤자 음악가의 자산이 되므로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자신의 수익을 고려한 복안이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비디오는 결국 장편 영화 수준의 제작비인 90만 달러 예산에 극장용 35mm 필름으로 촬영된 단편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1999년 MTV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뮤직비디오, 2001년 타임 매거진이 선정한 최고의 뮤직비디오, 2009년에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선정된 최초의 뮤직비디오 등 역대 최고의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1983년 당시 MTV는 생각과 달리 상당히 마이너한 채널이었다. 적자도 커져서 경영진은 투자자들로부터 최후 통첩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당시 MTV는 록 뮤직비디오를 틀고 싶어했기 때문에 흑인 음악은 배제되었지만, 마이클 잭슨이 그런 편견을 깨뜨리며, MTV를 메이저 채널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 바로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과 "Beat It" 뮤직비디오였다.
"Billie Jean"은 이후 언급할 스티브 배런이 감독한 작품으로, 스타를 뒤쫓는 파파라치를 스릴러 같은 분위기와 판타지가 가미된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Beat It"은 1983년 3월 31일 황금 시간대 MTV에서 방영되면서 크게 히트했는데, 음악으로 폭력을 멈춘다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실제 갱단 80여 명을 섭외했다. 이 비디오에 등장한 단체 군무는 이후 마이클 잭슨 뮤직 비디오의 특징이 되었고, 케이팝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이클 잭슨 - Beat It | 밥 지랄디, 1983
"Beat It"의 뮤직비디오는 밥 지랄디(Bob Giraldi)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당시 그는 광고 감독으로 활동했고, 이전에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적이 없었다. 마이클 잭슨이 그의 광고를 보고 스카웃해 뮤직비디오를 맡긴 것이다. 이 비디오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컨셉을 빌려왔다고 알려졌지만, 밥 지랄디는 자신이 자란 뉴저지 패터슨의 거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밥 지랄디는 이후 1984년, 마이클 잭슨이 출연하고 미국 광고 시장의 전환점이 된 펩시의 뉴 제너레이션 광고로도 유명하다. 이 광고 촬영 중 마이클 잭슨은 머리에 불이 붙어 두피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아하 - Take On Me | 스티브 배런, 1985
"Take On Me"의 마법 같은 뮤직비디오는 기획, 촬영, 연출, 기법에 있어서 정말 획기적이었다. 실사 영상을 연필 스케치 애니메이션으로 트래킹하는 최신 기술인 로토스코핑이 적용된 최초의 뮤직비디오였고, MTV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1986년 MTV 뮤직 비디오 어워드에서 최우수 연출상과 최우수 특수효과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 비디오는 스티브 배런이 연출했는데, 그의 대표작은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을 비롯해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Money For Nothing"이 있고 브라이언 아담스, 더 휴먼 리그, 로드 스튜어트, 티어 포 피어스 등과 함께 작업했다. "Take On Me"와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각각 10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스티브 배런은 할리우드에서 [닌자 거북이](1990)와 [콘헤드 대소동](1993), [피노키오의 모험](1996) 같은 영화 감독으로 커리어를 이어갔다.
다이어 스트레이츠 - MONEY FOR NOTHING | 스티브 배런, 1985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Money For Nothing"은 특수 효과와 애니메이션을 사용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상징적인 뮤직비디오로 손꼽힌다. MTV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클립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상에는 만화 속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당시 많은 MTV 시청자들은 이 컴퓨터 그래픽에 상당한 반감을 표현했다. 컴퓨터가 인간성과 음악의 진정성, 심지어 컴퓨터그래픽이 일상화되면 영상업계의 배우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의 인공지능 음악에 대한 반응과 거의 유사하다.
로버트 팔머 - ADDICTED TO LOVE | 테렌스 도노반, 1985
로버트 파머의 "Addicted To Love"는 온갖 실험이 교차하던 시절에 패션계의 세련됨과 섹시함을 도입한 비디오였다. 성평등 논란을 일으킨 로빈 시크와 퍼렐 윌리엄스의 "Blurred Lines"에서도 이 비디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만큼, "Addicted To Love"는 하우스 파티 의상과 패러디를 일으키며 이후 뮤직비디오 연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상을 연출한 테렌스 도노반(Terence Donovan)은 1960년대 영국의 패션 사진작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주로 하퍼스 바자, 보그 같은 패션 잡지에서 활동했고, 3000편 정도의 TV 광고를 찍었다. 흔히 하이패션의 사진 컨셉 중 하나인 폐허를 배경으로 하는 패션 사진을 처음 창안한 인물로, 2차 대전을 겪은 그가 폭격으로 파괴된 고향의 산업 풍경을 패션 사진의 배경으로 삼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는 삭막하고 거친 도시 환경에 패션 모델을 배치해 인상적인 순간을 남기는 트렌드를 만들었다.
제네시스 - LAND OF CONFUSION | 제임스 유키치, 1986
제네시스의 "Land of Confusion" 뮤직비디오는 MTV의 뮤직비디오가 정치 풍자 콘텐츠로도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모티브로 삼은 얼굴 인형은 영국의 TV 쇼 [Spitting Image]의 아이콘에서 가져왔다.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슈퍼맨 복장을 하고 냉전 시대의 악당들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모습도 등장하는데, 이 엉뚱하고 과장된 비디오에는 티나 터너, 마돈나, 마이클 잭슨 같은 인물들의 인형도 등장한다.
감독은 제임스 유키치(James Yukich), 그는 EMI의 우편실에서 일하면서 프로듀서로까지 성장한 인물로, 독립 제작사인 Split Screen Inc.를 설립하고 500편 이상의 뮤직비디오, 콘서트, 광고 및 TV 프로그램을 감독했다. 그의 전성기는 1980년대가 아니라 1990년대였다. 데비 깁슨, 뉴 키즈 온 더 블록, 필 콜린스, 메가데스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뉴 오더 - TRUE FAITH | 필립 드쿠플레, 1987
1987년 뉴 오더의 "True Faith" 뮤직비디오는 프랑스 안무가 필립 드쿠플레가 감독했다. 초현실적인 영감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1988년 BRIT 어워드에서 올해의 비디오상을 수상했다. 화려함과 기괴함이 지배하는 영상에서 댄서들은 서로의 뺨을 때리거나 우아한 발레 동작을 선보이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도 등장한다. 아트 팝, 아방가르드, 컨템포러리가 혼합된 순간을 보여주는 극적인 비디오.
필립 드쿠플레(Philippe Decouflé)는 태양의 서커스의 '아이리스 쇼'를 연출한 작가 겸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리옹 오페라 발레단에서 커리어를 쌓았고, 뮤직비디오와 광고에서도 일했다. 폴라로이드와 협업한 영상 작업은 1989년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1992년 프랑스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의 안무를 맡았고, 1997년에는 칸 영화제 50주년 기념식의 퍼레이드를 연출했다.
마돈나 - Like a Prayer | 메리 램버트, 1989
1980년대 뮤직비디오를 정의하는 작품 중 하나는 마돈나의 "Like A Prayer"일 것이다. 여기에는 불타는 십자가, 교회, 폭력과 성흔, 순교의 이미지가 혼하되어 있다. 특히 마돈나가 성녀를, 흑인 캐릭터가 예수를 상징하는 장면들은 당시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의 카톨릭, 기독교 관계자들의 반발을 촉발시켰다. 신성 모독이라는 입장과 혁신적인 재해석이라는 입장이 크게 충돌하면서 마돈나는 팝 스타가 아니라 팝 아이콘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비디오는 메리 램버트(Mary Lambert)가 연출했다. 그는 "Wicked Game"으로 유명한 크리스 아이작의 첫 번째 뮤직 비디오 "Dancin'"과 자넷 잭슨의 "Nasty", "Control" 뮤직 비디오를 감독했고, 애니 레녹스, 믹 재거, 휘트니 휴스턴, 머틀리 크루, 스팅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돈나의 초기 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한데, "Like a Prayer" 외에도 "Borderline", "Like a Virgin", "Material Girl", "La Isla Bonita" 등을 제작했다.
메리 램버트는 1989년,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공포의 묘지(Pet Sematary)])로 할리우드에 데뷔한다. 이 작품은 호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1992년 [공포의 묘지2]를 제작하는 배경이 되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