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47 |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해도 / 장재열

이번 주에는 잠을 잘 못 잤어요.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틈틈이 마감을 하고 일을 하느라 분주했네요. 스케줄링에 실패한 제 탓이죠 뭐. ㅎㅎ 구독자님의 일주일은 어땠나요? 분주했나요, 한산했나요, 불안했나요, 아니면 행복했나요.

오늘의 밤편지는 '내 친구의 마음 건강을 위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입니다. 마침 고민하던 내용을 재열님이 써줬어요. 일단 오늘의 음악 먼저 듣고, 함께 읽어요.

요즘 여행 영상을 다룬 뮤직비디오가 부쩍 늘어난 것 같아요. 코로나19 상황 때문이겠죠. 여행은 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요즘, 이런 영상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곤 합니다. 수잔의 신곡 뮤비도 남미 여행기를 담았는데요, 재미있는 건 아빠와의 여행을 담았다는 점 같아요. [Con papá]라는 제목으로 아빠 목소리가 담긴 "Con papá"와 "투명한 하늘"을 실었어요. 비디오가 너무 유쾌하고 아름다워서 요즘 자주 보는 뮤직비디오입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되묻게 되네요. 

우리가 빛이 될 수는 없겠지만 | 장재열

어느날 밤 열한시. 카톡 하나가 왔습니다.

: 재열 쌤, 나 너무 미안한데 잠깐만 전화해도 돼요?

그날따라 저는 너무 아파서 앓아누운 날이었습니다. 비몽사몽 상태로 겨우 전화를 받았지요. 힘들어 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 금방 끊지 않을까. 빨리 끊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통화버튼을 누른 순간,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지인은 전화를 받자마자 무너지듯 오열했어요.

"내가... 뭔가 부서져 버린 것 같아요. 뭔가 이상해요... 나... 살고 싶지 않아요."

잠깐. 여러분도 한 번 쯤 이런 경우 있지 않나요?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둘, 걱정될 때. 그들을 보면서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게 되죠. 

코로나19 때문인지, 요즈음 특히 ‘내 친구의 마음건강이 걱정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이런 마음, 자신만의 동굴로 점점 들어가는 누군가를 보면서 뭐라도 하고픈 마음이야말로 보편적인 감정일 겁니다.

이때 중요한 건 뭘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우울감, 불안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질환’의 경계로 접어든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에요. 감정은 사람과 사람의 교감으로 나아질 수 있지만, 질환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다시, 그날 밤의 통화로 돌아가 볼까요?

그때 저는, 전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무거운 공기를 느끼고는 직감했습니다. ‘이건 내가, 보통 사람인 내가 섣불리 할 수 없는 일이구나.’라고요. 그래서 조언을 하거나 뭔가를 해주는 대신, 그저 이 격앙된 밤이 지나갈 때까지 함께 있기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다가, 눈물이 터질 때는 가만히 기다렸어요. 한참 뒤 조금 안정된 상태의 그에게 저는 말했습니다.

“저 지금 누워있는데, 우리 같이 누워볼래요? 그리고 나랑 같이 심호흡 좀 해봐요. 인중에 주의를 집중하고 들숨 날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에 집중해보자고요. 조금 생각이 멈출지도 몰라요.”

그렇게 삼십 분 정도 우리는 말없이 들숨과 날숨을 주고받았어요. 조금 졸린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오늘 잘 잤는지, 꼭 내일 아침에 말해줘요. 꼭 내일 연락해줘야 해요. 기다릴게요. 꼭. 약속해요.”

그리고 내일 당신의 안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내일해야할 무언가를 약속한 거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거에요. 지금, 당신 곁에도 마음 동굴 속 깊은 어딘가를 혼자 헤매는 친구가 있다면, 누구의 도움에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라도 내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해요.

보통 사람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길 잃은 그에게 출구를 찾아주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 긴 어둠의 여정을 함께 손잡고 걸어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인 우리는 그를 어둠 속에서 빼내지 못해요. 그건 잘 훈련된 길잡이의 몫이기도 하고, 스스로 출구를 향해 한 걸음 내딛을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대신 우리는 어둠 속에 웅크린 그를, 그의 어둠 속에서 잠시라도 함께 머물러 줄 수 있어요. 밖으로 빼내지 못할지언정, 그와 함께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더 훈련된 전문가에게 인도하는 것 역시, 우리의 사소하지만 가장 큰 역할일지 모릅니다. |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제가 배운 것: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것'

재열님의 글을 읽고 새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네, 다들 고개를 끄덕이겠죠, 그런데 솔직히... 그거 잘 구분하지 못하잖아요? 😭

저는 제가 그걸 잘 구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죠. 뜻밖의 영역에서 그걸 깨달았는데, 재열쌤 같은 상황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다가 알았어요. 나름 콘텐츠 업계에서 오래 구르며 단단해졌다고 생각한 저는 제가 정말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함께 일했던 친구들, 동료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얘길 들었죠. '우진은 종종 답정너 같고, 자신이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요.'

어머 충격... 나 그런 사람 아닌데? 아닌데! 속상했죠. 화도 좀 났어요. 뭐래, 이 밀레니얼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데 이래저래 생각을 거슬러보니, 아이고 맞아요. 저는 너무 자신했어요. 내가 다 알고 있고, 잘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다고요. 근데 과연 이런 태도가 일할 때에만 나왔을까요? 아니죠. 저는 모든 관계, 심지어 걱정스러운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해결할 수 있어. 도울 수 있어. 더 나은 쪽으로 이끌 수 있어. 

그게 틀렸다는 걸 깨닫자마자 혼란스러웠어요.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그들에게 무슨 쓸모가 있지? 나는 여기에 왜 있지....

이런 생각을 내려놓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저는 제가 그런 상태에 놓였을 때에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도우려고 하는 마음을 너무 잘 알겠지만 그게 도움이안된다는 것도 아니까요. 하지만 내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그런 호의가 더 무겁게 여겨지고, 더더욱 죄책감을 느끼게 했어요. 아 뭐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다 필요없고 사라지고 싶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을 안다'는 것과 같다는 걸 배웠어요. 그래야 우리는, 일이든 사람이든, 좀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도요. 나는 이걸 할 수 있고, 저걸 할 수 없어. 이걸 아는 게 자신 뿐 아니라 관계를 지키고, 나아가 누군가를 진짜로 도울 수 있다는 것도요. 

좋은 동료가 되고,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파트너가 되는 일이란 어쩌면 바로 거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오늘의 두번 째 곡은 하루카 나카무라의 음악입니다. 미니멀한 사운드 스케이프로 누자베스와 협업했던 걸로도 유명한, 그러나 사실 독자적인 커리어로도 훌륭한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에요. 왜, 가끔 음악이 고픈데 사람 목소리는 좀 피하고 싶은 때 있잖아요? 그럴 때 듣기 좋은 음악입니다.  

구독자님의 오늘 하루, 어땠나요. 저는 늘 궁금해요. 알아요, 밤레터는 그저 수많은 뉴스레터 중에 하나일 뿐이고, 우리는 생각만큼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이 짧은 순간이 구독자님에게 들숨과 날숨 같은 때면 좋겠어요. 그러길 바랍니다. 당신이 밤에도 일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저는 오늘도 밤에 일합니다만... ㅋ 오늘도 자신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밤을 보내세요.

일 많고 고독한 밤, 차우진이었습니다.

📻TMI FM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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