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크리에이티브X성수]에서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켄지(KENZIE)와 실감형 영상 제작사 앰버린이 협업한 [NEO PARASPECTRUM] 전시가 열렸다. [NEO PARASPECTRUM]은 프로듀서 켄지와 앰버린이 협업한 이머시브 비주얼테크 아트로, 켄지가 재작업한 음악을 새로운 세계관으로 구성한 음악 전시다.
전면과 천정이 하나로 연결된 스크린과 소니의 360 리얼리티 오디오(360 Reality Audio) 시스템을 기반으로 NCT 드림의 “Hello Future”, 에스파의 “Supernova”, 라이즈의 “Memories”의 편곡 버전에 앰버린의 실감형 영상이 결합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런던의 아우터넷(Outernet London)에서는 ‘Korean Gipsy'라 불리는 국악 그룹 상자루(상자 속 자루 음악: 전통의 틀 안에서 자유로운 음악을 뜻한다)와 협업한 실감형 콘텐츠 [지신 RV(Jisin RV)]와 켄지 프로듀서가 참여한 [빛의 찬가(Hymn of Light)]라는 작품을 제작, 전시했다.
아우터넷은 음악, 영화, 예술, 게임 및 리테일 경험을 새롭게 연결한 '도심 엔터테인먼트 디스트릭트'로 건물 내부에 4층 높이의 고해상도 LED 스크린을 통해 몰입형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렇게 라이브 공연 뿐 아니라 콘텐츠 산업 전반에 있어서 몰입형 테크놀로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이 전시를 준비한 배진희 앰버린 대표와 켄지 프로듀서에게서 몰입형 콘텐츠의 비전과 제작자의 고민은 무엇인지 들었다.
정의: 앰버린은 아트테크 그룹이다
2007년 창립한 아트테크 그룹 앰버린은 15,000여회 이상의 공연 영상 기획 및 연출, 제작의 경험을 통해 ‘오디오 비주얼라이제이션’ 전문 제작사로 자리잡았고 최근에는 20여 명의 영상 제작, 인터랙션, 프로그래밍 개발 등 전문 인력들이 XR, AR, 인터랙티브, 홀로그램, 프로젝션 맵핑 등 뉴테크놀로지를 융합한 콘텐츠 개발과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상자루의 [지신 RV(Jisin RV)]는 영남 지역에서 정월보름날에 연중 무사하고 복이 깃들길 비는 마음으로 지신을 밟아 잡귀를 쫓는 행위인 '지신밟기'에 미국의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스타일을 결합한 상자루의 음악이다.
이 영상의 중심 공간에는 산천초목과 기암괴석을 형상화한 전통 무대 구조물인 '산대'를 3D 모델링하여 실제처럼 구현하고, 오방색을 적용한 다채로운 빛 컬러를 LED를 배경으로 활용해 각 아티스트의 무대 공간에 변화를 주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크기로 과장된 ‘산대’, ‘고깔’ 등 한국 전통 문화 요소는 볼류메트릭 촬영으로 데이터의 거친 질감과 입체감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수많은 연희자들이 가상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한편 켄지 프로듀서가 참여한 [빛의 찬가]는 좀 더 판타지에 가깝다. 어두운 숲 속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다양한 발광체들 앞에 어떤 존재가 나타나 그들을 아름답게 지휘한다. 어두운 숲은 이내 빛과 음악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뀌고, 지휘자는 금새 아름다운 숲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다. 어둠 속에 있든, 찬란한 낮에 있든 우리는 그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희망을 꿈꾼다. [빛의 찬가]는 그 아름다움을 위한 연주다.
문제: 콘텐츠 시장의 트렌드가 달라졌다
앰버린이 참여한 15,000여 건의 공연에는 조수미의 홀로그램 미니 콘서트 [빛으로 그린 노래], 2022 MAMA 콘서트, 2023 에스파 팬미팅, 2023 세븐틴 [Follow] 투어, 2023 엄정화 [초대] 콘서트, 넬의 [Afterglow] 콘서트, 2024 빈지노 [NOWITZKI LIVE], 2024 윤하 20주년 콘서트 [스물] 등이 있다.
특히 윤하의 20주년 콘서트에서는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우주' 컨셉을 키비주얼로 두면서 개별 곡들의 특성이 강조되는 영상 연출로 다양한 비주얼을 구현하고, 공연 엔딩에서는 QR코드를 활용해 현장에서 관객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이벤트까지 운영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6년에 시작된 고민은 케이팝의 성장과 함께 더 깊어졌다. 해외 투어가 열리고 공연의 규모가 커질 수록 영상과 LED 스크린의 활용도도 높아졌지만, 높아진 제작 비용에 비해 수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팬데믹을 계기로 온라인 콘서트, 몰입형 콘텐츠의 수요가 늘었다. 일부 현장에서 공유하던 고민은 업계 전반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앰버린은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IP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콘서트의 영상을 제작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자체 IP를 개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감독 출신으로 공연 영상을 제작하다가 일이 많아지면서 회사를 만들었다는 배진희 대표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 몰입형 영상 콘텐츠와 오리지널 IP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 고민은 켄지 프로듀서와의 협업으로 이어졌다. [NEO PARASPECTRUM]은 앰버린이 영상을 제작하고, 켄지 프로듀서가 음악을 담당하는 구조다. 이 전시의 노래들은 모두 하나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연결된다.
[UTOPIA : PARADOX]라는 큰 주제를 여는 1장 ‘Perfect Illusion’은 NCT 드림의 “Hello Future”와 만화적인 비주얼 아트였고, 2장 ‘The Advent of Chaos’는 에스파의 “Supernova”와 압도적인 비주얼의 캐릭터, 3장 ‘Rediscovery in Chaos’는 라이즈의 “Memories”와 관객 인터랙션이 결합된 형태로 구성되었다.
도전: 확장을 위한 켄지 프로듀서와 협업
[NEO PARASPECTRUM]은 앰버린과 켄지 프로듀서 모두에게 도전적인 프로젝트였다. 대표적인 케이팝 작곡가로 알려진 켄지에게 음악적 확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면, 앰버린으로서는 기존 영상 제작자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제작하고, 나아가 IP홀더가 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마침 2025년은 SM 엔터테인먼트가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지난 30년 간 켄지는 보아, 소녀시대 등 SM의 레거시를 만드는데 기여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였다. 이 시점에서 [NEO PARASPECTRUM]은 켄지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하는 시도이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듀서 켄지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녹아 든 활동.
켄지는 “처음부터 방향을 정확히 정한 작업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하면서 협력하는 작업자들과 여러 방면으로 다음 단계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정의: 앰버린은 뮤직 익스피리언스 회사다
앰버린의 시도와 고민은 수많은 콘텐츠 회사들의 고민을 반영한다. 현재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크게 IP홀더, 제작사, 플랫폼/서비스가 사업적으로 연결되고, 그 각각의 단계에는 다양한 외주 제작사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간 미디어 환경에 따라 사업의 헤게모니는 플랫폼에서 IP홀더로 이동했다. 하지만 제작사는 다르다. 이러한 산업 변화의 폭이 클 수록 제작사의 상황 변수도 커지고 리스크 관리는 더 어려워진다. 앰버린이 기술 기반의 오리지널 IP를 개발하려는 이유다.
지금의 콘텐츠 소비 환경은 ‘경험’에 집중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IP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음악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TV시리즈, 캐릭터, 출판 등도 마찬가지다. 시장도 넓어진다. 콘텐츠 사업자로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자체 IP가 없는 제작사들은 이런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어렵다.
앰버린의 고민은 말 그대로 ‘진행형’이라서 의미가 있다. 좁게는 강점을 어떻게 강화시키고 수익으로 전환하느냐의 문제, 넓게는 이 사업의 지속가능성과 건강한 생태계에 기여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앰버린이 말하는 IP 개발은 하나의 포맷이나 그릇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여러 IP가 담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새로운 비즈니스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 ‘아트 테크 그룹’에서 ‘뮤직 익스피리언스 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NEO PARASPECTRUM]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