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카드의 기쁨과 슬픔(3)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덕질’은 경험이고 '덕후'는 그 경험에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는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의 얘기가 중요합니다. '포토카드의 기쁨과 슬픔'은 한결같이 nn년째 'SM 덕질'을 고집해 온 핑크블러드의 포카 체험기입니다. 

어쩌다 포카를 모으게 됐는지로 시작했고, 어디서 포카를 구할 수 있는지를 돌아봤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게 자연스러운 흐름 같아서 원래 오늘은 ‘포카 보관법’에 대해 쓰려고 했다. 

하지만 주제를 바꿨다. 이유는 ‘아, 이건 좀…’ 싶은 일이 최근 포카판에 벌어진 탓이다. 장본인은 팔도비빔면. 새 모델로 2PM 준호가 선정된 기념으로 포카를 만들었는데, ‘팔도’(1종)와 ‘비빔면’(3종) 총 4종이다. 그 중 ‘팔도’+’비빔면’ 조합을 만들면 팬 사인회 응모권을 준다. 포토카드는 낱개 라면 1봉지가 아니라 4~5개로 이루어진 1묶음에 들어 있다.

문제는 3종인 ‘비빔면’만 잔뜩 나올 뿐 1종인 ‘팔도’가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팬들이 라면을 끊임없이 사도 허탕을 친다. 오죽하면 SNS에 진짜 ‘팔도’라고 쓰인 포토카드가 존재하기는 하냐는 후기도 줄을 잇고 있다.

보통 팬 사인회 응모권은 앨범 판매량과 관계가 있다. 기획사들이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쓰는 가장 보편적인 미끼가 '팬 사인회 응모권'과 '포토카드'다. 내 최애 포카를 뽑으려는 사람, 내 최애 얼굴 보고 대화하려고 사는 사람들이 특히 더 맹렬하게 앨범을 산다. 팔도는 앨범 파는 회사가 아니니 생산품인 ‘라면’에 응모권을 넣어두고 팬 사인회를 미끼로 팬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확률이 극악일뿐더러, 그마저도 ‘참여권’이나 ‘당첨권’이 아니라 단지 ‘응모권’이기 때문에 팬 사인회 참여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혹여 최애 실물을 보고 사인도 받고 짧게나마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싶어 ‘팔도’+’비빔면’ 포카 조합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이렇게 ‘비빔면’ 포카만 쏟아지면 팬은 그저 ‘들입다 라면만 주구장창 산 사람’밖에 안 된다.

앨범 판매량이 ‘내 가수’의 인기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지표(이른바 ‘팬들 화력’)이자 빛나는 커리어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팬들은 무리해서 앨범을 사 왔다. 앞서 쓴 것처럼 포토카드와 팬 사인회 당첨 때문에 앨범을 사는 사람도 많고. 인기 그룹은 앨범을 냈다 하면 100만 장 넘게 판매하면서 대대적으로 기사도 난다. 

이렇다보니, 명백하게 입증된 (주로) 아이돌 팬덤 구매력의 덕을 보려는 이들은 널렸고, 그들은 앨범의 알짜배기가 ‘포카’와 ‘팬 사인회’라는 것도 파악했다. 그러니 오만 군데에 포카(팬 사인회 응모권보다는 오히려 포카 끼워팔기가 더 기승이다)를 끼얹는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업체는 몇만원 이상 구매 시 포카 증정,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이번에 팔도비빔면은 대놓고 희박한 확률 게임으로 이 판을 옮겨버렸다. 

글로벌에서도 '포카로 장난질한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또 라면 회사다. 인도네시아의 레모닐로라는 라면 브랜드는 NCT DREAM을 모델로 삼아 라면에 포카를 넣어 팔았는데, NCT DREAM이 아예 안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홍철 없는 홍철 팀도 아니고 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말 그대로다. NCT DREAM 멤버 얼굴이 들어간 포카도 있지만 대부분은 (팬들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다른 포토카드도 많다는 얘기다. 포토카드 자체가 랜덤 게임인데, ‘아예 포카가 안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기상천외한 경우의 수에 팬들은 경악+황당해했다. 

거기다 이 라면은 해외에서 팔기 때문에 직구를 하려면 여러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래서 공동구매를 할 건지, 어차피 확률이 낮다고 하니 뽑은 사람한테 포카를 직접 사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글도 꽤 많이 올라왔었다. 

덕질할 때 무엇을 산다는 건, ‘파니까’ 사는 경우가 많다. 이 소비의 기본은 ‘사랑’이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니까 사는 거다. 그런데 기업이 덕질러들의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구매력을 바로 수익화하고 숫자로 환산하는 것을 막을 순 없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참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겹게 말하지만 팬들은 ATM이 아니며, 설령 그렇게 보일지라도 각자 이성과 감정이 있다. ‘한탕 해 보겠다’는 생각에 골몰해 팬들 등쳐먹는 짓은 정말 근시안적인 생각이며, 해당 업체에 대한 신뢰를 아예 잃게 만든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 핑크블러드

※ 수요일 코너 안내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4명의 필자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월 1회 연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주기나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답니다~;;;)

1) 핑크블러드의 덕후 마음: 덕후 마음은 미지의 신세계...? 요즘 덕질은 '포카'가 핵심인데, 그걸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보다 이 판에 막 빠져든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궁금하지 않나요? '핑크블러드'가 그런 얘기를 씁니다.

2) 랜디 서의 음악 리뷰: 입체적인 음악 감상을 위한 가이드. '시사인'과 '위버스 매거진', '아이돌로지'에 글을 쓰고, 저와는 '360리뷰'를 진행한 랜디 서 평론가가 주목하는 싱글/앨범 리뷰입니다.

3) 임희윤의 북유럽 가이드: 어디가서 아는 체 하기 좋은 이야기. 동아일보 임희윤 기자가 쓰는 북유럽 음악 가이드입니다. 북유럽의 여러 장르부터 앨범 아트웍에 이르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4) 강남규의 다시 보기: 언제나 '공동체'는 중요합니다. 콘텐츠든 비즈니스든 결국 함께 사는 문제니까요.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 강남규님이 쓰는 영화/드라마/웹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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