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49 | 판단하기 전에 이유를 물어주세요 / 장재열

요즘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정체성도, 직업도, 사는 곳과 좋아하는 커피 종류도 모두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새삼 이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고민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고민의 실체는 달라요. 누군가는 이직 고민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누군가는 재태크를, 누군가는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만 본질적으로 '어떻게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구독자님도 비슷할 지 몰라요. 장재열 작가의 편지가 이런 고민에 대한 힌트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첫 곡은 빌리 아일리시의 신곡이에요. 매우 서정적으로 들리지만 내용은 권력에 의한 성착취, 혹은 모든 위력에 의한 폭력에 대한 곡입니다. 팝 컬쳐와 빌리 아일리시에 대해 매우 다양한 생각이 듭니다.

돕고 싶다면 먼저 물어봐주세요 / 장재열

2주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번 밤레터를 보시고 나서, 몇몇 분들이 질문을 주셨어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친구 곁에 있어만 줘도 된다는 말. 공감은 되는데요.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뜻은 아닐 거 같은데, 조금 더 알려줄 수 있나요?” 라고요.

사실, 가만히 있어주시기만 해도 괜찮은데요. ‘재열씨 글에서 가만히 있어주랬어.’라고 너무 묵언수행이 되면, 꾸준히 친구 곁을 지켜주기가 힘들긴 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우울한 사람의 머릿속 사고 회로, 그리고 “우리가 해주면 좋을 말 / 하지 않는 게 좋은 말”을 준비해봤어요.

전 말이죠. 길고 오랜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이니까, 우울의 감각에 익숙해요. 그러다 보니, 다시 그 아이가 찾아올 기미가 보이면 빨리 알아채고 대비를 합니다. 가장 먼저 에어팟을 귀에 꽂고요. 유튜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카시마 미카의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라는 곡을 듣지요.

그곳에 가면 댓글창에 수많은 동지들이 있습니다. 마치 한,중,일의 우울한 사람은 모두 와 있는 기분이에요. 1년에 한 번씩 온다는 분도 있고요, 이 댓글창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기도해주는 사람, 누군가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봐주세요. 라며 응원을 전하는 사람. 모두 우울한 사람들인데, 슬픔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부둥켜안듯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차갑디 차가운 세파에 얼어붙어버린 사람들이, 모닥불에 빙 둘러 앉아 몸을 녹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답니다. 모두들 이곳에서만은 이해받는 기분, 나같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에 작은 희망을 얻는 기분인 거지요. 저 역시 그 기분을 느끼러 찾아가는 거고요.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노래 가사가 가진 힘이겠지요. 잠깐 함께 볼까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때린 부분만 추려봤어요. 죽으려고 생각한 이유, 공감되시나요? 왜 살구꽃이 피었다고 죽지? 갈매기가 운다고 왜 죽고 싶어?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요. 트위터에서 아주 화제가 된 우울증 환자의 글이 있어요. 우울감이 심해지면, 약봉지를 뜯다가 울 수도 있다는 내용인데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가위를 가져와 자르겠지만, 그러지 못한 채로 계속 손으로 뜯어봅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안되네. 안되네. 안되네. 다 안되네. 시발. 다 안 되네. 약 먹는 게 무슨 소용이야.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라며 운다는 겁니다.

공감이 안되실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꼭 공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써 이해하려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저 그렇구나. 그런 상태인거구나. 알아차려주시기만 해도 돼요. 노래 가사에 나오듯, ‘내일 달라지려면 오늘 바뀌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도, 그게 마음처럼 안 되니까. 그래서 ‘병’인거잖아요. 노력해야 하고, 힘을 내야 한다는 거 다들 알 수 도 있어요. 그렇게 살아본 적도 있을 거구요. 왜냐면, 이 시대의 우울은, 너무 성실히 살아와서 너무 애쓰며 살아와서 만나게 되는 일이 다반사거든요.

그런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일까요. 우울의 그림자가 지나갈 즈음이 되면, 그는 스스로 알아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힘내라는 말이 그 과정을 더 길게 만들지도 몰라요. 뜯어지지 않는 약봉지처럼, 힘내야 하는 것도 알고, 힘내란 말해준 지인을 실망시키기도 싫은데, 계속 힘이 안 나는 자기자신을 더 미워하게 될테니까요.

그러니, 혹시 그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면 “왜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해?”대신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라고 물어주세요. “분명 괜찮아질거야.”보다는 “네가 괜찮아지려면 혹시 내가 무엇을 해줄수 있니?” 물어주세요.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사실은 충분하답니다. |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오늘 배운 것: 역할보다 위치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판단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물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네, 학교가 아니라 여러 관계들, 특히 실패한 관계들을 통해 배웠죠. 그때마다 생각해요. '아, 왜 이걸 몰랐을까!' 

오늘의 글도 마찬가지. '아 이미 알고 있는 건데, 진짜로 내가 늘 그렇게 했을까?'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 '괜찮아질거야'라고 말해버린 적이 있지 않았나... 혹은 돕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런저런 조언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건 아닌가...

게다가 이런 경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관계가 소원해진 연인, 알 수 없는 이유로 힘들어 하는 후배, 알 수 없는 이유로 의기소침해진 직장 동료, 알 수 없는 이유로 불만이 생긴 사업 파트너 등등 여러 관계에서도 겪었던 일이에요. 맞아요. 그때마다 우리는 이 간단한 걸 잊어버립니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자'라는 걸요.

저는 종종 '역할'과 '위치'에 대해 고민합니다. 역할보다 위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좋은 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죠. 그건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나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내가 너보다 나은 위치'에서 돕고 싶은 마음이란 은연 중에 시혜적이고 위계적인 태도로 전환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너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위치는 환경에 따라 늘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빌리 아일리시가 말하는 '권력에 의한 고통' 그대로, 그 위치를 이용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우리는, 저 또한, 그런 실수와 잘못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나이 차이, 경력 차이, 성별 차이, 기타등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내가 같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저지른 잘못들. 

그래서 이 칼럼을 읽고 내가 당신 곁에 있다는 것, 바로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물어보고 찾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등한 관계를 맺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한 도움을 얻고, 그렇게 약간이나마 좋은 삶을 살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오늘의 마지막 곡은 그레이시 에이브람스와 베니 블랑코의 "Unlearn"이에요. 이 단어는 '못배운'이 아니라 '다시 배우는'에 가깝습니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새로운 방법, 때로는 더 나은 방법을 배우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잊는 일(to make an effort to forget your usual way of doing something so that you can learn a new and sometimes better way)'이라고 풀이하고 있어요.

제게도, 구독자님에게도 그런 시간이 계속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자신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밤을 보내세요.

어린이날 밤, 말 많고 고독한 디제이였습니다.

📻TMI FM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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