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퍼 ABC

랜선 배들이

타야나 37 실내 공간

2024.09.22 | 조회 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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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일요일 오전 9시에 읽는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격주 발행)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2년간 항해의 희노애락을 함께 한 호라이즌스 호의 실내 공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랜선 집들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배가 멕시코에 있어 촬영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구독자님의 상상력이 좀 필요해요. 

아래는 몇 안 되는 호라이즌스 호의 인테리어 사진입니다. 보통 배 안에는 물건이 많아 지저분해 보이기에 사진을 잘 찍지 않지만, 호라이즌스 호가 산타 바바라에 머물 때 놀러 온 노서방이 찍어 준 사진입니다. 

노서방은 이날 호라이즌스 호에 처음 방문한 터였습니다. LA 근교의 멋진 저택에 사는 노서방이 이 협소하고 어수선한 호라이즌스 호에 처음 들어오며 "WOW-" 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넓고 럭셔리한 공간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호라이즌스 호가 나름의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호라이즌스 호와의 첫 만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캐나다까지 장거리 비행의 피로를 주렁주렁 매달고, 오밤중의 밴쿠버 시내 앞바다를 고무보트 타고 건너 닻 내린 호라이즌스 호에 승선했죠. 어둠 속에서 첫발을 디딘 데크부터 느낌이 뭔가 낯설었습니다. 콕핏에 번성해 있던 이끼 생태계는 다행히 주위가 깜깜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실내로 내려간 뒤 폭탄맞은 듯 물건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차차 흥분이 가라앉으며 실내 공간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호라이즌스 호는 무려 1980년에 진수된 현대의 요트인데 아래와 같은 디테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https://www.edwardsyachtsales.com/boat/1986/tayana/37/1614/
https://www.edwardsyachtsales.com/boat/1986/tayana/37/1614/

지난 뉴스레터에서 본 적이 있는 물건들입니다. 심지어 아래와 같은 나무 블럭을 실제로 사용해 세일을 조정하기도 하죠: 

그나마 거꾸로 달려 있는...
그나마 거꾸로 달려 있는...

지난 시대 배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조악하게 재현한 짝퉁 옛 목선 같은 느낌이 호라이즌스 호의 첫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만은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줄곧 했습니다. 아늑함을 주는 곡면의 공간이 답답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아름다운 티크목 재질의 역할도 상당히 컸습니다. 

배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목재 중 최고가 티크인데요, 나뭇결이 균일하고 촘촘한 데에다 나무 자체의 오일 함량이 높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염분과 습기, 강한 자외선에도 잘 견디고 쉽게 썩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배 전체를 티크로 만들기도 했으나 무분별한 벌목으로 이제는 큰 티크 나무를 찾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엔 인테리어에 티크목이 쓰였다면 십중팔구 나무를 얇게 포 떠 표면에 붙여 놓은 무늬목 정도입니다. 

그러나 호라이즌스 호가 건조된 40년 전에는 티크 목이 지금처럼 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려 '통' 티크 원목이 아낌없이 쓰였습니다. 심지어는 나무에 조각을 해 놓은 디테일도 있죠. 

위 사진은 살룬과 뱃머리 선실 사이에 있는 수납장 위입니다. 세일링 요트에서 뭔가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을만한 공간들은 이렇게 '난간'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싱크대, 테이블, 선반 할 것 없습니다. 바람을 거슬러 항해할 때 배가 옆으로 기울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파도에 맞아 배가 뿔난 황소처럼 과격하게 움직일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만들어지는 배에서는 원목 조각 디테일은 찾아보기 어렵지지만,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난간 구조는 여전히 필수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배는 작지만, 오늘 투어의 지도 역할을 해 줄, 위에서 본 인테리어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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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뱃머리부터: 

  • 뱃머리 선실
  • 화장실(포트)과 옷장(스타보드)
  • 살룬
  • 부엌(포트)
  • 차트 테이블과 배꼬리 침실(스타보드)
  •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콕핏에서 내려오는 컴패니언웨이 계단이 있습니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세일링 요트에는 물탱크와 배관 시스템이 있습니다. 출항하기 전 해야할 일 중 하나가 물탱크를 채우는 일이고, 배를 장기간 비워둘 때 잊지 말아야할 일이 물탱크를 비우는 일입니다. 이 탱크와 배관 시스템 덕에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단물(소금기 없는 물)을 쓸수 있습니다. 타야나 37의 물탱크는 뱃머리 선실의 침대 밑에 숨어있고, 배관은 중앙의 긴 복도를 따라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 바닥을 뜯으면(?) 쉽게 접근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는 세일로 빗물을 받아 쓰기도 했다고 하지만 요즈음엔 정기적으로 항구에 들러 물탱크를 채우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항해 일정에 제약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장거리 항해를 하는 배들은 바닷물로 단물을 만드는 장치를 장착기도 합니다. 

변기는 단물을 아끼기 위해 바닷물을 펌프로 끌어와 사용하고, 물을 내리면 연결된 선체의 구멍을 통해 대자연이 대자연으로 배출됩니다. 유럽의 중소형 배에서는요. 그래서 닻 내린 배가 많은 곳에서 아침 시간에는 수영을 자제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반면, 미국은 모든 배에 정화조와 같은 역할을 하는 홀딩탱크 사용을 강제합니다. 대자연을 배에 싣고 다니다가 정기적으로 오물 펌프 시설이 있는 마리나에서 비워야 합니다. 

아래는 잡다한 짐과 선주 없이 깨끗한 살룬 사진입니다. 요트의 실내로 들어오는 문인 컴패니언웨이의 계단을 내려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이 살룬이므로 이 곳에서 호라이즌스 호 투어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https://yachthub.com/list/yachts-for-sale/used/sail-monohulls/tayana-37/31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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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디테일을 제외하면 호라이즌스 호와 같은 레이아웃의 타야나 37피트의 살룬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았습니다. 

집의 거실에 해당하는 살룬에는 보통 소파가 있는데 낮에는 식사와 대화의 공간, 밤에는 추가 침실로 변신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어리버리 항해 중에는 포트의 소파를 변신시켜 침대로 만들고 이 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뱃머리 침실보다 안락한 공간이지만 배가 기울거나 흔들릴 때 사용하는 안전장치가 없어 고생스러운 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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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룬에서 뱃머리 선실로 가는 좁은 복도는 기운 배 안에서도 등을 기댄채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 참 편했습니다. 요동치는 배 안에서 요트복 바지에 다리를 넣는 고 난이도 동작을 할 때에도 부상을 입을 염려가 전혀 없었죠. 

오른쪽에 서랍 다섯개가 보이는데 실제로는 네 개만 진짜 서랍이고 그나마 선체의 곡선을 따라 깊이가 각각 다릅니다. 그 옆의 작은 옷장과 함께 항해 내내 저와 선주의 옷 보관소 역할을 했습니다. 강제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게 하는 좁은 공간입니다. 

왼쪽 문을 열면 바닷물 펌프를 장착한 변기와 세면대, 수납장을 갖춘 화장실이 나타납니다. 

뱃머리 쪽에는 선체 바가지의 밑부분이 올라가므로 바닥 면적이 매우 좁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침대를 배치하는데, 높을수록 침대 너비가 넓어집니다. 바가지 아래가 좁고 위가 넓으니까요. 

호라이즌스 호는 침대가 유난히 높고 층고가 너무 낮아 침실로 쓰는 것은 포기하고 창고로 사용을 했습니다. 

이제 살룬의 뒤쪽에 있는 부엌입니다. 

https://yachthub.com/list/yachts-for-sale/used/sail-monohulls/tayana-37/296406
https://yachthub.com/list/yachts-for-sale/used/sail-monohulls/tayana-37/296406

요리 당번이 움직일 필요 없이 제 자리에서 삼면의 부엌기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븐 일체형의 가스레인지는 그네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며 수평을 유지하고 싱크대는 사이즈가 작음에도 둘로 나누어져 그 안의 접시들을 잡아 주기 때문에 배가 요동쳐도 요리와 설거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해수를 펌프해 개수대에서 쓸 수 있어 설거지에 단물을 낭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위에서 여는 냉장고는 공간과 에너지 효율적일 뿐 아니라 배에서 더 안전하기도 합니다. 

그 건너편 스타보드에는 차트 테이블이 있습니다. GPS, 레이더, VHF 라디오 등의 전자 장비도 이 곳에 있습니다. 항해 계획을 세우고, 항로를 점검하며, 통신 장비를 조작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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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배꼬리 선실..이라고 부르기엔 좀 애매한 침대가 하나 있는데요, 야간 항해중에 잠깐 쪽잠을 자라고 이렇게 배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호라이즌스 호에 있는 모든 침대 및 간이침대를 통틀어 가장 안전하고 편한 침대이지만, 아쉽게도 그 안쪽에 엔진 뒤쪽으로 통하는 개구멍이 있기 때문에 막상 침실로 쓸 수 없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호라이즌스 호의 트랜스미션이 먹지 않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선주는 번개같이 컴패니언웨이 계단을 내려와 저 침대 위를 네 발로 기어 들어가 개구멍으로 상체를 집어넣고 엎드린 자세로 트랜스미션 오일을 보충해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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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호라이즌스호의 귀염둥이 엔진. 우리 엔진과 다른 모델이지만 위치는 같습니다. 컴패니언웨이 계단을 들어올린 뒤 그 밑의 상자를 치우면 이렇게 엔진이 있습니다. 썩 좋은 위치는 아니라 엔진 수리하는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근력과 유연성 지구력 등이 필요했습니다. 

구독자님이 어리버리 항해기를 읽으며 상상하던 호라이즌스 호와 비슷한 모습이었나요? 

오랫동안 묵혀(삭혀)두고 있던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선정되면 책으로 출간되는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스키퍼 매뉴얼에서 연재했던 어리버리 항해기 1, 2구간(밴쿠버-LA까지)을 다듬어 월, 수, 금 주 3회 재연재합니다.

어리버리 항해기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메일로 발송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주행하고 싶은 독자님들은 더 읽기 편하실 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의 브런치북에서 만나보세요:

https://brunch.co.kr/brunchbook/bumbling

그럼, 편안한 일요일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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