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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2024년 1월 28일

2025.01.28 | 조회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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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세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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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

어젯밤엔 세 시간 정도 순살만.. 아니 세일만으로 항해했습니다. 바람의 방향도, 세기도 정말 변화무쌍했지만, 택을 바꾸지 않고 대신 루트에서 좀 벗어나더라도 뱃머리 방향만 조금씩 조정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다행히 혼자 당번 서는 중에 태킹하는 일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강한 맞바람이 불자 메인 세일을 진작에 내리지 않은 후회와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다행히 강풍은 오래지 않아 잦아들었습니다.

선주는 출항 전부터 감기기운이 있었는데, 엔진 소음이 없으니 세 시간동안 통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야간항해를 할 때 불안한 마음에 교대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는데, 이렇게 이상적인 세 시간 교대를 하니 밤 항해도 더 짧게 느껴집니다. 교대 횟수도 줄지만, 세시간 통잠을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더군요.

새벽에 거의 죽어 있었던 바람이 해가 뜨자 다시 조금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엔진을 한번 꺼 봤습니다. 엔진 rpm을 줄였다가, 중립에 놓고 좀 기다렸다가, 막상 끄니 속도가 2노트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거슨 사람 걷는 것보다 느린 속도... 하지만, 다시 엔진을 켜지 않고 기다려 봤습니다. 무려 세 시간 동안 조바심을 인내하며 그냥 둥둥 떠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바람이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세일을 조정하고 기다리니, 이 작은 바람이 점점 커져 곧 배를 4노트, 5노트로 밀어주었습니다. 만약 바람이 없다고 일찌감치 엔진을 켰다면 모르고 놓쳤을 바람이었습다.

"아.. 이런거였구나.."

가끔 찾아오는 유레카의 순간에는 그동안의 산발적인 경험과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 있다가 양꼬치처럼 홱 꼬치에 꿰뚫리며 정렬되고 연결되는 느낌이 듭니다. 뜬금없이 수영을 배울 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유체이탈하듯 잠시 항해 중인 호라이즌스 호에서 떠나,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몸에 힘을 뺐을 때의 느낌에 휩싸였습니다. 이 악물고 발차기를 늦추지 않으려 발버둥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물의 흐름, '나 어떻게 해야 할 지 알아'에서 오는 안정감, 조바심과 두려움의 철갑을 벗어 던지고 수영장 한 가운데에 떠 있는 내 몸과 나를 둘러싼 물에 처음으로 눈을 뜨는 것만 같았던 순간. 순살만 세일은 막심이 적극적으로 주창했지만, 내가 순살만 세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에 막심의 말이 가슴에 남았던 것은 아닐까요.

이 항해의 여러가지 새로운 조건들 - 태평양, 나보다 미숙련자와 더블 핸드 세일링, 미심쩍은 배 - 로 인한 두려움으로, 그동안 잔뜩 힘만 들어가 발버둥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는 진이 빠져 버려, '역시 이건 너무 무서운 항해야'라는 선입견만 강화시키는 사이클을 돌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로 시선을 옮겨 봅니다. 그동안 내가 이 바다를 제대로 바라보고 관찰하긴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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