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책에 끼워진, 여름과 봄

봄이 지나고, 샹들리에가 왔다.

2022.06.06 | 조회 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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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늦은 오후, 외출을 하려고 문을 열면 초여름 냄새가 시큰하게 들어온다. 아직 눅눅하다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제법 무거워진 공기에 후끈해진 오피스텔 복도. 여섯 시가 넘었음에도 맑게 갠 하늘과 장마가 언제 올지 몰라 살짝 긴장한 현수막들.

강남구에서 누리기 어려운 사치를 하나 부리는 날이다. 적당한 적막과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가진 카페를 운 좋게 찾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처음 발견한 곳인데, 고작 버스 두 정거장 정도의 귀찮음이, 일 년간 발걸음하지 않게 했다.

해보고 싶은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가보고 싶어 할 때는, 궁금한 미지의 영역에,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 같고, 바깥의 벽돌이 멋지다, 같은 느낌. 실제로 와보니, 에어컨이 춥고, 외관보다 천장에 달린 전등이 멋지고,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에 모두하고 있다. 멋진 천장 등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그것은 글로 표현될 수는 없고 무덤에 혼자 가져갈 무언가가 된다. 숨기고 싶은 것만 비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단어 노트가 있다. 사랑,파랑,빨강,가을. 각각 일본말로 아이,아오,아카, 아키. 가을 노트에는 이렇게 한 구절 적혀있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소리내어 읽으면 더 좋다 한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여름은 조금 더 가볍고, 가을은 조금 더 무겁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비슷한 발음이 많으니, 원래 오사무가 내려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어쨌든 다자이 오사무는 어느 노트엔가 계절에 어울리는 글을 썼나 보다.

나는 체질이 반항아라 계절이 바뀔라치면, 붙잡는 일을 하게 된다. 가을이 오려고 으슬으슬한 날씨에 여름 반팔을 입는다거나, 여름이 왔는데도 봄옷을 고수하거나. 그래서 오늘, 시큼한 여름과 대적하기 위해, 셔츠와 두꺼운 청바지까지 차려입고 나왔고, 가을에 대한 글을 읽는다.

책을 좀 더 넘겨보니, 미남자와 담배, 라는 단편이 나온다. 다자이 오사무가 기자들의 제안에 거리의 부랑아들과 사진을 찍게 된 이야기다. 그는 담배피던 부랑아들에게 담배를 끄게 하고, 꼬치 구이를 하나씩 사준다. 가까이서 어울려보니 다들 꽤나 잘생겼다고 -, 기자들에게 전해준다. 그리고는 다리 밑에서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나중에 그 사진을 아내에게 보여주니, 그를 부랑자로 착각하고 만다. 그의 아내는 제법 진실한 성격이어서, 진심으로 사진 속의 그를 부랑자라고 여겼나 보다.

그의 소설은 반쯤은 자전적이고, 반쯤은 허구라고 한다. 이 소설은 정말로 그가 부랑아들과 찍은 사진이 계기가 되어 쓰였다는데, 사진이 어땠는지, 그가 정말 부랑아처럼 보였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볼까 하다가, 반항아 체질이 튀어나와, 그만두기로 한다.

 

 구독자님,  봄이 가고, 샹들리에가 찾아왔네요. 저의 집은 샹들리에를 달기엔 조금 좁지만, 만약 달린다면 기꺼워하며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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