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이별에도 이름을 붙이고 싶다.

며칠 전, 육개월간 나의 팀원으로 있었던 첫 동료가 퇴사했다.

2022.01.15 | 조회 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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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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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육개월간 나의 팀원으로 있었던 첫 동료가 퇴사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나의 첫 직장이므로, 동료를 떠나보내는 경험도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동료의 마지막 출근 일에는 거의 업무를 주지 않았고, 대신 맛있는 점심 식사와 커피타임을 가졌다. 마지막 사원증을 반납하고 떠날 때에는, 팀원들이 우르르 따라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 또한, 자동 게이트를 통과하는 동료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문득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친한 친구와의 이별이라고 할만큼 섭섭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기엔 꽤 좋았던 직장 동료의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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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려지는 이별은 너무 거창하고 큰 것들이 많다. 오래 만난 연인의 이별 이야기들, 사별을 겪고 슬픔을 오래 이겨내는 사람의 이야기들, 가족끼리 오래 떨어지낸 사연들.

직장 동료의 퇴사는 어떨까. 퇴사라는 말은 너무 정이 없는 것 같고, 앞서 말한 이별이라기엔 너무 거창해서 낯이 간지럽다.

그렇지만 애매한 이별에도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에는 다섯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평범한 경험, 마음에 남는 경험, 기억에 남는 경험, 뜻깊은 경험, 변혁적인 경험

평범한 경험은 스쳐가는 경험이다. 아까 만졌던 문고리의 색처럼 기억도 나지 않는 것들. 마음에 남는 경험은 발에 채이는 조금 큰 돌 같은 것이다. 순간 내 마음을 움직이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기억에 남지 않는 것. 기억에 남는 경험은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 놀이기구를 탔을 때의 그 짜릿한 느낌같은 것. 기억에 남는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면서 뜻깊은 경험이 된다. 그 중에 나를 통째로 바꿔놓는 경험이 있는데 그것이 변혁적인 경험이다.

직장 동료와의 이별은 어떤 경험일까.

아마 강렬한 감정까진 아니지만,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때때로 누군과 공유하고 싶은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기억에 남고, 때때로 뜻 깊은 경험” 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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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얼마전에도 또 애매한 이별을 경험했다.

회사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초기부터 자문단으로 해주신 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시게 되었다.

활동을 그만두신 분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애매한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셨다. 프로젝트 특성상 크리에이터의 의견이 자주 필요해 회사에 초대해서 밥도 대접하고, 종종 자문도 구했었다.

아이돌 연습생이었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스토리처럼 잘 풀리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으셨던 분. 그럼에도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크리에이터 활동을 했지만, 각박한 유튜브 경쟁 시장에서 결국 포기 깃발을 들고 직장인으로 돌아가신다고 한다.

지금은 자문단 숫자는 꽤 되지만, 그 분은 거의 처음으로 모집에 응해주신 분이었다. 그의 사연에 공감하며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십을 약속했지만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얼마전에 마지막 유튜브 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며, 멀리서 나마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따로 보내지는 않고 마음 속으로만 보내는 응원.

그렇게 또, 편지 한 장 쓰지 않고 애매한 이별을 했다.

“편지는 쓰지 않고 마음은 보내도 괜찮은 이별” 이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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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다 보니, 세상엔 대단한 이별보다 애매한 이별이 훨씬 많다.

그러나 삶의 기록을 애매한 것들을 잔뜩 채우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이름을 붙임으로써 더 이상 애매한 것을 줄여나가보면 어떨까.

참, 퇴사한 직후에 동료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고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저보다 훨씬 멋지고 분이 들어오길 기원하구,,,, 제품이 너무 대박나서 제가 후회의 눈물을 쏟을 수 있길(ㅋㅋㅋㅋ) 기원합니당

적당히 진심이 있으면서도 형식적인 인사치레도 섞인 애매한 이별의 말도, 나쁘지 않았다.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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