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호] 기후 위기의 현실, 영화에 얼마나 담겼을까?

💌 뉴스레터 62호

🌏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폭염, 한파, 홍수 같은 극한기후, 이상기온, 해수면상승 등 기후변화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제 기후 위기는 보편적인 전세계 문제이자 우리 일상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

📋 그동안 인디&임팩트에서도 기후위기와 미디어를 주제로 몇 차례 소식들을 전해드렸는데요. 이번 62호 뉴스레터에서는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TV 및 영화 제작자를 지원하는 비영리기관 '굿 에너지(Good Energy)'가 최근 발표한 기후 변화 벡델 테스트 보고서를 소개할게요!

❔ '왜 기후 위기는 영화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보고서는 영화의 성 평등을 평가하는 벡델 테스트를 영화 속 기후 변화가 얼마나 표현되고 있는지로 확장시켰는데요.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한 '기후 변화 벡델 테스트'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영화 속 기후 위기는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

[동향] 기후 위기의 현실, 영화에 얼마나 담겼을까?

- 굿에너지, ‘기후 변화 벡델 테스트’ 보고서 공개

지난 3월, 비영리조직 ‘굿에너지’는 기후 변화 벡델 테스트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 변화 벡델 테스트란 영화 안에서 기후 변화가 얼마나 표현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만들어진 평가 양식이다. 작품의 성 평등 정도를 평가하는 원조 벡델 테스트를 만든 앨리슨 벡델의 지지와 인정을 받은 테스트다.

‘기후 현실성 체크’를 위해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이 제시된다. 영화 속에서 “기후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등장인물이 이를 알고 있는가”. 하지만 올해 오스카 후보작 중 단 3편 만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굿에너지와 콜비 칼리지의 기후환경연구소 벅랩에서는 여기서 규모를 더 키워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박스오피스 상위 250편을 같은 원칙으로 분석했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된 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단 12.8%(해당 기간의 조사 대상 영화 250편 중 32편) 만이 기후 변화가 영화 세계관 내에 존재한다는 첫 번째 조건을 충족했다. 그리고 9.6%인 24편 만이 위 두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했다.

이 보고서는 콜비 칼리지의 연구자들이 작성한 것으로, 2013년부터 2022년의 기간 중 연도별로 IMDB 랭킹 상위 25편씩 작품을 선정해 조사했다. 연구진은 다큐멘터리는 제외하고 극영화만을 대상으로 했고, 배경이 현대 또는 근미래가 아닌 작품 역시 제외했다. 다시 말해 2006년~2100년 사이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극영화만을 대상으로 했다. 서부영화, 시대극(사극), 우주 배경 SF영화의 경우 딱히 극중 인물들이 기후 변화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테스트는 극중 지나가는 말로라도 “기후 변화”, “지구 온난화”, “기후 위기”라는 단어나 그 외 환경 관련한 문장을 언급만 해도 통과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이조차 흔치 않았다. 그 예시로 보고서에서는 <저스티스 리그>에서 배트맨과 아쿠아맨의 대화를 인용하는데, 배트맨이 “북극의 만년설이 녹고 있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또 <슬픔의 삼각형>에서는 대사는 아니지만 “패션계에 등장한 또 하나의 새로운 기후(THERE IS A NEW CLIMATE ENTERING THE WORLD…OF FASHION)”이라고 쓰여진 패션쇼 배경 LED 장면이 언급된다.

사실 이 32편 중 기후 변화에 대해 언급한 장면이 3씬 이상인 영화는 단 6편에 불과하다. <해피 데스 데이>(2017)가 6개 씬으로 가장 언급이 많았는데, 영화가 <사랑의 블랙홀>(1993) 방식으로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고, 주인공이 한 환경운동가가 지구를 지키자고 외치는 말을 듣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봉준호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두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한 작품을 각 2편씩 연출했다. 바로 <기생충>, <설국열차>와 <테넷>, <인터스텔라>다.

아래 리스트는 연도별로 기후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들이다. (24편)

그래도 2010년대 초반 영화들에 비하면 지난 5년 사이 만들어진 작품들은 기후 변화 언급이 많아졌다. 영화계의 인식도 많이 늘었다. 굿에너지를 설립한 안나 제인 조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의미, 즐거움, 아름다움, 그리고 용기를 얻기 위해 이야기를 찾는다. 그리고 우리가 감상하고 사랑하는 영화에 실제 세상이 반영되는 것을 보고싶어 한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 주어진 세상은 기후 위기가 존재하는 곳이다." 조이너는 덧붙여 “그 유명한 벡델 테스트처럼 ‘기후 현실성 체크’도 창조적 도구이자 영화 상에 기후의 존재를 더 드러내도록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고안되었다.”고 설명했다. 

조이너는 조사 결과 ‘기후 현실성 체크’를 통과한 영화들이 그렇지 않은 영화들보다 수익성도 더 높다고 말하며, 굿에너지에서는 2027년까지 매해 만들어지는 영화의 50%가 테스트를 통과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의 미래가 걸려있는 이 중요한 시점에, 스토리텔링은 기후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놓인 현실을 가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콜비 칼리지에서 부교수로서 환경을 연구하는 매튜 스나이더 메이어슨 박사는 이와 같이 설명한다. “제작사, 감독, 작가들이 우리의 기후 현실을 담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

보고서에는 어떤 제작사가 기후 변화를 가장 많이 언급했는지, 해당 주제를 가장 많이 언급한 캐릭터는 어떤 성별(젠더) 및 인종인지, 심지어 홍수, 가뭄, 폭염, 대규모 폭풍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 상황을 묘사한 영화들이 이를 기후 변화의 일환으로 표현 했는지까지 분석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40편의 영화 중 절반 이하만이 대규모 폭풍을 기후 변화와 연관 있다고 묘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22년 굿에너지는 ‘시나리오 플레이북’(참고 : 인디&임팩트 [12호] 기후위기와 미디어)을 공개해,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 상에 이런 주제를 매끄럽게 녹여낼 수 있는지 소개했다. 보고서에 대한 굿에너지의 추천사에 따르면, 극작가들이 어떤 장르를 쓰더라도 기후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캐릭터를 더 많이 등장시키고, 더 다양하게 써내야 한다. 영화는 "긍정적인 기후 행동의 모델"이 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인물들이 무조건 비행기를 타는 대신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묘사를 할 수 있다. 물론, 스토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 보고서는 제작사들이 책임감 있는, 지속가능한 스토리에 대해 실제로 했던 발언을 활용해 압박하기도 한다.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각 제작사별 발언을 인용해 적어두고, 그럼에도 아직 이 산업이 갈 길이 멀다는 결론으로 끝맺고 있다.

“기후 현실성 체크”는 굿에너지와 콜비 칼리지가 공동 개발, 연구했고 새로 나온 보고서는 콜비 칼리지에서 작성했으며 굿에너지와 콜비 칼리지가 공동 발행 및 편집했다. 전체 보고서 내용은 굿에너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글쓴이. 이경진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교육을 듣는 것으로 독립 미디어 영역에 들어섰으나 창작에는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방황하다 현재는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관련 원고 

[12호] 기후위기와 미디어 (2022년 6월 3주)

[31호] 지속가능한 콘텐츠 제작을 위하여 : ALBERT 탄소계산기 (2023년 8월 3주)

[39호] 지구를 생각하는 영화인을 위한 가이드 (2023년 10월 4주)

[45호] 기후 위기 시대, 영화 계속 해도 될까? (2023년 12월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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