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단편 소설

- 사과 반 쪽

2022.07.06 | 조회 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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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에세이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말을 하지 않았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당첨금은 너무 많았고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랬다. 이모가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할 말이 많다면서 곧 출발하겠다고 했다.

 

-엄마 이모가 오겠대.

-그래? 알겠어.

 

나는 아빠와 동생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동생 옆에 앉았다. 조용하게 들려오는 엄마의 한숨 소리에 나는 깨달았다. 이 당첨금은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이모에게 빌린 돈이 많았다. 사업으로 날린 돈 때문이었다. 잘 될 거라는 결심에 결과는 이런 식으로 빚을 진 것이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을 텐데,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평범하고 누구는 가난할까. 바닥에 깔린 돈들을 봤다. 큰 돈을 만져볼 기회가 없으니, 아빠가 현금을 뽑아 기분을 내보자고 했었다.

그런 꿈은 달고 기간은 짧았다. 허망한 꿈이 돼 갔다. 이모네가 구해준 이 집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아빠에게 너부러진 돈을 주워 한 곳에 정리하자고 했다. 이모가 오기 전에 안 보이는 곳에 두자고 했다. 당첨이 돼서 기쁜 건 맞는데 마음은 반대로 흘러갔다.

딩동, 초인종 소리는 빨랐다. 나는 몸을 떨었다. 치가 떨리는 소리였다.

 

-왔어, 비 많이 오지?

-어, 비가 많이 오더라고.

 

엄마가 문을 열어 주었나보다. 부엌과 거실이 연결 돼 있는 곳에서 엄마와 이모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작았고 대화의 속은 깊었다.

 

-주말인데 죄송해요. 형부, 신세 좀 질게요.

 

우리 집 두 칸 방에서 이모가 안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비에 젖은 이모의 바지 단을 보며 비가 꽤 많이 오고 있는구나 생각했다. 괜찮아, 아빠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언니 이모는 왜 온 거래?

 

내 귀에 속삭이는 동생 말에 나는 그저 웃으며 나중에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엄마가 분홍색 동그란 쟁반에 사과와 칼을 올려 놓은 채로 가져왔다.

 

-사과 먹자, 깎아줄게.

 

쟁반을 바닥에 놓은 후 칼을 들은 엄마는 사과를 깎았다. 껍질을 깎아서 사과는 조금씩 하얀 속살을 내비추었다. 깎는 소리는 소름 돋게 들렸다. 그 소리는 끝이 없을 줄 알았는데 금방 끝이 나긴 했다. 하얗게 된 사과를 보니 우리와 같아 보여서 괜히 초라해보였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돼 버린 걸까. 조각으로 자르지 않은 동그란 사과를 이모는 입 속에 넣어 한 입 베었다. 아그작 씹어 먹었다. 엄마는 이모를 한 번 보고,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알겠지, 우리가 받은 당첨금 말이야. 이모한테 주기로 했어.

 

예상된 일이라는 거 알고 있었지만 역시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수많은 돈을 오랫동안 가득 쥐어보지도 못했는데, 이모한테 모든 돈을 줘야한다니. 나는 마지막이라도 발악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말을 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거야?

-너도 알잖아, 굳이 말해야겠니.

 

동생이 내 옆에서 내 허벅지를 툭툭 찔렀다. 언닌 알고 있었어? 말에 조용히 곁눈질을 보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가 돈을 가지기라도 해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그동안에 본 이모는 좋았지만 지금 상황은 복잡했다. 자동으로 뽑아 당첨이 된 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운이었다. 평생 써보지 못하는 큰 돈이 우리 눈앞에 있는데...... 나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우리 반으로 나눠서 가지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엄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이모를 봤다. 왜 아무 말이 없는 걸까. 답답했다.

 

-이모는 왜 아무 말이 없어?

 

이모 앞에서 일이 커지기를 비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운을 다 써도 부족한 게 여섯 개의 숫자였다. 이 순간에 돈을 줘야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과를 먹고 있던 이모는 이제 서야 입을 열었다.

 

-언니가 주겠다는데 너랑 무슨 상관이니.

 

이모는 입 안 가득 사과 알갱이를 씹으면서 말했다.

 

-이건 어른들 이야기야, 너는 빠져 있어.

 

오른 손에 반쪽 사과를 든 이모가 쟁반에 힘껏 내려 놓았다. 이모는 내게 칼에 찌를 듯 눈짓을 보냈다. 내려 놓은 사과에는 즙이 터져 나왔다.

 

-왜 너가 껴서 난리야.

 

나는 속이 꽉 막혔다. 그저 사이다가 필요했다. 그깟 말이라도 못해볼까. 불리해질 때 어른들은 넌 빠져라, 이 말만 할 줄밖에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안방에 있지를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발꿈치를 쾅쾅 찧으며 다른 방으로 옮겨 들어갔다. 내 기분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문을 세게 닫았다. 문을 닫자마자 방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방 문을 살짝 열었다. 문틈으로 저 상황을 살폈다. 이모가 본인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여태까지 이러니 이렇게 살 수밖에 없지. 형부, 죄송하네요.

 

이모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이모가 한 말은 분명 엄마와 아빠한테 하는 것이었는데, 어감은 마치 내게 말하는 듯했다. 그 말을 남기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모 행동에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안방 방바닥에 둔 분홍색 쟁반을 가지고 와 부엌 싱크대에 올려 놓았다. 탁, 놓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문을 열고 나와 엄마를 뒤따랐다. 쟁반 위에 이모가 먹다가 말아 즙이 터져 나온 반쪽 사과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상황은 이러더라도 이 당첨금은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을 것이었다. 전화는 다시 올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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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뜻을 슬기롭게, 김슬지입니다.

2번째 단편 소설을 발행하였습니다. 1번째 단편 소설은 7월 1일 금요일 날짜 기준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매주 금요일 발송은 월간 멤버십으로 한하여 진행한다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 금요일마다 받고 싶으실 분은 전환도 가능합니다.

최선을 다해 질 좋은 글을 써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수요일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몸 건강 조심하시고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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