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언어들

📽️작은 언어들

에디터 수오🌰

나의 모국어는 작은 언어이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같은 큰 언어와 달리 작은 언어들은 울타리를 벗어나면 광활한 세상에 조금 막막해진다. 동시에 자유로워진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원래라면 절대 못 할 이상한 말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것, 카페나 도서관, 기차 등 아무 데서나 내밀한 일기를 쓰는 것, 가끔 수틀리면 욕을 읊조리는 것까지. 하지만 모국어도 작은데 외국어 실력까지 작다면 마냥 자유롭지는 못하다. 2시간짜리 수업 녹음본을 다 듣는 데 일주일이 걸리고, 양질의 글을 얻기 힘들고, 여러 번 돌리고 굴려서 말을 내뱉은 후에도 시원하지 않다.

이렇게 작은 언어가 거대한 걸림돌이 되어 영화관에 가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관람한 영화는 <사랑은 낙엽을 타고>라는 핀란드 영화이다. 핀란드어 음성에 프랑스어 자막이라니. 돌이켜 봐도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당시에는 자막이 없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아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영관의 조명이 꺼지자, 그 막연한 자신감도 불빛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대사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자막에는 모르는 단어투성이였는데 그마저도 너무 빨리 지나가고 말았다. 81분이라는 짧은 상영 시간 동안 두 번이나 조는 바람에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날을 계기로 영화관에 가는 게 두렵지 않아져서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머문 1여 년간 영화관에서 15개 이상의 영화를 봤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러 가서 언어에 굴복한 경험은 <한 남자>, <추락의 해부> 등 그 후로도 계속된다...

영화 희망 편을 재빨리 찾아보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꼽을 수 있다. 연말마다 올해의 책과 영화를 선정하는데, 2024년의 영화는 <괴물>이다. 2024년 1월 1일에 본 영화가 그해의 가장 인상 깊은 영화인 것이다. 내가 할 줄 아는 일본어는 듀오링고로 배운 "스시와 밥과 녹차와 물 주세요."가 전부이기 때문에 <괴물>을 관람할 때도 두 시간 내내 프랑스어 자막만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도 영화가 끝나고 앞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가 들리고서야 여기가 프랑스라는 걸 깨달았을 정도로 영화에 몰입되었다. 작고 귀여운 언어 실력 탓에 영화를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그와 별개로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일본어 대사도, 프랑스어 자막도 뭐 하나 완벽하게 이해한 게 없음에도 언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영화가 마음에 다가온 게 참 신기했다. 영화 자체도 좋았지만 영화를 곱씹으며 돌아오는 길도 좋았어서 더욱 마음에 드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