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김승일)

2022.12.13 | 조회 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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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22. 11. 19 <사랑의 존재 의미>

 "내 사랑은 지키는 거야." 라고 지금은 멀어진 친구가 말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감히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만한 존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기 때문에. 그 친구는 자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확고한 기준들이 있었는데, 때로는 그것들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타인을 위해서라는 이유는 사실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고, 좁은 나의 눈에는 가끔 튀어나오는 그 친구의 언행들이 지나치게 그의 기준으로 재단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멀어진 친구'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사랑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타인을 지키는 사랑만이 다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므로.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를 지키는 법>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족속이다. 그런 존재에게 누군가를 향한 사랑은 자칫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여긴다. 사랑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의미와 내일도 존재해야 할 이유를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을 ―사실은 믿고 싶지만 필사적으로― 믿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나를 구원한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계속해서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야 한다. 그 마음은 살기 위해 나를 돌보는 실천으로 이어지고, 그런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결국 삶이란 누군가에게 기대고 빚을 지는 일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한한 시간을 가진 인간으로서 나는 신이 아니라 차라리 사랑의 전지전능함을 믿는 편이다. 당연하게도 이 사랑은 연애 감정에 국한되지 않지만, 개인이 가장 극적으로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연애 감정으로서의 사랑 안에서라는 것에는 완전히 동의한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는 법>이라는 주제를 듣고 나는 가장 먼저 지금 곁에 있는 연인을 떠올렸다. 그에게서 받는 눈길과 애정이 나를 안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체감하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너는 내일 내가 죽지 않을 수 있게 해 줄 거구나. 사는 것처럼 살아 있게 해 줄 거구나. 그리고 내가 받은 마음을 너에게도 전하기 위해 나는 살겠구나. 그것도 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살기 위해 노력하겠구나. 어느새 너라는 존재가 공기처럼 부드럽게 나를 감싸고 보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크나큰 행운이자 축복은 우리의 마음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은 상호작용일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니까.

 나는 너를 사랑함으로써 나를 지키고 있다. 이 방패가 부디 오랫동안 녹슬지 않기를 바란다.

 


 

22. 11. 21 <사랑의 발명> 中

 발명은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을 발명하고, 보듬고,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과 그 시간을 보내는 의지가 사랑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오로지 그를 위한 사랑을 발명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와 함께 그 마음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읽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가끔 혹은 잦은 다툼이 생기더라도 부디 우리가 서로를 쉬이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마음이 끈질겼으면 좋겠다.

 


 

22. 11. 24 <삶과 생활 사이>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이 한 문장에 사로잡혀 인생을 삶과 생활로 나누기 시작한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생활이란 사회적인 존재로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고, 삶은 취향과 취미, 넓게 말하면 사랑의 영역이었다.

 나는 생활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약한 소리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성정을 타고난 것 같다. '내키지 않는 일'을 참고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면서도 주눅들기 일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랑하지 않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삶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사랑에 매달렸다는 뜻이다.

 취미는 사랑, 특기는 순종. 나를 소개할 때 자주 썼던 말이다. 생활의 바깥에서 나는 누구와도 다투고 싶지 않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없었다. 타인을 전부 이해하고 포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존중은 할 수 있었다. 그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타인에게 순종함으로써 나와 내 사랑의 가치를 찾는 사람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낮게 엎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위에 앉아서 쉬어 가기를 바랐다. 지난밤에는 연인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돌아오는 말은 "정아, 그럼 글을 써"였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것 같다. 몇 달 째 글과 멀어진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만 있는 나의 등을 연인의 단단한 두 팔이 받쳐 주는 기분이었다.

 어느 새벽에 그는 "너를 닮은 아이는 너무 착하고 귀여울 것 같아" 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에도 울어 버렸는데, 그 새벽으로부터 며칠 전 "나는 나를 닮은 존재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어" 그렇게 고백했었기 때문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연인의 그 한마디는 나를 옭아매는 족쇄를 풀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제 나를 닮은 아이를 상상하는 것이 조금 덜 두렵다.

 그가 탄 기차를 배웅하고 돌아와 나는 쓴다. 기어코 다시 쓰게 할 사람을 만나고야 말았구나. 그러므로 나는 오래 이 사람을 생각하겠구나. 내가 왜 좋아? 연인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묻는다. 나의 답은 매번 달라지는데, 지금은 이렇게 답하고 싶다. 네가 나의 지금(삶)을 채워 줘서 나는 닥쳐올 생활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게 바로 사랑의 의의이자 너의 힘 아닐까?

 


 

22. 12. 1 <make you feel my love> 中

 사랑은 무엇보다 비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생각해. 함께 보낸 시간보다 훨씬 깊어진 이 마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너를 사랑하는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나보다 평화로워. 이런 나를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지금과 달랐을 거야. 

 

사랑이,

내가,

나의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줘.

 

부지런히 너를 따를게.

나만의 길로 너를 향할게.

 


 

22. 12. 12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지난 금요일에 주연은 썼다. [ 내가 지금 무엇을 쓸지 오래 고민하는 이유는 할 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 아니다, 그냥 얘기하지 말자. ] 나는 반대로 오래 고민하다가 정말 그것을 쓰기로 결심했다.

 짧은 연애가 막을 내렸다. 위에 늘어 놓은 글들은 연애 중일 때 블로그에 썼던 것들인데, 이 글이 이 사랑에 대한 (찐) 마지막 헌사가 되었으면 해서 시간의 순서대로 모아 보았다. 말하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기화되지 않고 얹혀 있는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을, 사랑을 왜 믿느냐는 질문을 주변에서 많이 받고 있다. 사실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나에게 존재했던 적이 없고, 내게 있어서 누군가와 그의 마음을 믿는 건 생물이 쉬지 않고 호흡 활동을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나의 마음에 굳이 언어를 붙이자면,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결국의 결국에는 선한 의도가 남는다는 것을 믿고 싶어서"인 것 같다.

 믿음과 사랑이 갑자기 갈 곳을 잃어 내 안에서 넘쳐 흐르고, 시린 바람에 얼어 버린 그것들이 나 혹은 상대방을 아프게 만드는 상황을 나는 아직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며칠은 잠만 잤고, 깨어나서는 무얼 먹어도 게워내기만 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지. 하나도 밉지가 않다. 믿었던 것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믿어서 슬퍼진 것과 슬픈데도 후회하지 않는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성숙한 방어기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날의 검이 붙은 방패.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방어기제의 정의이고, 그래서 나는 나에게 상처입었다. 상대방을 상처입히기도 했다. 인간은 왜 사랑을 할 때 최악이 되는 법일까.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너는 나에게 포기와 체념이 아니라 용기와 미래를 줄 거야." 어느 날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다. 헤어짐으로부터 며칠 간, 그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눈이 멀어 그 마음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말을 했던 날 나는 트위터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 얘들아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용기가 될까 ] 아마 나는 그날 몇 달 만에 시가 쓰고 싶어졌을 것이다. 책을 만들고 싶단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에 그는 응원과 지지를 해 주었다. 그러니까, 용기와 미래를 준 것이다. 나는 어떻게 그것을 잠시라도 잊을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빚진 마음을.

 [ 사랑을 안 믿는다는 네가 나로 하여금 더욱 강하게 사랑을 믿게 만들어. 연애에 실패하고 사랑 같은 거 다 환상이라고 울면서 깽판치던 순간들 기억도 못 하고 나는 또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돼.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용기를 줄까.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 언젠가 너 스스로가 너무 작게만 느껴질 때, 네가 나에게 더 큰 세상을 선물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줘. 그래서 내가 너를 자랑으로 여겼다는 걸 잊지 말아 줘. ] 또 어느 새벽의 나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너는 새벽 감성이냐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날것에 가까운 마음이고 표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너에게 잊지 말라고 했던 것을 나는 왜 잊고 있었나. 네 덕에 볼 수 있었던 세상을,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을. 나는 왜 한순간의 실연에 지배되어 그 마음들을 다 보듬지 못했나. 나는 언제까지 나의 사려깊지 못함에 밤을 지새우는 인간일까.

 하지만 진심으로 네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너는 내가 사랑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의 자랑이라는 것을.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라는 것을. 때로는 변하지 않는 마음도 있는 법이라고, 네가 어느 날 문득 생각했으면 좋겠다.

 네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모양을 나는 가장 오래 기억할 것 같아. 향으로 기억하는 첫 사람이 네가 될 것 같아.

 안녕.

 잘 가.

 멀리 안 나갈게.

 하지만 늘 여기 있을게.

 부디 잘 자.

 


 

김승일, 나의 자랑 이랑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밖으로 나가 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방 안에서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 보면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 줄 수도 없는데

네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
백지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고

단아한 가방들은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 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서러운 뒷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 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 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 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 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미지의 "사랑이란?">

12/5: 지금 내가 가진 사랑을 집대성한 사전이 있다면 너일 거야.

12/6: 사랑이란 가로와 세로가 엇갈려 만나는 것.

12/7: 누군가의 알지 못하는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까지 모두 안고 싶어지는 것.

12/8: 사랑은 네가 믿지 않는 것. 그런 네가 믿을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지.

12/9: 세상의 모든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에 위험한 단어.

12/10: 크리스마스 트리.

12/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무이한 나의 동력.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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