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6월, 2025 LoL Esports 구조 개편에 대해 2스플릿에서 3스플릿으로의 확장, 신규 국제 대회 추가 같은 주요 소식을 발표했는데요. 대회 구조 변경과 함께 큰 화제가 된 것이 피어리스 드래프트의 1티어 대회 확대 적용 소식이었습니다.
피어리스 드래프트란, 쉽게 말해서 한 매치에서 한 번 사용한 챔피언을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3전 2선승 매치에서, 1세트에서 A팀이 아지르를 픽했다면 A팀은 이후 2, 3세트에서 아지르를 픽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룰은 '하드'와 '소프트'로 나뉘는데요. 소프트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챔피언 선택 제한이 해당 팀에게만 적용되는 반면, 하드는 상대 팀이 사용한 챔피언도 그 다음 세트에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2024 LCK CL에서는 '하드 피어리스 드래프트'가 적용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중국의 LPL에서는 소프트로 도입된 바 있습니다. LCK CL에서는 '탑 트린다미어'처럼 평소 프로 경기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픽들이 등장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리그를 통해 테스트 해본 결과가 만족스러웠던 것인지 2025년부터는 LoL Esports 전체에 확대 적용할 계획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소프트일지, 하드일지 같은 디테일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며, 일단은 첫 번째 스플릿과 신규 국제 대회라는 조건이 걸려있습니다. 각 지역별 피어리스 드래프트 효과를 체크하며 디테일을 조정해 나가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어리스 드래프트, 왜 고안됐을까?
피어리스 드래프트는 LoL Esports가 오랫동안 지적 받았던 '챔피언 밴픽의 고착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168개의 챔피언이 존재하지만, 프로 경기에 등장하는 챔피언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으니까요.
각 챔피언들이 고유의 특성과 스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강하다'고 알려진 챔피언들을 고르는 것이 승산을 높여주고, '강하다'라고 알려진 메타에 맞는 챔피언들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일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도 강한 메타와 챔피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프로들은 말할 필요 없겠죠.
이런 경향은 프로 경기들이 밴&픽이 각 매치별로 비슷해지는 현상을 만들었고, 시청자들은 매경기 비슷한 양상을 볼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는 곧 리그 시청률의 하락과 부정적인 피드백의 증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즉, 피어리스 드래프트는 프로 경기의 양상을 다양하게 하여 시청자들에게 매경기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도입된 이유가 가장 큽니다.
피어리스 드래프트 도입의 또 다른 이유는 챔피언 밸런스 조정의 기준을 프로씬이 아니라 일반 유저로 바꾸는 것입니다. 최근 라이엇 게임즈의 디자인 리드 'August Browing'의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는데요.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 우리는 프로씬을 고려하지 않고 챔피언을 밸런싱할 수 있길 원한다. 그래서 추진하는 방식은, 프로들이 강제로 다른 픽들을 고를 수 있게끔 규칙을 바꾸는 것(= 피어리스 드래프트)이다.
- 대회 때문에 계속 너프되는 일이 계속 발생하면서, 일부 챔피언들이나 일반 유저들이 자꾸 피해를 보고 있다.
- 프로 리그에 챔피언 밸런싱이 묶여버리는 불쾌한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프로들이 매번 다른 챔피언을 플레이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을 고안한 것.
프로씬과 일반 유저들의 메타가 동일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방향으로 시너지가 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프로씬을 기준으로 조정되는 밸런스가 일반 유저들의 게임에 악영향을 미치고는 하는데요. 장르는 다르지만 <스타크래프트 2> 역시 프로 경기를 기준으로 삼은 밸런스 패치에 대해서 유저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피어리스 드래프트 전면 도입, 어떤 영향?
피어리스 드래프트의 전면 적용에 대한 논의의 본질은 '다양성'입니다. '경기 양상이 고착화 되는 상황'은 e스포츠뿐만 아니라 게임에게도 위험한 신호니까요. 특히, 프로들은 본능적으로 승리를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기 때문에 '경기 양상의 고착화'는 더 쉽게 발생합니다.
완벽한 게임 밸런스로 모든 챔피언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 동안에는 프로들의 경기를 기준으로 최대한 많은 챔피언의 등장과 함께 다양한 경기 양상을 유도하고자 했으나 큰 성과가 없었고, 오히려 이 과정에서 솔로랭크 유저들의 혼란을 야기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피어리스 드래프트의 LCK 확대 적용은 라이엇 게임즈가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 몇몇 LCK 프로게임단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하드냐 소프트냐, 하드 중에서도 다전제 중 5세트는 어떻게 할거냐 등 정해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막상 전면적으로 확대 실행해보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하죠. 실제로 관계자들의 의견 중에는 상위권 팀들과 중하위권 팀들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과 솔랭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프로 경기들의 고착화와 다양성 부족의 측면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의견을 내고 있는데요. 지금보다는 더 다양한 챔피언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단은 '긍정적이다',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도가 좋다면 일단은 해봐야 안다
인게임 밸런스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게임이 그렇게 만들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다 나은 결과치를 얻기 위해 게임 외의 조건을 조정해보는 것이죠. 이런 조정과 시도는 그 의도가 좋다면 도입해보고 추이를 지켜보며 수정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회의 정체성을 흔들어 존망(存亡)에 영향을 준다거나, 모든 구성원이 결사 반대하는 규칙만 아니라면 일단은 해봐야 안다는 것이죠.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에서 많았는데요.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가 밸런스 패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고민과 시도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맵 에디터'를 활용해 직접 맵을 제작해 종족간의 밸런스를 맞춰보려는 시도는 아주 유명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테란맵, 저그맵, 프로토스맵 등 오명을 쓴 경우도 있었지만 종족의 특장점을 맵의 지형과 스타팅 포인트간의 거리 등으로 조절하여 최대한 '엄대엄(50:50이라는 뜻의 스타 관련 밈)'을 맞추려고 했죠.
피어리스 드래프트처럼 대회 방식에 큰 변화를 주는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팀 대항전이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는 대회 흥행성 재고, 동족전 방지 및 특정 종족 집중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규칙들이 존재했습니다.
엔트리 예고제를 도입했다가 폐지하기도 했고, 테란-저그-프로토스가 한 번씩은 나와야 한다는 종족 의무 출전제나 경기수가 많아짐에 따라 특정 선수가 특정 맵을 전담하며 발생하는 연속된 동족전이나 양산형 경기를 극복하고자 동일 종족 동일 맵 연속 출전 금지 조항 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규칙들이 모두 원래 의도했던 것처럼 긍정적이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줬던 것은 아닙니다.
엔트리 예고제의 경우 당초 의도는 매치업을 미리 공개하여 팬들의 관심도를 끌어 올리고, 선수들의 연습 집중도를 높여 경기력을 향상시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뻔한 양산형 경기들이 속출하거나, 동족전이 가득한 매치업으로 인해 관심도가 낮아지는 부작용도 지적되었습니다. 10~11 시즌에는 불법 베팅과 승부 조작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어 폐지되었다가,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된 12~13 시즌에는 다시금 부활하기도 했었죠.
종족 의무 출전제 역시 막상 도입해보니 오히려 동족전의 빈도수를 더 높인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동일 종족 동일 맵 연속 출전 금지 조항의 경우 정확하진 않지만 다수 게임단들이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처럼 규칙이라는 것은 끊임 없이 변하기 마련인데요. LoL Esports 역시 한 때는 다전제 중 마지막 5세트는 블라인드 픽으로 진행했었습니다.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도 오프사이드 룰 같은 직접 규칙 외에도 VAR, 로컬 유쓰 선수 의무 출전 같은 간접 규칙의 변경이 꾸준히 논의, 도입되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LoL Esports가 확대 도입을 고민하고 있는 피어리스 드래프트가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됩니다. 비록, 드라마틱한 긍정적인 효과가 아니더라도 이런 변화와 시도를 통해 쌓인 데이터와 구성원, 커뮤니티 피드백 등은 그 다음 개선을 위한 중요한 경험이 될테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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