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꼬지기입니다.
가을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나뭇잎들은 여름의 옷을 벗고 알록달록 새로운 모습들을 드러내요. 그러다 거센 바람을 맞닥뜨리면 흙을 덮어주기도 하죠. '사랑'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제의 사랑은 초록이었고, 오늘의 사랑은 노랑이며, 내일의 사랑은 빨강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 어느새 사랑의 색마저 없어진다면 우리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11월 첫째 주, 『모꼬지기』 10호에는 서쪽의 흔들리는 연 '웨스턴 카잇', 음악의 명과 암을 그리는 '장조와 단조', 그리고 그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달달한 플레이리스트까지, 총 세 가지 이야기를 구독자님께 선물해 드립니다.
⭐ 뮤직스타뜰
서쪽으로 흘러가는 연, 웨스턴 카잇
by 현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이라는 규정은 너무나도 작은 범주다. 사실 설렘, 신뢰, 희생, 집착, 공허, 아픔 등 저마다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통칭하는 말에 부서져 있다. 테두리에서 만나 원심까지, 그리고 원심에서 테두리로 향하게 되는 사랑의 여정 속에 우리는 새로운 얼굴을 찾게 된다.
뮤직스타뜰 열 번째 아티스트, ‘웨스턴 카잇(Western Kite)’을 소개한다.
싱어송라이터 웨스턴 카잇은 서쪽으로 떠나간 연이라는 뜻의 활동명과 같이, 그는 홀연히 흘러가는 감상들로 음악을 채운다. 2017년 첫 번째 정규 앨범 [Subtitle]을 통해 사랑과 이별, 체념과 원망의 다양한 감정들을 빈티지한 사운드에 녹여내 웨스턴 카잇만의 장르를 구축했다. 2021년에는 두 번째 정규앨범 [ultraviolet!]를 발매해 다사다난했던 2020년 동안 느낀 일상의 소중함을 전했고, 올해에는 선선한 가을에 듣기 좋은 사랑 노래를 담아 EP [hi love]를 공개했다. 또한, 그는 영국 유학 시절 ‘카이트 파크’라는 새로운 활동명으로 싱글 [Bongo]를 발매하기도 했다.
사랑 빛깔의 보석함
웨스턴 카잇의 음악은 대부분 연애에 관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단편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만남과 이별, 이후의 체념과 원망의 순간까지—사랑에 관련된 다양한 감정의 조각들을 노래한다. 그의 음악은 부유하는 사랑의 기억들을 느리게 포착하며, 반복적인 멜로디와 흐르는 듯한 가사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착각게 하면서도 안정감을 준다. 그는 탁한 음악으로도 이만큼 부드럽고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들려주며, 다양한 감정의 순간들을 모아 견고한 이야기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멀리 선 두 손가락이 거리를 좁혀 흐릿해지더라도
긴 잠에 빠져서 파도 위를 걷다 보면
수평선 너머 그대가 좋아”
웨스턴 카잇의 <칭찬의 돌고래> 中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The Shape of Water>에서처럼 사랑은 물처럼 그 형태가 다양하다. 누구를 만나 어떤 시간을 쌓아가느냐에 따라 무수히 많은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웨스턴 카잇의 사랑은, 온도에 따라 끓기도 하며 얼기도 하고, 바람을 만나 파도를 그리기도 또 시간에 따라 휘발되기도 한다. 같이 있던 행복감 그리고 끝날 것이라 했지만 지속되기만 하는 그리움, 위태로운 관계에 줄을 타고 있는 듯한 불안함까지. 그때의 감정이 담긴 듯 신나기도 하면서 블루지하기도 한 그의 음악은 언어로 표현치 못했던 감정들을 토로하고 있다.
친구가 된 나의 적, ultraviolet!
삶을 유한하게 만드는 것들을 단지 적이라고 생각했던 웨스턴 카잇은 코로나를 겪으며 생각을 다르게 옮기게 되었다. 삶은 유한하지 않기 때문에 매 순간이 소중하다고 깊게 느끼게 되었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적은 이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두 번째 정규 앨범 [ultraviolet!]에 중요한 가치를 가진 감정들을 담았고, 이윽고 한 권의 시집이 탄생했다.
앨범 속 그의 음악은 예쁘게 다듬어진 빈티지한 보석 같다. 섬세하게 세공되어 견고하면서도 탁한 색깔을 가진 그런 결정들, 그런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앨범 [ultraviolet!]에는 사랑을 갈구하는 ‘COUCH’부터, 피아노를 따라 펼쳐지는 ‘인라인’, 다른 속도를 가진 우리의 ‘Why Are My Photos Bad?’, 빈 총이었던 마음의 고백 ‘Bongo’, 이미 도망칠 수 없는 ‘올리브’, 나의 모든 것 ‘존초이’, 너무 빨리 가버린 ‘LARRY’, 잠에 빠져들 ‘슬럼버’, 너에 대한 갈증 ‘런던’까지, 총 9개의 트랙을 담았다.
“Gone too fast Larry
It’s been so long
Nobody cares about my sweet orange
Questionable”
웨스턴 카잇의 <LARRY> 中
🎵 음악주저리
음악의 명(明)과 암(暗), 장조와 단조
by 영
16세기 무렵, 서양에서는 음악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념이 탄생했다. 바로, ‘장조’와 ‘단조’이다. 당시, 사람들은 단순히 밝고 즐거운 느낌을 가진 곡이니까 장조(major),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가진 곡이니까 단조(minor)로 칭하기 시작했고, 이는 후에 음악의 정체성으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왜 장조는 밝은 분위기를 가진 곡, 단조는 어두운 분위기를 가진 곡이 되었을까?
장조와 단조
단순하게 말하자면, 장조는 장음계를 바탕으로 만든 곡을 칭하며 으뜸화음인 ‘도, 미, 솔’ 중 어느 한음으로 시작해서 보통 ‘도’로 끝마치게 된다. 또한 장조는 음의 배열 미와 파(3-4), 시와 도(7-8) 사이가 반음이며, 나머지는 온음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단조는 단음계를 바탕으로 만든 곡을 칭하며, ‘라, 도, 미’ 중 한 음으로 시작해 보통 ‘라’로 끝나게 된다. 단조는 음의 배열 레와 미(2-3), 솔과 라(5-6) 사이가 반음이며, 나머지는 온음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곡이 단조인지 장조인지 정확하는 구분의 기준은 반음의 위치이지만, 이를 쉽게 구분하고 싶다면, 음악의 끝 음을 파악하면 된다.
이 외에도 장조와 단조를 단순하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곡의 분위기이다.
영화 <대부>는 이탈리아 마피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대부>에 삽입된 테마곡 ‘Love Theme from The Godfather’은 듣기만 해도 영화 그 자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이 테마곡은 어떤 조성으로 이루어졌을까? 이는 바로 단조이다. 분명히 예외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단조 음악은 우울하고 비극적인 느낌을 주며.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이 음악을 장조로 바꾸면, 영화 <대부>가 행복한 가족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밝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이는 장조 음악의 특징이다. 이 또한 예외는 존재하지만, 대부분 장조 음악은 밝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며,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조성과 뇌과학
우리 모두는 각자 음악을 들을 때 다른 감상을 가진다. 하지만 곡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즐겁다, 침침하다 등 밝음과 어두움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슷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장조는 밝고 즐거운 분위기, 단조는 침침하고 어두운 분위기라고 구분하는 음악의 속성은 단순히 우리의 감정 혹은 본능에만 의존하는 것일까?
도쿄전기대학 정보환경학부 네모토 이쿠 교수팀이 발표한 ‘음악 속 장조와 단조의 밝고 어두운 느낌에 대한 신경 생리학적 기초 연구’에 따르면, 장조와 단조의 음악 원리는 단지 기분의 원리가 아니다. 장조 단조 음계와 장조 단조 3화음을 들었을 때 뇌의 반응을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MRI)과 뇌 자기 그림 (MEG)를 사용하여 조사한 결과, 밝고 즐거운 장 3화음을 들었을 때는 기쁨, 행복 등 긍정적 감정을 담당하는 측좌핵이, 우울하고 어두운 단 3화음을 들었을 때는 통증, 패배감 등 부정적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부위가 활성화됐다.
또한, 미국 뉴욕 대학 신경과학 연구소 조쉬 맥더모트의 ‘청각적 신호와 미학 – 음악, 음성, 일상의 소리’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위 이미지에서 보듯, 사람들은 악기에 상관없이 장 3화음(major triad)에 대해 가장 기쁜 감정을 느끼며, 단 3화음 (minor triad)은 비교적 덜 기쁜 감정을 느낀다. 가장 우울하게 느끼는 것은 증 3화음 (augmented triad)인데, 이는 구름이 낀 듯한 우중충한 느낌을 주는 코드이다.
결국, 이 두 연구 결과를 통해, 장조와 단조는 우리의 감정이나 본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뇌의 활동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전에 단순히 우리가 느끼는 분위기에 따라 탄생했던 장조와 단조는, 사실 뇌의 반응에 따라 만들어진 과학의 산물인 것이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 누구나 한 번쯤은 막연하게 장조는 밝은 음악, 단조는 어두운 음악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직접 노래를 듣고, 느끼는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식 속에는 이렇게 복잡하고도 세밀한 뇌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었다. 음악과 과학이 만나 탄생한 장조와 단조는 지금도 하얀 도화지 위를 명과 암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또한, 이렇게 장조와 단조는, 계속되는 명과 암으로 우리 삶에 다채로운 재미를 불어 넣어줄 것이다.
💿 둠칫두둠칫
너라는 틀에 나를 전부 쏟아 부어
by 현
“붉은 하늘 밑에 반짝이는 파도 앞에서
바다 같은 너의 눈을 보며 춤을 출거야
이 세상이 새까맣게 물든 밤이 온다면
별빛 같은 너의 눈을 보며 고백할 거야
Shall we dance”
오붓의 <Shall We Dance?> 中
당신의 세계를 만난 나는, 그대에게 내 마음을 마땅히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빠른 속도로 돌진했고, 그 매서운 바람에 저는 비로소 깨달았죠. 당신이 일으킨 불길은 내가 그대를 사랑할 기회를 줬다는 것을. 더욱 새롭게 채워질 내 시간 속의 사진들과 사랑의 무늬, 그 무수한 흔적들을 기록할 거예요. 그대는 내 손에 잡힌 작은 별 가루이며 무지개의 한 조각이라고.
그저 오로지 난 당신을 사랑할 뿐이에요.
모꼬지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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