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마흔 일기 / 관계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딜 브레이커라는 말이 나온다. 내 명확한 기준이나 한계 같은 것을 벗어나면 그 사람을 ‘아웃’시키는 포인트를 말한다. 사소하게는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은 것이나 맞춤법을 틀리는 것,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어느 지점을 말한다.
책장을 넘기며 나의 딜 브레이커는 뭘까 생각해 봤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허물은 대책 없이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므로 (예를 들어 이에 고춧가루가 낀 걸 보면 어머, 이가 촘촘히 가지런하게 났구나 라고 생각하거나, 구멍난 양말을 신고 나오면 어머, 알뜰하기도 하지 라는 식이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상식’이었다.
살다 보면 저 사람은 어쩜 그럴까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당연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때 의아해하며 선을 긋는다.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남편에게 고자질할 때도 ‘상식적으로’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아니 상식적으로 어떻게 그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상식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자주 말했다. 그러면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그건 당신 기준의 상식이고’라고 명료하게 답했다.(역시 쌉T)
사람마다 다른 상식의 기준을 나는 자꾸 내 상식으로 판단하는 편이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당황하고 나와 다른 사람으로 분류했다. 이번 책 작업을 하면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당연할 거라 생각해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이 다른 결과물로 나왔다. 그래서 수정을 요청했을 때 디자이너 님께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 의도를 알 수 없으니 미리 알려주셔야 합니다
간결하고 단호하게 보내주신 메시지에 많은 것이 한 번에 정리되었다. 하하 호호 웃으며 일하던 우리의 카톡 방에 잠시 찬 바람이 불었지만 길게 고민하지 않고 속시원히 얘기해 주어서 좋았다. 내가 보낸 지시사항은 내 기준에서 당연했고 의도를 모르는 작업자에게는 모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두 번 일하지 않으려면 내가 의도하는 바를 확실하게 해야 하다는 것을 배웠다. 책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도 통하는 말이었다.
요즘은 속에 든 다른 것 없이 희든 붉든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람들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편하다. 잠시 기분은 언짢으나 쌓이는 건 없다. 깔끔하다. 책을 읽을 때도 습관적으로 모르겠다던가 그럴지 모른다고 마무리하는 글은 피한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겹겹이 포개서 방어막을 만드는 치밀함 같아 싫다. 나는 적어도 책을 쓸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비난받을 각오로 쓴 날카로운 글이 읽고 싶다.
나는 꽤나 단호하게 경계를 명확히 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딜 브레이커도 세어보면 수십개였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한 번 저 사람은 아니다 내 마음에서 내보내기로 마음먹으면 다시 들이지 않는 편이었다. 내치기 전까지는 상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그 사람을 이해하느라 바빴다. 심지어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나는 용서해 보려고 애쓰기까지 했다.
나 까짓 게 뭐라고. 몹쓸 사고방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예전보다는 내 마음의 울타리가 아주 넓어졌고 얕아졌을 뿐이다.
내 사람의 경계가 지금보다 더 뚜렷했을 때,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보면 무척 혼란스러워했다. 우리가 무슨 천년의 우정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는 것을 나는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나에 대해 잘 안다면 싫어할 이유는 없을 거라 섣불리 단정 지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잘 하려고 애썼으니까. 날 미워하다니 왜지? 왜? 해명이 필요하다고 떼를 썼다.
누군가 나와 한 발 멀어지면 우리의 관계를 마감하고 내 울타리에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이미 나간 것인지 확실히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두면 될 것을 나는 명확히 해주길 바라며 계속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직접 물어본 적도 있다. 나에게 서운한 점이 있는지. 왜 달라진 것인지. 상대방은 오해하며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고 웃으며 대화를 마쳤지만 둘 사이에 예전 같은 친근함은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진심은 묻는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명한다고 느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살면서 무척 좋아하게 된 사람이 하나 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는 대화중에 항상 피해자가 되길 즐겼는데 자연스레 내 머릿속에서 그의 캐릭터는 ‘약한 사람’이었다. 그럴수록 아껴주고 잘 해주고 싶었다. 약한 사람은 줄곧 착한 사람과 동의어였으니까. 그 반대에는 당연히 강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하고 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원망했다. 나와 친한 사람이 그랬다고 하니까. 힘들었다고 하니까. 강한 사람은 줄곧 나쁜 사람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좋아했던 그와 멀어지고 난 후에 '약한 사람 탈 쓰기'가 그가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이 이것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선 긋기를 통해 몇은 잃더라도 몇몇은 더 견고히 내 편으로 만드는 스킬이었다.
지금은 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강한 사람, 나쁜 사람, 이기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내가 그와 나 사이 공통분모였던 사람들을 밀어낸 것처럼, 그와 나 사이 다른 사람들도 나를 밀어낸 것을 보면. 그래도 이제는 왜 나를 당신의 울타리 안에 넣었다 밀어냈는지 따져 묻지 않는다. 심지어 그 사람을 내 울타리에서 완전히 아웃시키지도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해명한다고 해도 우리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더라고 나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 주고 안아주며 알려주었다.
나는 평생 용서하고 싶지 않은 아빠와도 겉으로는 웃으며 잘 지내고 있지 않나. 하물며 친구나 지인쯤이야 언제든 넘어 다닐 수 있는 아주 낮은 울타리만 허울좋게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섣불리 끊어내는 관계 같은 것은 없다.
내 기준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이가 나를 판단할까 봐 두렵다. 그렇게 자만과 불안은 동전의 양면이 된다.
아무튼, 정리 p.59
12월의 첫 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에요. 무사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24. 12. 9.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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