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마흔 일기 / 이름
살아달라는 기도
엄마의 이름은 정숙. 성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는 이 씨다. 엄마가 나를 낳고 이름을 지을 때 아빠의 성 ‘문’과 돌림자 ‘희’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남은 한 글자뿐이었던 선택지에 엄마는 엄마의 이름 '정'을 넣었다. 내가 낳은 딸의 이름 세 글자 중에 둘이나 선수를 빼앗긴 마당에 한 글자 정도는 엄마의 것을 물려주는 게 당연했으리라. 그렇게 내 이름은 희정이 되었다.
깨어있는 몇몇 부모는 자식의 이름에 각자의 성을 물려주던데 나는 이 정도의 티 안나는 파격도 좋았다. 어차피 그 성도 엄마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게 아닌가. 나는 성보다 이름이 더 중요했다.
성보다 이름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자라면서 겪은 문 씨들 덕분이었다. 같은 성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 누구 하나 마음 줄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사회에서 만났다면 엮이려 하지 않으려 노력했을 부류. 그런 사람들이 핏줄이니 가족이니 애틋한 게 더 싫었다. 나는 성에서 글자 그대로의 ‘문’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쨌든 내 이름은 문희정으로 정해졌다. 흔하지 않은 성 덕분인지 평범한 이름에는 별 불만 없이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세상의 모든 문 씨들이 겪었을 문어, 문어발, 문지기 같은 별명으로 불렸을 뿐. (김 씨인 내 딸의 별명이 김밥이고 박 씨인 딸의 친구아이 별명이 박쥐라니 그 나이대 아이들의 별명 짓기의 역사는 여전한가 보다.)
문 씨들에게는 뭔가 성에 집착하게 되는 면이 있는지 아이디나 닉네임, 브랜드 명에서 문을 발견하면 필시 그 사람의 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나 역시 moon이 들어간 이메일과 아이디를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말이다. 문이 영어로 달과 독음이 같다는 단순한 이유로 달과 관련된 닉네임도 문 씨일 경우가 많다. 또 文 한자가 들어간 브랜드 명의 대표도 문가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내 출판사의 이름이 문화다방인 것처럼.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성에 대한 엄청난 애착이 있는 것 같지만 목화씨를 가지고 왔다는 문익점이나 하나뿐인 종파라 문 씨는 모두 먼 친척이라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문이라는 글자를 좋아한다. 어릴 적 그렇게 놀림을 당했는데도 내 성을 싫어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름처럼 개명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네모 칸 공책을 가득 채우는 듬직해 보이는 글자의 모양새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ㄴ이 ㅠ 아래 있었다면 어디에 두어야 예쁘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모음과 자음이 딱 들어맞는 제 자리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희정이라는 평범한 이름에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heejeong을 영어로 쓰면 조금 지저분해 보이긴 했지만. 그 시절 영문 표기까지 생각해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는 흔치 않았고, 내 친구들의 표기도 hyunjin 이거나 Kuynghee 거나 Seonhye 거나 다 비슷비슷했다.
커서는 종종 정희로 잘못 불렸다. 기껏 인터뷰를 했는데 지면에는 문정희 작가님으로 실린다거나 정희 님께 라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문정희 배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희정으로 제대로 불려도 내가 아닐 때도 있었다. 예전에 동명이인 드라마 작가 님께 가야 할 제안이 나에게 온 적이 있다. 어차피 글 쓰는 사람이면 되었는지 다른 사람이라 밝혔는데도 그 제안이 여전히 유효했다는 점이 조금 우습지만.
어릴 적 나는 집에서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그게 사람 이름 보다 강아지 별명 같은 것이라 해도 그랬다. 친구의 이름은 진희였는데 진희 어머니는 딸을 곱실이라 불렀다. ‘곱실아- 곱실아-’ 부르던 그 친근함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나는 왜 집에서 부르는 애칭이 없는 걸까, 그게 꼭 애정의 척도 같아 서운하기까지 했다.
결혼을 했더니 남편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나에게는 정기였던 사람이 집에서는 준백이었다. 준백이라니 이 역시 뭔가 보통의 사람 이름 같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정기였다가 준백이가 되기도 하는 남편이 부러웠다.
아이가 생기고 나는 곧바로 아이의 이름을 고민했다. 호적에 올라가는 세상 사람 모두가 부르는 이름 말고 나만이 불러 줄 이름. 태명에는 물려줘야 하는 성씨도, 돌려쓰는 이름도 없었다. 그래서 순전히 내 마음대로 지었다. 어차피 뱃속 아기에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짓는데 진심인 것은 나뿐이어서 경쟁자도 없었다.
밖에서는 OO이어도 안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내 오랜 바람처럼.
첫아이는 우주로 지었다. 내가 알던 세계를 뒤흔든 첫아이의 탄생에 마땅한 이름이었다. 둘째는 하나로 지었다. 두 번째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않게 하고 싶었다. 너는 누구의 동생이나 엄마의 둘째가 아니라 유일무이 하나뿐인 존재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우주와 하나라는 태명을 짓고 난 후에는 정작 이름에 대해서는 심드렁했다. 어차피 문 씨나 김 씨 성 물려주기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가 절대 안 된다 우기지 않는다면 내 이름이 그랬듯 돌림자가 정해겨 있어서 김진'무엇'이 될 운명이었다.
반대로 남편은 중학교 때부터 미래 자신의 아이들 이름을 일찌감치 지어두었다고 했다. 남자아이는 ‘진우’ 여자아이는 ‘진아’. 자신의 아이 이름은 ‘김진’까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아는 남자의 거만한 이름 짓기라 못마땅한 면은 있었지만 이름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물 흐르듯 온화하게 들렸고 부르기 쉬웠다.
나는 평생을(어쩌면 여전히)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가 되길 바라며 살았지만 자식을 낳아보니 특출난 누군가가 되기 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길 바라게 되었다. 그게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주고 싶은 이름이었다. 무엇보다 Jinu Jina로 영문이 간단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남편의 인감도장을 만들어야 해서 도장집에 갔다가 처음으로 남편 이름의 뜻을 알았다. ‘바를 정’에 ‘터 기’. 도장이 만들어지는 시간 동안 ‘바른 터’라니 참 이 사람답다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답답하게 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걸까 싶기도 했다. 나는 ‘바랄 희’에 ‘곧을 정’이기 때문이었다.
양가 부모들이 이렇게나 곧고 바르기를 원했으니. <노래하는 복희>의김복희 작가님의 글처럼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떻게 살라고, 살아달라고, 기도를 보태는’ 것이라면,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다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희정이라는 이름의 기도에 응답하려면 앞으로 더 착하게 살아야한다.
‘이름’에 대해, 나는 각별한 감정이 있다. 내 이름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갖는 ‘이름’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름과 이름을 부르는 행위에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떻게 살라고, 살아달라고, 기도를 보태는 기분이다. 그 기도를 오만 사람들이 서로서로 돌아가며 저도 모르게 한다는 게, 언제 생각해도 이상하고 묘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고 또 이상한 것이다. 내 안에 내가 이렇게 많은데 이름만 하나로 가지면 그것이 다 담긴다니, 그럴 수가 있다니, 이름이란 도대체 얼마나 튼튼한 주머니인가. 사람들이 이름이라는 그 주머니가 튼튼해지도록 서로 영차영차 돕는 느낌이라, 좋기도 하고. 가끔은 두렵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온 시간, 그것만으로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더없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노래하는 복희> 중에서
대구 여행을 다녀왔는데 차방책방이라는 책방에서 <노래하는 복희>를 샀어요. 그리고 이 페이지를 읽다가 이름에 대한 글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구독자님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또 편지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2024. 10. 10.
희정 드림
💌문화다방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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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이 <불안을 섬기는 세게에서는 확인까지가 사랑이라>
시인이 노래하듯 한 권 가득 아름다운 문장을 채워주신 박지이 작가님의 책이에요.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귀여운 굿즈들도 많이 만들었으니 많이 놀러오셔서 문화다방의 올 한 해 성과를 응원해 주세요.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publisherstab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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