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누라’라는 말, 정말 비하 표현일까요?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 가운데 의외로 논란이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마누라’입니다.
"마누라랑 어디 다녀왔어"
"마누라가 잔소리가 심해"
어떤 분에게는 친근한 표현으로 느껴지지만, 어떤 분에게는 무례하거나 비하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애초부터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마누라’는 처음부터 거친 말이 아니었습니다.
‘마누라’의 옛말, ‘마노라’
‘마누라’의 옛 형태는 ‘마노라’입니다. 이 표현은 15세기 문헌인 삼강행실도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17세기까지의 기록을 보면, ‘마노라’는 특정 성별에 한정된 말이 아니었으며 남녀 모두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직함 뒤에 붙여 쓰는 존칭 표현이었습니다.
즉, 누군가를 낮추거나 함부로 부르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높여 부르는 말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만을 가리키는 말로 변하다
18세기 이후부터 이 단어의 쓰임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마노라’는 점차 남성을 가리키는 의미에서는 사라지고, 여성만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19세기 문헌에 이르면 ‘마노라’는 이전 세기의 용법을 유지하는 한편, ‘마누라’라는 형태는 이미 ‘부인’의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19세기 국어의 모음 변화를 거치며 ‘마노라’가 ‘마누라’로 굳어진 결과로 이해됩니다.
‘마누라’의 어원에 대한 여러 해석
‘마노라’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한때는 ‘마루 아래에서 예를 갖춘다’는 뜻의 한자어 ‘말루하(抹樓下)’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국립국어원은 현재의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이 단어가 한자어보다는 고유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해석은 ‘마누라’를 ‘마누(主)’와 ‘-라’의 결합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 마누(主): 주인, 중심이 되는 사람
- -라: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
이렇게 해석할 경우, ‘마누라’는 본래 집안의 주인격인 사람, 혹은 중심 인물을 가리키는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부 주석에서는 ‘마노라’를 고대 지배자 칭호인 ‘마립간’과 같은 계통의 말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확정된 어원이라기보다는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왕실에서도 쓰이던 극존칭
조선시대에 ‘마노라’는 실제로 극존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문헌에는 ‘대비 마노라’, ‘대전(大殿) 마노라’처럼 왕실 인물을 높여 부르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점만 보더라도 이 단어가 지녔던 위상이 결코 낮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지금은 다르게 느껴질까요?
근대 이후 ‘마누라’라는 말은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일상적인 호칭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단어의 사회적 위상은 점차 낮아졌고, 오늘날에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는 정겹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무례하거나 비하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은 시대를 따라 움직입니다
‘마누라’라는 말은 처음부터 거친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존칭이었고, 왕실에서도 쓰이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 말은 친근함과 무례함의 경계에 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어 그 자체라기보다,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와 관계의 맥락일지도 모릅니다. ‘마누라’라는 단어는 언어가 사회와 시대의 인식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바꾸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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