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지난 10년간, 상담가 활동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정말 자주 받았습니다.
“재열 님, 어떤 정신과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요?”
좋은 정신과의사를 만나는 법. 구독자님도 궁금하지 않으세요? 정신의학과에 한 번도 안 가보신 분이라면 어떻게 병원을 골라야 하나 싶기도 하실 거고,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어서 가보라고 추천할 때도 어떤 기준으로 권해야 하나 싶으실 거예요. 또, 한두 번 갔다가 의사의 쌩한 반응에 마상을 입은 분이라면 더더욱 궁금하실 거예요. 제가 뭐라고 그걸 답을 하겠습니까만은,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어요. 그 결과 요즘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일단, 너무 유명한 분은 제끼고 찾는 게 좋아요.”
1. 유명 의사, 쇼닥터는 명의가 아니다
사실 이외에도 정신과 고르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설명해 드리자면 상담을 길게 받고 싶다? 그러면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으시고 그쪽 공부를 하셨다고 이력이 기재된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게 좋다. 라던지 이런 소소한 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좋다는 건 다소 주관적이잖아요? 사람마다 성격이나 궁합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어떤 선생님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너무 매체를 잘 활용하는 분은 경계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에요. 왜냐고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의료윤리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게 문제에요.
2. 그 이유 첫번째 : 연예인'끼'와 진료 실력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구독자님은 요즘 정신과 입원 환자 사망사고 뉴스 들으셨나요?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손발이 묶인 채로 코피를 흘리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도 충격이었고, 그 병원의 원장이 TV에도 자주 나오고, 인기 걸그룹 멤버의 약혼자이며, (역시 정신과의사인) 친형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딱 두 명뿐인 연예기획사 소속인 스타 정신과 의사였다는 것도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로는 그래도 사고니까 어느정도까지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밝혀질수록 진짜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어요.
환자가 사망한 건 이미 몇 달 전이고, 당시에는 사과문 등이 발표되지 않은 채 쉬쉬하고 넘어갔다는 거예요. 심지어 해당 시기엔 약혼 발표 기사가 대대적으로 났지요. 사망사고는 다른 발표로 덮고 지나가려다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와 버린 거죠. 지금에야 사과했고요.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정신의학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또 나빠질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무한도전에 나온 정신의학전문의가 그루밍 성범죄를 일으킨 일도 아주 유명했잖아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저는 아니다 싶은 것에는 절대 못 참는 파이터 본능이 있어서, 이 때도 당시 제가 연재 중이었던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던 적이 있어요.
요즘 티비, 유튜브에 정말 많은 정신과의사가 나옵니다. 채널이 정말 다양해졌어요. 다들 말씀도 너무 잘하시죠. 그런데, ‘말을 잘한다’는 게 정말 우리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걸까요? 진료를 잘하는 의사와 매체 감각이 있어서 유튜브의 제목을 잘 뽑는, 그래서 구독자 수 추이가 잘 올라가는 의사는 전혀 다릅니다.
3. 그 이유 두번째 : 대기시간이 백만년이다
물론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의사도 있을 수 있어요. 진료도 잘하고, 방송도 잘하는 의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경우의 문제는 뭘까요? 이것이 제가 말하는 유명한 의사를 피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인데요. 바로 ‘대기가 진짜 오래 걸린다’는 거예요. 우리가 정신과를 가야지 라고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내 마음건강이 많이 위급해져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최소 2달에서 6달을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이 효과적인 진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핵심은 “매체를 통해서 정신의학 정보를 습득하고 공부하는 건 좋지만, 꼭 그 의사가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예요. 의료라는 큰 틀에서 그들은 의료진의 역할보다는 캠페이너(홍보하는 사람)의 역할에 가깝습니다. 또한 구독자 수는 권위가 아니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면 결국 도돌이표죠.
“좋은 정신과 의사는 어떤 사람이냐고요.”
4. 좋은 의사를 만나는 창구는 따로 있다.
저의 사견임을 전제로 하고 조심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 너무 유명세로 홍보하지 않고
- 진료 비우는 날짜가 많지 않으며
- 우리 집에서 멀지 않고
- 진료 시간이 나와 맞는 (의사마다 3분~30분)
- 너무 오래 대기하지 않아도 되는 병원
이렇게 다섯가지 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진짜 중요 정보! 정신의학신문이라는 게 있어요. 유튜브 보다 좋은 정신과 의사를 찾기가 훨씬 좋은, 진짜 좋은 창구입니다.
의사들이 직접 기자가 되어 쓰는 신문사에요. 전문의 찾기 메뉴를 활용하면 의사의 프로필과 그가 쓴 칼럼들을 쭉 다 보고 고를 수 있습니다. 구독자 수나 조회수 같은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내가 오롯이 의사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검색도구가 되어줄 겁니다.
이번주의 추천
:: 도서 '빈틈의 위로' (김지용, 강다솔, 서미란, 김태술 저)
제가 몇 년에 걸쳐서 꾸준히 ‘저 사람은 괜찮은 의사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몇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김지용 정신의학전문의입니다. 유튜브 뇌부자들을 운영하고 있고, 유퀴즈에 출연해서 제법 얼굴이 알려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미디어에 출연하면서도 유명세보다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으려’한다는 마음가짐이 오랫동안 잘 유지되어온, 즉 쇼닥터로 흑화(?)되지 않고 있는 소수의 의사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이렇게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의사여도 일단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진료가 언제나 꽉 차 있어요. 만나기가 힘들다는 소리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선생님들께 항상 이런 농담을 합니다.
“선생님 같이 정상적(?) 유명 의사들은 책을 주기적으로 내는 법을 제정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진료를 다 못해주니까 글로라도 만나셔야 하지 않나요?”
그렇게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김지용 전문의의 책, 빈틈의 위로입니다. 총 4명의 공저와 함께 했는데요, 이야기의 결은 같습니다. 사람들의 일상과 마음에는 틈이 필요하다는 거죠. 마치 저는 저의 책, 마이크로 리추얼과도 쌍둥이 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를 만나는 일주일의 단 한 시간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만나지 않는 일주일의 167시간을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저의 화두이죠.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그 관점을 다루고 있어요. 마이크로 리추얼이 참 좋으셨던 분이라면, 또 저의 강의나 워크숍에서 느낀바가 많은 분이시라면 결이 비슷한 이 책, 참 좋으실겁니다.
지난 주 답변
지난주 질문 '나와 인연이 오래 가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세요. 공통된 특징이 있나요?'에 대한 구독자 여러분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이번주에도 많은 답변을 보내주셨는데요, 비슷한 결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의 레터에 모여서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답변 보내주신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려요 :)
이번 주 질문
이번 주 질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구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다음 주 레터에서 소개합니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눠보세요.
brand story
장재열의 off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레터는 매거진, 워크숍, 컨설팅을 통해 스스로 온전히 멈출 수 있는 마음의 자생력을 기르는 브랜드 offment의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에 소개된 다양한 가치를 다양한 매개체로 개발하고, 전달합니다. 아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주세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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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lu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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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열의 오프먼트 (1.22K)
depluie 님, 반갑습니다. 정성스러운 글 참 감사해요. 그럼요. 분명히 세상에, 단 한사람에게라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지요. 일단, 오늘 지친 저에게 큰 힘을 주셨는걸요? 글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댓글 하나하나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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