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의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햇빛이다, 햇빛!!!"
유난히 해를 좋아하는 제가 평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어딘가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포근해지지 않나요? 저는 그렇거든요. 외출 전 창문을 열었을 때 해가 쨍쨍하면 기운이 샘솟고, 길을 걷다가도 자연광을 보면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으로 남겨요. 일몰을 좋아해 일부러 명소를 검색하기도 하고, 땀을 흘리면서까지 햇볕을 가만히 쬐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먹구름이 몰려올 땐 기분까지 흐려지곤 해요. 칙칙해지는 하늘색만큼 컨디션이 가라앉을 때가 있답니다. 특히 신랑과의 기념일을 맞이해 풍경이 좋은 곳을 찾아 나섰을 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카메라 렌즈를 여기, 저기 갖다 대봐도 햇살이 없으니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 없죠. 비까지 내리면 더욱 실망합니다. "아씨, 뭐야. 오늘 날씨 좋을 거라더니... 올해 기념일 망했어!"라며 칭얼거리기도 했어요.
인간은 모순 덩어리라던데,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햇빛에 환장하고 '비'를 싫어하는 제가 '비 맞는 건' 또 그렇게 좋아하거든요. 해가 구름에 가려 어둑해질 즘엔 우울하다가도,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면 묘한 설렘을 느껴요. 빗속으로 확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요. "우리 그냥 비 맞으면서 사진 찍을까? 자루랑 우중 산책할까? 비 오는데 자전거나 탈까? 와, 진짜 재밌겠다!" 같은 저의 급작스러운 제안 덕에 저희 부부의 사진첩에는 비 맞으며 찍은 사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옷이 젖는 게 싫어 아무리 몸을 움츠려도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 사이로 기어이 빗물이 스며들잖아요? 비 맞지 않으려 무거운 우산까지 챙겼는데 꿉꿉하기만 하고요. 그런데 쏟아지는 비를 냅다 맞아버리면 되려 시원하더라고요. 나를 짓누르던 갑갑한 무언가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느낌이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빗방울은 꼭 걱정거리 같아요. 언제 내릴지, 얼마나 세차게 내릴지 정확히 알 수도 없고, 내 맘대로 그치게 할 수도 없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내리는 비를 보면 당황스럽지만, 아주 큰 우산을 펼쳐봐도 빗방울을 전혀 맞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고요. 마치 인생의 변수들을 막기 위해 온갖 계획을 세워봐도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는 걱정거리들처럼요.
그런데 그 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적시고 나면 별게 아니더라고요. 걱정도 그렇죠. 직면하기 전까지는 두렵지만, 막상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별일 아니라는 걸 깨닫게 돼요. 제가 비 맞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이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애써 피하지 않았음에서 오는 그 자유로움이 좋아서요.
그래서 저는 종종 일부러라도 빗속을 걷습니다. 누군가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넓은 우산을 펼치며 얼굴을 찡그릴 때 천천히 걸으며 빗물을 그대로 느껴요.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가만히 맞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비 좀 맞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이런 일 좀 일어나도 괜찮다, 저런 일 좀 안 풀려도 괜찮다.'로 촉촉하게 번지죠. 그렇게 온몸이 흠뻑 젖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가끔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하늘에 내 삶을 맡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걸요.
이제는 맑고 화창한 날만 기다리지 않아요. 비가 그친 후 다시 찾아올 햇살처럼, 숱한 걱정들이 지나간 자리에도 반드시 따사로운 희망이 싹틀 테니까요.
오늘의 추천
'비오는 소리 ASMR'
저는 글을 쓰거나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할 때 빗소리가 담긴 ASMR을 자주 들어요. 불필요한 생각이 사라지고 신기하게 마음이 느슨해지더라고요. 우리 모두 빗줄기로 온몸을 적실 수는 없으니, 마음을 적셔주는 빗소리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해 보세요. 나도 모르게 내려앉은 내 안의 걱정거리들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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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저도 예전엔 여행을 떠날 때면 무조건 '좋은 날씨!'여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비라도 내리면 '망행다'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사실 날씨는 아무죄가 없잖아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모든 상황은 변하니까요 생각을 바꾸니 비가 주륵 주륵 내리는 날은 풍경 좋은 통창유리 카페에 앉아서 비멍을 때릴 수도 있고 보글보글 전골에 소주 한잔 하기에 완벽한 핑계 거리가 생기더라고요 비가 와야만 볼 수 있는 예쁜 무지개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걱정이 지나간 뒤 찾아오는 희망에 또 즐겁게 살아갈 힘이 생기겠죠^^ 올해는 봄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어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 또 심상치 않은 기후변화에 걱정도 살포시 되네요.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한 이 봄을 잘 만끽하면서 보내봐요 우리^^
민정
사랑이누나 님😊 오늘도 마음이 듬뿍 담긴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참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던 사람이었는데, 흐린 날은 또 흐린 대로의 매력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어요. 사랑이누나 님 이야기처럼 생각나는 맛있는 음식들도 많고요ㅎㅎ 비가 와야만 볼 수 있는 무지개라니! 너무 멋진 표현입니다요..💗 며칠 전에는 놀랄 정도로 덥더니 오늘은 또 서늘하네요...! 요즘 정말이지 걷잡을 수 없는 하늘이지만 우리가 만날 그날은 맑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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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민정님의 레터를 읽으면서 저도 예전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예전에 잠시 다녔던 직장상사분이 좀 특이하신 분이었어요. 가끔씩 점심산책을 함께 하곤 했는데 비 오는 날에도 산책을 나가자고 하시는거에요. 읭? 비오는데 산책?? 이러면서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 했는데요. (강압은 아니었고 자의적 선택으로) 막상 우중산책을 해보니 우산을 쓰고 산책하는 것과 평소에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비가 오는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중산책은 빗소리도 듣고, 비냄새도 맡고 하면서 뭔가 힐링되는 기분이라면 출퇴근 때 비가오면 '아 출근해야하는데 왜 하필 오늘 비가 오는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하죠. 같은 비인데 대체 왜 이런 생각이 들까 했는데 저의 결론은 마음의 여유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데 여유가 없을 때는 비는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요소라고만 생각하게 되는거죠.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고나서는 우중산책을 나선 적이 많이 없긴한데요ㅎㅎ 그래도 장화신고 비오는 날 나가는 것은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는 신발 젖는게 싫어서 비를 싫어한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나를 보호하는 방어막만 있으면 비가 두렵지 않더라고요. 같은 것도 나의 상항과 생각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생각하는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비가와도 이제는 더 이상 찡그리지 않으며 반갑게 맞이해봐야겠습니다. 오늘 날씨가 참 좋았는데 민정님의 하루도 기분 좋으셨길 바랍니다. 민정님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민정
댓글을 보니 저도 학창 시절에 "나는 비 오는 날이 너무 좋아"라고 자주 말씀하시던 선생님을 보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어린 마음에 "뭐야,, 왜 저래,,,," 이러면서 막 이상한 눈으로 봤던 것 같아요 (ㅋㅋ) 도로시 님 이야기처럼 결국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법인데, 그 생각을 매사 긍정적으로 먹는 게 참 쉽지 않네요. 오늘도 꽤 맑은 날이었는데, 도로시 님의 하루도 화창했기를 바라봅니다 🍀🫧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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