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저 역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며, 좋은 부모이자 배우자, 성실한 직장인,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끈기, 열정, 그리고 ‘버티는 힘’이 저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라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저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 장재열 작가님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 마음에도 '처방'이 필요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겉으로 보기엔 ‘복에 겨운 소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부모의 자식으로서,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저에게만 요구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점점 사람을 피하고, 관계를 피하고, 스스로를 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한 게요. 처음엔 ‘잠깐의 도피겠지’, ‘이 정도 휴식은 괜찮아’라며 애써 나를 다독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돌아가기 어려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대인관계에서는 자꾸 벗어나려는 저의 이중적인 모습이 저 자신도 낯설고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가끔은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요즘 바빠서 그래","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뭘 더 잘하려고 해?"라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래, 내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돼’ 하고 다짐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정신과에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저 나약한 모습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그 생각도 접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아내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합니다. 늘 신경 쓸 것이 많고,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이게 번아웃일까요? 아니면 제가 그냥 나약한 걸까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맥이 잡히지 않습니다. 푸념 같지만, 저 자신도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by. 불타는 사회복지사
* 누구나 아래의 링크를 통해 사연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구독자의 답장
불타는 사회복지사님의 사연, 어떻게 보셨나요? 번아웃을 나약함이 아닐까 자책하고 자기검열하는 마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겪어본 일이어서 일까요? 이번 달은 한마음 한뜻으로 답변들을 주셨네요. 한 번 살펴볼까요?
장재열의 답장
어서 오세요, 불타는 사회복지사님. 참 잘 오셨어요. 이렇게 털어놓음이 시작된 걸 축하드리고요. 첫걸음을 떼셨네요! 그나저나 사연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저 자신도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였어요. 이게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거든요. 너무도 열심히 책임감 있게 살아온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변화는 ‘감해력 저하’입니다. 있는 단어는 아니고 제가 만든 말이에요. 문해력이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감해력은 내 감정을 내가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할까요? 그게 떨어져 버리는 거죠. 무언가 이상한데 설명할 수는 없고, 그런데 분명히 이상하긴 하고 그래서 더 답답하죠. 그런데 이건 내가 나약하거나 문제 있어서가 아니고요. 어떤 신호가 뿅! 하고 떴는데 그 신호를 해석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예를 들어 부탄이라는 나라는 신호등이 없거든요. 그 사람들이 한국에 처음 관광을 오면 신호등을 이해할 수 없겠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베트남을 처음 여행 가면 제일 헤매는 게 차의 경적 소리가 담고 있는 의미가 달라서예요. 한국에서는 클락션을 “위험해!”, “비켜!”라는 의미로 쓰잖아요?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여기 차 있음!”이라는 식으로 자기 위치를 알리는 메시지로 씁니다. 경고가 아니라 공유의 차원이에요. 그래서 엄청나게 울려요. 오토바이나 차가 보행자에게 클락션을 울릴 때도, “야 비켜!”가 아니라 “너가 천천히 건너면 내가 알아서 피해 갈게”인 경우가 훨씬 많아요. 이렇게 처음 접하는 신호에는 우리가 당황하고 “이게 뭐지?”, “왜 저렇게 거칠지?” 하며 혼돈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신호라 낯설 수는 있어도 그게 바로 확대해석으로 직행하는 건 경계해야 해요. 낯선 감정이라고 해서 문제시하거나 곧장 “병인가?”, “내가 나약한가?”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오늘은 교통 신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차로 비유해서 쭉 이어가 볼까요? 제가 강연에서도 번아웃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드리는 비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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