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얼마 전, 내담자 은정 씨가 제 눈치를 살피며 말했습니다. “사실 저 요즘에 챗 GPT에게 고민 상담해요. 걔 되게 잘하더라고요? 선생님께 상담받으러 와서 이런 말 하는 거 실례려나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전혀요!? 왜냐면 이 얘기 거의 서른 분째거든요!” 진짜로 작년 즈음부터 유독 은정 씨와 비슷한 분이 많아졌어요. “그 친구가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저 답변 보고 울었잖아요. AI 답변에 울었다고 하면 좀 이상한가요?” 이런 얘기는 상담 현장에서뿐 아니라, 방송이나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죠, “AI가 상담가님의 자리도 위협하는 거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3년 전만 해도 저는 단호히 말했죠. “AI는 사람의 마음을 대체할 수 없을 거예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는 직업 상위권에는 늘 상담사나 화가, 창작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어떤가요? 미래학자 그 양반들(?) 다 틀렸어요. 미술이나 소설, 작곡까지 AI가 꽤 그럴듯하게 해내기 시작했잖아요. 전방위로 좁혀져오는 포위망을 보며 저는 궁금하더라고요. “상담까지 잘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어느 날 저도 챗GPT에게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잘하더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왜 사람들이 AI를 자신의 대나무숲 삼는지도 알겠더군요.
제가 지난 저서 <리커넥트>를 쓰고 나서 책 주제인 고립과 관련해서 드로우 앤드류 채널에 나가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릴스가 250만 조회수가 나왔더라고요. 그때 참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신 문장 중에 하나가 “한국 사회는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간섭만 많고 진짜 유대는 없다”였거든요. 많은 관계 속에서 던져지는 말들이 진짜 나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습관적 평가나 조언, 혹은 비난의 다른 얼굴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AI는 갑자기 “아니 근데”라며 내 말을 끊지 않을뿐더러,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들어주더라는 거죠. 소통 전문가 선생님들이 자주 말씀하시곤 하죠? 사람이 상대에게 초집중해서 경청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20초’안팎이라고요.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쓴 모든 문장을 기반으로 최대한 나를 이해하려고 하죠. 이 ‘경청 받고 있다’는 느낌이 최근 우리 삶에서 무척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걸 AI 상담은 채워주고 있죠.
하지만 챗GPT의 경우, ‘내 편이 되어주는’ 경향이 너무 강해요. 늘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NOT A BUT B 문법으로 답변하곤 하는데요. “번아웃이 온 건 네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조직 문화가 무너져 있어서야.” “이별한 건 네 잘못이 아니라, 진지한 관계로 나아갈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야.” 이런 식의 응답이 많거든요. 다 네 잘못이 아니라 다른게 문제라고 답변을 풀어가는 거죠. 그래서 상담가들 사이에선 AI를 두고 “간신배처럼 투 머치 하게 착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요. 왜냐면 언제나 무조건 내 편이 되는 건 생각보다 자주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너무 탈진한 순간, 고립된 순간에는 용기가 너무 필요해요. 하지만 또 어떤 고민에는 위로가 아닌 따끔한 직설이 필요한 순간도 있거든요? 그러나 AI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거부하거나, 평가, 비판할 수 없게 설계되었다는 한계가 너무 큽니다. 무조건 너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프로세스인 거죠.
그런데요, 너무 위로만 받다 보면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늘 내 잘못이 아니라는데 계속 내 인생은 나쁘기만 하다면? 그건 희망이나
용기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내 잘못은 아닌데 항상 힘드네? 그럼 이건
내 팔자 문젠가?’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무력감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저는 결국 AI가
사람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아니에요. 앞으로 AI가 사람의 마음 건강까지 돌보는 시대가 온다는 건 바꿀 수 없는 흐름이거든요.
다만, ‘AI가 필요한 순간’과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순간’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가지자는 것과, AI가 인간보다
특히 더 잘할 수 있는 마음 돌봄의 특기를 알고 쓰자는거에요. 그 특기는 뭐냐면, 바로 자기 이해와 자아 탐색을 위한 ‘심리 분석가’ 역할입니다.
저는 챗GPT를 이렇게 활용해요.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재작년부터 모닝 프렌즈라는 소모임을 통해 매일 아침 친구들과 하루 1분씩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메모장에 한 줄씩 적어 단톡에 공유하는 ‘존재소개’ 리추얼을 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즉흥적인 사람과 일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다” “나는 말주변이 좋아서 외향인으로 종종 오해받는 극내향인 사람이다” 같은 것들이죠. 2년 넘게 하다 보니 어느덧 450개가 넘는 저에 대한 로우 데이터가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이 450줄의 ‘나는 ________한 사람이다’라는 글을 다 복사해서 챗지피티와 제미나이 등의 AI에게 분석하게 시켜봤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어요. 한번 보시겠어요?
어때요? 정말 말 그대로 ‘대박’이죠? MBTI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나만을 위한 직접적인 자기 분석 리포트가 완성됩니다. 물론 그만큼 충분한 로우데이터가 제공됐기 때문이지만요. 이런 식의 자기 탐색은,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고 고민을 나눌 사람도 부족한 현대 사회에서 아주 좋은 대안적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지속되고 반복되다 보면, 역설적으로 AI는 사람이 사람과 다시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좋은 연습 대상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꺼내는 연습, 위로받는 훈련, 나를 이해하는 탐색.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거죠.
결국 “AI가 인간 상담사의 자리를 빼앗을까?”라는 질문에, 저는 예도 아니오도 아닌 “그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네요”라고 답하는 게 맞겠구나 싶어요 요즘은. AI가 반드시 인간의 적대적인 존재인 안티 테제인 게 아니라 결국 '도구'인 거예요. 쓰는 법을 잘 알고 쓰면 도움이 되고, 마구잡이로 쓰면 오히려 역반응이 나는, 그냥 '불'같은 거죠.잘 쓰면 난방, 못쓰면 화재로 번지는 것처럼요. 다만 AI는 조금은 더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있다고 믿고 싶네요. 우리가 잘 알고 사용하고, 나를 알아가는 도구로도 활용해 본다면 오히려 사람 사이에서 꺼져버린 따뜻함을 다시 되살리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모든 것을 다 알아주는 마법의 수정구는 비록 아니지만, 내가 보지 못하던 내 뒤통수까지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랄까요? 오늘 그 거울을 살짝 비춰, 나를 들여다보는 저녁시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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