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작은콩입니다. 안녕히 지내고 계신가요?
길 것만 같던 겨울이 지나고 그새 화창하고 따뜻한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작은 음식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어딘가 소풍 가는 날이면 꼭 필요한, 바로 도시락 이야기입니다.
작은콩의 조금 느린 서른 즈음의 일기
"도시락 싸는 것, 번거롭지 않아?"
학생 때부터 늘 작은 통에 먹거리를 잘 싸서 다녔던 제게 친구들이 늘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밖에서 맛있는 것을 사 먹기를 좋아하는데 저는 아니었거든요. 솔직히 학교 근처 식당 음식이 맛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매번 사 먹어도 될 만큼 용돈이 충분치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모든 이유는 둘째였고, 첫 번째 이유는 그냥 '도시락 자체를 좋아해서'였던 것 같아요.
제 이상한 도시락 사랑은 언제부터였던 걸까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90년대생의 '소풍'이란 파란색 어린이 음료와 칸쵸 과자, 그리고 바로 '도시락'이었죠. 따가운 낮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다 같이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메뉴는 보통 김밥 아니면 유부초밥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엄마의 김밥이 참 좋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집에서 먹는 건 그냥 그랬는데 도시락, 즉 '네모난 곽 형태의 작은 통'에 담긴 김밥을 밖에서 먹었을 때 그 맛은 배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를 먹고 자라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시락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준비하고 싸는 과정까지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도시락은 어딘가 ‘떠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인지, 메뉴를 고민할 때부터 왠지 설레는 기분이 들거든요. 삶이 무겁게 느껴지고 어딘가 떠나고 싶은 날이면 특별히 갈 곳이 없더라도 김밥을 말아 봅니다. 바스락거리는 검은 김 위에 가볍게 소금 간을 한, 적당히 따뜻한 하얀 밥을 꼭꼭 눌러 깔고, 그날의 기분이나 냉장고 사정에 맞는 재료를 골라 양껏 얹은 후, 마음속 근심 걱정까지도 함께 눌러버리는 기분으로 풀리지 않도록 힘을 주어 말아 냅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예쁜 통에 김밥이 흔들리지 않도록 빈틈없이 요리조리 야무지게 넣습니다. 단단하게 뚜껑을 닫고 나면 이제 오늘 하루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적이 된 느낌이 되죠.
살다 보면 누가 나를 가두지 않았음에도 자기 생각 속에 갇혀 버리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가고 나이는 먹는데 집은 언제쯤 살 수나 있을지, 그전에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살아왔지만 앞으로 몸이 더 아파진다면 밥벌이나 잘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내 모습에 점차 마음의 문을 닫고 일에만 파묻혀 가게 됩니다. 지금 이 상황만 벗어나면,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때 가서 행복을 찾아야지. 그렇게 매일의 시간을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위한, 그저 벗어나고만 싶은 날들로 꾸역꾸역 삼키듯 지워버립니다.
그렇지만 이런 때일수록 일부러 기억해야 합니다. 지우고 싶었던 오늘 하루도 사실은 얼마 안 되는 내 인생 중 가장 젊었던 소중한 하루였다는 것을요. 천상병 시인은 <귀천> 시에서 세상살이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말했지요. 우리가 시간이 지나 세상에 잠시 나왔던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야 할 때, 뒤돌아보면 결국 그 모든 하루하루가 얼마나 푸르고 예뻐 보일지 생각해 보세요. 당장 이 순간 속에서는 모든 것이 조급하고, 불안하고, 두렵지만 이 아픈 일들마저도 푸르른 내 삶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그러니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면, 어둠에 갇히기 전에 잠시 떠나 보는 것도 좋습니다. 숲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면 높은 나무들 사이에 갇혀 하늘이 얼마나 파랗고 아름다운지 잊게 됩니다. 현실의 고민들은 김밥처럼 도시락 통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눌러 담아 버리고, 보자기에 싸서 가볍게 달랑 들고서 마음의 소풍을 떠나봅니다. 일상을 떠나 멀리서 바라보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한낱 하루들이 나뭇잎처럼 모여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의 추천
[보너스 레시피] 비건 두유 크림치즈 만드는 법
저는 식이요법으로 인해 유제품을 끊었어요. 실제 크림치즈 대신 두유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크림치즈 레시피를 보너스로 적어봅니다. (저도 여러 블로그 글을 보며 따라 한 것이므로 저만의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아니지만요) 오늘 글의 첫 부분에 보여드린 사진처럼, 김밥에 넣어도 맛있는 비건 두유 크림치즈입니다.
준비물: 두유 500ml, 식초 2큰술(30ml), (선택 재료) 캐슈넛 곱게 간 것 1큰술 정도, 소금 약간
*tip) 두유는 무첨가 매일두유 99.9, 식초는 일반 오뚜기 현미식초가 무난합니다.
*tip 2) 캐슈넛은 미리 6시간 이상 물에 불려서 믹서기로 간 후 소분해 얼려 두었다가 조금씩 꺼내 쓰시면 편합니다. 없으시면 넛 버터 사용하셔도 괜찮고 그도 아니면 생략하셔도 됩니다.
만드는 법:
1. 두유를 살짝 끓여서 60도 정도 온도로 만듭니다. 온도계가 없으시다면, 살짝 끓어서 기포가 생기고 김이 올라올 정도면 되어요. 저희 집 가스레인지 기준으로 중약불 약 3분 정도 가열했을 때 금세 60도가 넘더라고요.
2. 식초 30ml를 넣고 슬슬 가볍게 섞어줍니다. 그대로 15분 정도 방치하면 순두부처럼 몽글거리는 상태가 됩니다.
3. 2번의 내용물에 캐슈넛 간 것을 함께 넣고 가제 수건 위에 붓습니다. 내용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제 수건을 잘 덮은 후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4~5시간 정도 유청을 뺍니다.
4. 크림치즈 질감으로 되었을 때 소금을 약간 넣고 잘 섞어줍니다. 저처럼 김밥이나 샌드위치에 넣어보셔도 좋고, 그냥 크래커를 찍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참고 레시피 출처:
brand story
월간 마음건강 by 오프먼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와 매거진은 늘 애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과 쉼의 밸런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연구하는 마음건강 예방 브랜드 오프먼트 offment에서 만듭니다. 아래의 홈페이지 버튼을 눌러, 본 아티클 외에도 교육, 워크숍, 공공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오프먼트의 프로젝트를 만나보세요. 그리고 뉴스레터와는 또 다른 깊이가 있는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버전도 만나보세요. 조금 더 긴 호흡과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담긴 매거진 전용 아티클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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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작은콩님~! 오늘 레터는 클릭과 동시에 군침을 꿀꺽! 삼키게 하네요 ㅎㅎㅎ 집밖에서 먹는 김밥 캬~~~ 말해 뭐합니까! 세상 그런 꿀맛이 있을까요? 저도 종종 김밥을 싸먹거든요. 얼마전엔 양배추를 착착착 썰어서 계란과 버무려 부쳐내 밥 대신 베이스로 넣는 단백질 김밥에 꼿혀서는 몇번을 해서 먹었는지 몰라요 ㅎㅎㅎ 작은콩님에게도 건강식으로 아주 훌륭할 듯해요! 강추드립니다^^ 눈에 온전히 담기에 부족할 정도고 너무너무 이쁜 작은콩님이 직접찍은 사진도 감사해요😊 소풍 나온 이번 생을 하루하루 좀 더 재밌게 살아봐요 우리^^ 우유로 크림치즈는 만들어봤는데 두유는 초면이네요~! 두유 크림치즈도 도전해 볼께요! 감사합니다😘
작은콩
사랑이누나님! 감칠맛 넘치는 ㅎㅎㅎ 댓글 감사해요. 양배추 지단을 밥 대신 넣는다니 밥 없는 김밥 맛 상상은 잘 안 가는데 맛있으셨나 보네요!! 즐겁게 읽어주시고, 경험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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