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그동안 잘 지냈나요?
약 두 달 동안 쭘마인밀란 매거진을 쉬었습니다. 혹시 기다리신 분들, 계실까요? 아무도 모르셨을 것 같은 느낌.....^^;;;
쉬는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던 모임을 마무리했고요, 글도 많이 쓰고, 책도 읽고, 새로운 집에 이사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방학을 해서 24시간 붙어있어요. 그렇다 보니 돌밥(뒤돌아서면 밥)과 돌청(뒤돌아서면 청소)과 돌빨(뒤돌아서면 빨래) 신세가 되었어요. 어째서 시간은 이다지도 빨리 지나가는 걸까요? 벌써 8월이라니요~~~
8월의 밀라노는 정말 한산합니다. 다들 멀리 휴가 간 모양이에요. 제가 사는 아파트가 좀 큰 편인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휴가를 아직 안 간 사람은 저희뿐인 것 같아요.
이탈리아로 휴가를 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로 가는 것 같아요. 밀라노로 오진 않더라고요. 밀라노도 좋은데.....(궁시렁 궁시렁....)
사실 저희도 다음 주에 베네치아와 피렌체로 휴가를 갑니다.... ^^;;;; 휴가를 떠나기 전에 쭘마인밀란 다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 지금 시작할게요.
유럽의 최고 기온이 갱신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도로의 아스팔트가 타들어 가고, 산불이 나고, 공항 활주로가 더위에 녹아내려 급하게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축구장의 몇백 배 되는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으며, 그 여파로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지금, 유럽의 여름은 여기저기 몸살 중이다.
뉴스와 다르게 내가 사는 곳은 너무나 한가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맨살을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나는 모르는 사람의 등을 보며 피부암을 걱정한다. 30도가 웃도는 날에도 아무도 양산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모자를 쓴 사람도 없다. 얼굴에 기미를 걱정하며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사람은 우리뿐이다.
2주 전 토요일. 각자 핸드폰을 쥐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우리 나가자!"
남편의 이 한마디에 우리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했다. 목적지도 정확하지 않았다. 대충 차를 타고, 대충 검색을 한 후 대충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러다 도착한 곳이 꼬모 호수였다. 밀라노에서 한 시간만 가면 나오는 호수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배가 고파 적당히 시내 같은 곳에 주차를 했다. 바로 앞에는 넓은 호수가, 뒤로는 산이 있었는데 아기자기한 숙소와 레스토랑이 있었다. 여유롭게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유럽 사람들 같았다.
이탈리아도 분명히 유럽이지만, 유럽이 아니다. 지역은 유럽에 속하지만 그들의 외형, 태도, 생활방식 등은 유럽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오히려 인도와 더 가깝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유럽의 인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부분이 이상하게 좋았다. 유럽스럽지 않은 유러피안은 철저하게 동양적인 우리 가족에게 안도감을 준다.
피자 가게가 보였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밀라노로 휴가를 오는 동양인은 거의 없다. 대부분 유명한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 이번에도 동양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말투를 보니 독일 사람 같았다.
"우리 옆 테이블 아저씨가 자꾸 아빠를 쳐다보는데?"
"그래? 왜 그러지?"
"아빠가 모자 쓰고 있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나와 남편뿐이었다.
"선글라스 쓰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내가 모델처럼 보이나 보지."
그 말을 하고 씨익 웃는 그를 보며 쓴웃음을 날렸다.
피자를 다 먹고 가방을 의자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남편이 옆 테이블의 독일 부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가방 조심하래."
"응? 무슨 가방?"
"자기가 가방 두고 갔잖아. 독일 사람인데 가방 조심하래. 여기는 다른 유럽과 달라서 이런 거 조심해야 한다고 그러네. 아까부터 우리 가방 신경 쓰였나 봐. 그래서 자꾸 쳐다봤나 봐."
나는 그 말에 가방을 꼬옥 붙들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바로 옆에 있는 젤라또 가게로 향했다. 나는 초코 맛을 딸아이는 레몬 맛을 골랐다. 콘에 높게 올려진 젤라또를 혀로 핥으며 햇빛 속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30초도 안 되어 젤라또가 녹아 줄줄 물이 되어 흘렀다. 핥은 속도를 높여 젤라또를 흡입했다.
타들어 가는 햇살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지, 이게 이탈리아의 여름이지. 아무리 더워도 그늘에 앉아있으면 어느새 불어오는 바람이 있지. 더운 여름이지만, 불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텁텁하지 않고, 끈적거리지 않은 여름.
어느새 나는 쨍한 밀라노의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2021년 7월에 인도를 떠났다. 그리고 2022년 7월에 밀라노 집에 들어왔다.
집주인은 한국 사람이었다. 어떻게 한국 사람이 밀라노에 집을 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 잘 통하는 한국 사람이 집주인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반가웠다. 집주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산다고 했다.
집주인 부부를 처음 만났던 날,
"계약서 보니, 남편이 연하시더라고요. 제가 일부러 본 건 아니고, 그냥 생년월일이 눈에 들어와서.... 어휴, 사모님. 능력자시네요."
그 말에 나는 그냥 웃었다. '남편이 아내보다 어릴 경우, 능력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남편보다 아내가 어리면 남편이 능력자일까?'라고 혼자 조용히 생각만 했다.
집에는 냉장고와 세탁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식탁과 의자, 붙박이장까지 모두 갖춰져 있었다. 바로 필요한 침대와 매트리스, 밥그릇과 국그릇만 준비하면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한국의 친정집 창고에 있으므로.....
밥통 대신 냄비를, 청소기 대신 빗자루와 대걸레를 샀다. 최소한의 살림으로 최소한의 삶을 살아보리라.
아파트엔 중앙냉난방 시스템이 있다. 생각보다 냉방 시스템이 빵빵하진 않지만, 선풍기 하나만 틀어놔도 견딜 만하다. 특히 해가 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열대야가 없는 것만으로도 살만하다.
집 바로 옆에는 넓은 공원이 있다. 저녁이 되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다. 러닝을 하는 사람, 축구를 하는 사람, 잔디밭에 앉아 대놓고 애정 행각을 버리는 커플,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가족들로 북적인다.
우리도 매일 나가 운동을 하다가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벅벅 긁으며 돌아오기 일쑤였다. 한국이었다면 이미 여러 번 살충제를 뿌렸을 텐대. 여긴 그런 게 없다. 모기를 신경 쓰는 사람은 우리뿐인 것 같다.
집이 생기니 가장 좋은 건 역시 짐을 다시 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지난날들을 떠올려보니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인도를 떠나 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열다섯 번 이사를 했다. 분명 힘들었었는데, 그 기억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한 글을 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라노 오디세이아'
힘든 와중에도 경험할 수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몸으로 배운 삶의 지혜를 잊지 않고 기록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 집 계약서를 다시 들춰보았다. 거기엔 집주인의 생년월일이 나와 있었다. 아내 분이 나와 동갑이네? 남편분은 열 살 많으시네?
그제서야 그때 나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8월이 된 지금, 저는 많이 한가해졌어요. 그동안 진행해오던 모임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거든요.
지난주엔 6주 동안 진행했던 에밀, 슬로우 리딩을 끝냈습니다. 그동안의 필사와 그림과 에세이를 엮어서 문집을 만들었지요. 이로써 슬로우 리딩 문집이 다섯 개가 되었답니다.
쓰담쓰담 글쓰기 모임에 대한 문의가 많았어요. 혼자 쓰려고 하니 잘 안 써진다면서요. 9월이 되면 시작할 예정입니다.
어제는 두 번째로 코칭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따뜻한스피커 스피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계신 따스코치님, 김문영 작가님의 첫 단독 저서인데요, 올봄에 시작했는데 이제야 책이 나왔어요. 작가님의 스피치와 보이스에 대한 모든 경험과 지식이 집약된 책입니다. 전자책과 종이책 모두 만들었어요. 곧 서평단을 모집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제목은 '따뜻한스피커의 보이스스피치코칭' 줄여서, 따뜻한스피커의 보스코입니다.
3주 전에 시작한 초고클럽은 현재진행형이에요. 매주 금요일에 만나서 라이브 피드백을 했었는데요, 8월 한 달 동안은 스스로 글을 써서 최소 10꼭지 이상을 쓰기로 했어요. 그리고 8월 말 마지막 미팅 때 투고와 브런치 북 만들기에 대해 나눌 예정입니다. 초고클럽은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에요. 이번 1기의 결과가 좋으면 2기도 진행할 수 있겠지요. 함께 초고를 쓰고 계신 분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8월 한 달 동안 푸욱 쉴 예정이에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고, 준비 중인 책의 탈고도 할 예정입니다.
브런치에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고 있어요. '무명 작가로 살아남기'라는 제목의 매거진인데요, 혼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놓지 않고 꾸준히 쓸 수 있었던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쭘마인밀란도 빼먹지 않고 발행하겠습니다.
제가 요즘 아이들과 집에만 있어서 사진도 많이 못 찍고, 밀라노의 모습을 많이 담지 못했어요. 다음 주엔 베네치아와 피렌체로 휴가를 가는데요, 따끈따끈한 현장의 모습을 전하도록 할게요.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했는데도 구독 취소하지 않고 유지해주신 구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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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 Moon
드디어 이사를 마치고 편안한 상태가 되셨다니.. 축하드려요~ 휴가도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
zzumma in Milan (118)
정말 감사드려요 ^^ 몸은 편한데 마음은 여전히 불편한... 그런 상태입니다 ^^ 휴가 가서 이탈라의 모습 많이 찍어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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