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오늘을 모르는 내가 두려운 나에게

생각 생각 또 생각!

2025.07.18 | 조회 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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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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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지냈니?

메일을 보니 안녕히 지낸 것 같더구나. 너의 매일은 모르지만, 마침내 꿈꾸던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여 행복해! 다음에 만나면 차근히 얘기해줘 빼먹는 것 없이. 새롭게 만난 세상이 궁금하구나.

난 뭐 하고 지냈지, 아무리 떠올려 봐도 생각이 안 나서 좀 착잡하네. (시작부터 축 가라앉아 미안) 흔하디흔한 안부에도 목 끝에 말이 엉겨 나오질 않는 요즘이야. ‘오늘 뭐 했어, 앞으로 뭐할 거야’ 라는 질문을 유독 많이 들어서 그런가? 색색이 표시된 달력 속 일정을 읊으면 그게 내 어제였나, 오늘인가 싶네.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오늘은, 내가 미지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잠드리라는 것.

이 드라마는 얼굴 빼고 모든 것이 다른 쌍둥이 미지, 미래에 관한 이야기야. 홀로 위태롭게 버티던 미래의 삶을 미지가 대신 살아주기로 약속하며 사건(?)이 시작돼. 알아서 척척 잘 사는 것만 같았던 미래가, 아무런 걱정 없이 넉살 좋게 사는 것 같았던 미지가 비로소 서른 살이 되어 ‘나’를 들여다보게 된 거야. 그것도 타인의 역으로.

 

미지 - 미래
미지 - 미래

 

1 나였다면

가끔 내가 ‘나’말고 다른 삶을 살았다면… 하고 떠올려본 적 있어? 인생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을 때 종종 생각해 봤어! 나는. 애초에 저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의미 없는 가정법을 세워보고 또 무너뜨리고. 미지의 서울을 만나게 된 순간도 비슷했어. 지금은 기억도 안 난다만 그날도 자책할 일이 생겼고, 막 몰아세우던 중이었거든?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기획 의도를 한참 보고 또 봤어. 눈으로 단어, 문장, 문단 밑줄 치듯 다시 보았어.

내 삶은 이렇게나 복잡하게 꼬여있는데,

타인의 삶은 참 단순하고 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저 외모였으면, 저 조건이었으면, 저 성격이었으면…

인생이 지금보단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막상 누군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아픔과 고난을 가진,

그저 행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사랑과 연민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에게는 어떨까요.

그동안 어떤 아픔과 고난을 안고 살아왔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남에게는 들이대지 않을 가혹한 잣대로

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미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다 읽고 나니 뭔지 모를 멋쩍음이 밀려오더라. 작가님에게 훤히 들킨 기분 - 나는, 우리들은 참 읽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매 장면과 대사를 통해 풀이해 주듯 미지의 서울은 이 기획 의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야.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보는 건 다가 아니다, 일부조차 아니다.’라는 걸 미지와 미래를 통해 계속 보여주거든. 그러니 섣불리 재지 말고, 너그럽게 이해하자고, 남에게도 나에게도.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저렇게 말하는 거지? 라고 생각하면 남도 넘겨짚으면 안 되는 건데 말이야. 여전히 쉽지 않아. 내 중심계엔 알맹이가 없나 싶을 정도로 이리저리 나부끼다 하루가 가고…

그래서 말인데 ‘나’는 무엇일까? 내 삶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타인의 삶을 살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나라고 할 수 있나?

구독자, L 어떻게 생각해? 나는 온전한 나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가다듬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난 대체 이 질문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머릿속 꼭지들이 정리가 안 되어 우리 글도 돌아보고 왔어. 그런데 웃긴 점 (사실 안 웃김), 2022년에도 내가 진정 원하는 걸 찾기 위해 고민 중이더라고. 그때만 해도 대강 내 삶이 정돈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넘겨짚었다. 악! 이 글도 나중에 보면 헛웃음 지을지도 모르겠다.

2022 年 글 참고

 

내가 대강 찾아본 해답은 이거야 - 평생 가정만 하다 끝나는 건 속상하잖아. 나였다면, 너였다면, 내가 ~라면 그만하고, 손아귀에 있는 내 인생 꼭 부여잡고 사는 거야. 제각각 끌어안고 사는 가시에 찔리지도 찌르지도 않게. 남의 담장 적당히 들여다보고 내 정원 가꾸며 살자. 단순한 진리인데 사람 마음이란 게 복잡하다 그치. 이렇게 줄줄 읊다가도 출근만 하면 갈피를 못 잡아…

 

2 오늘을 왜 아직 모르는 거야? (다소 반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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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서울 하면 떠오르는 명대사 있지. 방에서 괴로워하던 미지를 위해 할머님이 해주신 말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르는 거야” - 처음에 들었을 땐 위안이 됐어. 그런데 거듭 되풀이해 보니, ‘왜 오늘을 모르는 걸까 어느 정도 가닥은 잡은 채 오늘이 시작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안 그래도 불안한 일 천지인데 오늘마저 모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밀려오고. 내가 넘 배뚤어졌나.

그저 어제보단 조금 더 나은 오늘이길 바라며 새 해를 반기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겠지.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 글을 읽는 구독자가 내 끝없는 생각들에 질리진 않았을지 급 걱정된다.

극 중 호수가 직장을 그만두고 정처 없이 생각 (거의 비관)만 하던 신이 있는데, 상당히 반면교사 삼기 좋은 장면이었어. 내가 갈 수 있던 최고의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거 아닐까. 난 사실 회사 빼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 더 좋은 회사 갈 수 있을까? 희열 속에 퇴사했지만 금세 나에게 가혹한 잣대를 푹 찌르는 거지. 이거 다 생각이 많아서 그래.

그런 호수를 위해 미지가 제시한 해결책, 바로 뜨개질이야. 뜨개질은 손으로 하는 명상이래. 내가 보증할 수 있어. 뜨개만 하면 극도로 치닫던 불안도 한 순간 사라지거든. 간조롬이 말린 실을 설설 풀다 보면 모든 게 별 것 아니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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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은 생각해 봤자 후회 뿐이고 닥칠 일은 생각해 봤자 불안하기만 하고 그러니까 뭔 생각이 든다 싶으면 이 뜨개질을 해. 한 코 한 코 뜨면서 오늘 하루만 버티는 거야 그렇게 버티다 보면 새로운 일도 생기고 새로운 일이 안 생겨도 이 수세미 하나는 생기는 거지.

마음이 팍팍할 땐 뜨개 하는 시간 마저 내 삶을 속 좋게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젠 하루 정도 뜨개로 채우자 하고 그냥 해. 내가 그렇게 오늘을 버티고 싶나보다 하고.

마지막으로 미지 할머니 말씀을 다시 읽어보며, 우리 할머니였다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할지 상상해 봤어. 콩깍지 하나 손녀 입에 들어갈까 열심히 채 흔들던 우리 할머니. 내가 울상이면 배로 속상해 할 우리 할머니. 속절없이 아까운 오늘, 지금에 발붙이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겠지. 미지처럼 힘들 때마다 되뇌어 보려고. 참참이 뜨개도 하면서.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3 다정이란 = 용기

앞서 남 좀 그만 들여다보자 했지만, 좀 모순된 얘기도 꺼내고 싶어. 네가 ‘굳이 지우지 않음에서 오는 따뜻함이 있다.’라고 말했잖아. 미지의 서울도 어찌 보면 궤를 같이한다고 봐. 미지, 미래, 호수, 세진, 지윤, 로사, 상월, 경구… 어느 인물 하나 놓치지 않고 다정하게 살피거든. 누구도 선악으로 가르지 않고 입체적으로 둘러보게 만들어.

이 지점에서 또 생각해 볼 것 - 우린 타인을 절대 완전히 알 수 없지만, 상대를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담장 주위를 돌며 다정히 안부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거 생각보다 힘팽기는 일이다? 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이 있잖아.

날 서 있던 호수를 무디게 만든 것도 미지의 다정함이었고. 지레 겁먹고 도망칠 수 있는데도 용기 있게 호수를 읽어낸 미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걱정 많은 나지만 살면서 다정함은 잃지 않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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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안 되던 생각을 막 써 내려갔는데, 나름 결론을 얻은 것 같아.

버겁더라도 나일 수 있는 삶이 무엇일지 돌아봐야지. 계속 생각하던 거지만 서른 되기 전에 버킷리스트도 채우고 싶어. 다 쓰면 일부 공개해볼게ㅋㅋ. 애써 채운 나날이 별거 없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잠시 시무룩해졌다가 또 살아가 보자. 나에게도 남에게도 다정하게!

 

추신. 편지 쓰며 들은 노래 함께 남길게. 🔗YGSF의 Kids, 매일 듣던 노랜데 가사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여태 Kids를 Kiss라고 들었어. 참으로 불미스러운 감상을…)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고대하며 살아가는 건지 미지수인 구독자에게 가닿길 바라며 안녕!

Growing up is never ending
Nobody likes making mistakes
I guess it's easier pretending
Than tell yourself you're acting your age
But it's just all a big disguise
We ain't nothing, but kids
Longing for the sunshine
We ain't nothing, but kids
Anything for a simp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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