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메리크리스마스! 아직 2주는 더 남았지만 난 벌써 연말 분위기에 흠뻑 빠져있어. 90년대 미국 영화처럼 거대한 트리 장식은 못했지만, 벽에 산타를 잔뜩 걸어 놓고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함께 루돌프 머리띠 얹어 사진도 찍어뒀거든. 그때가 아마 11월 25일? 크리스마스 한 달 전이라며 열심히 의미를 비집어 넣었어. 너무 유난 아닌가 싶지만 난 밤이 조금씩 길어질 무렵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려. 이 순간만 기다리며 한 해를 버텼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기대와 환상이 크다 보니 연말이 끝나고 울컥 밀려오는 공허함에 힘든 1월을 보내곤 해. 그래서 이번엔 좀 자제해볼까 했으나 12월에만 누릴 수 있는 찰나의 행복을 굳이 눌러낼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만끽해보려고.
내가 12월을 즐기는 방법은 바로 손편지를 쓰는 거야. 올해 나와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고자, 나의 한 해를 정리하고자. 요즘 카톡도 있고 심지어 레트로함을 원한다면 이메일도 있는데 왜 굳이 손편지냐고 묻는다면...담긴 '애정의 점도'가 다르다고 답하고파. 쉽게 수정하지 못하는 볼펜, 연필로 쓴다는 것 - 글자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고른다는 것 - 애정의 점도는 점점 끈덕지게.
난 쓰는 동안 상대를 생각하며 순간들을 정리하거든? 브리짓 존스가 일기를 쓰며 오만 가지 표정을 짓고 중얼거리는 것처럼 나도 혼자 희노애락을 오롯이 느끼며 편지를 써. 그 대신 상대가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도록 짙은 감정은 좀 덜어내는 편이야. 그저 읽는 사람이 함께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슬쩍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내심 연말마다 기다려지는 일종의 행사가 되길 바라고 있어. 기다리는 설렘을 전할 수 있다면 내 엽서는 소명을 다한 거겠지.
겨울이 다가오면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꿈도 참 크다!
그래서 이번엔 메일에 손편지처럼 마음을 담아보려고. 네가 올해 연말 혹은 크리스마스에 봤으면 하는 영화/드라마로 골라보았어. 받는 이를 정해두고 쓰는 것이기에 개인적이지만, 이건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이야기나 마찬가지야. 읽다가 '내 얘기네' 싶으면 수신인을 본인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고르고 고른 선물이니 꼭 재생해보길. (악필이지만 내 손글씨도 한번 봐줘. 이건 인터넷 손편지니까)
😎올해 취뽀 성공한 J에게.
J에게 주고 싶은 영화. 이 영화를 봤을지 모르겠다. 니콜라스 홀트의 어린 시절 이미지는 유명한데 생각보다 영화 내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고. 줄거리만 보면 딱히 재생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나도 EBS 일요 시네마에서 처음 봤거든. 신기하게도 한번 접한 이후로 연말마다 꼭 다시 보는 영화가 되었지. 이렇게 소중한 영화를 선물로 주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야. 첫째로는 취뽀를 기념하며 조금은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도 연말 분위기 담뿍 담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어서. 둘째로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대사를 살갗으로 이해하게 해준 사람이라서.
주인공 윌처럼 상속자도 아니지만 난 가끔 혼자 고립되고자 했던 적이 있어. 주기적으로 주위 사람들을 정리하고 혼자 굴속으로 숨어버렸거든. 대체 왜 그랬나 몰라.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나를 자꾸 밖으로 꺼내주는 주변인들 덕에 J도 만날 수 있었지. 영화 속에서도 어린 마커스가 자꾸만 윌을 밖으로 꺼내. 모종의 사유로 크리스마스를 기피하던 윌을 본인 가족 파티에 초대하기까지 하지. 시종일관 회피형으로 살아가던 윌을 계속해서 현실 속으로 끌어당겨. 보다 보면 어른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곱씹어보게 되는 것 같아. 마커스 정도의 나이일 땐 잘 몰랐는데, 어른도 다 놓고 숨어버리거나 엉엉 울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거든. 나도 물론 그런 순간들을 겪었고! 하지만 J 덕분에 슬기롭게 이겨냈어. 인간은 혼자만의 완전한 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 고마워. 나도 누군가에게 마커스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며 워킹타이틀 특유의 따뜻함을 느끼는 연말 보내길 바라. 새 회사에서도 다양한 섬들을 만나 든든한 대륙을 이루길.
😏진로를 고민 중인 L에게.
어때 굵고 짧은 강렬한 줄거리. 말 그대로 순간의 선택, 그리고 이어지는 양방향의 삶에 대한 이야기야.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멀티버스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발랄하게 풀어낸 영화지. 아마 네가 평소에 즐기는 장르랑은 정반대라 이번 기회를 통해 추천해주고 싶었어.
우린 항상 이야기해. 이 일도 경험해보고 싶고 저 경험도 해보고 싶고, 아니다 그냥 훌훌 털고 여행도 가보고 싶다며 중얼중얼. 우린 그러기 위해서 한정된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하기에 하나의 선택에도 조마조마하지만, 영화 속 세상에선 두 가지 선택의 타임라인이 동시에 진행돼. 난 이런 상상을 자주 하거든? 내가 만약 이 순간 이 선택을 했다면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까. 현재의 삶이 영 맘에 들지 않는 순간마다 떠올리는 것 같아.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나. 정말 뻔하고 유치한 결말이다 싶을 수 있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이 '틀렸던 적은 없다'라는 것. 물론 내 삶의 선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아직도 약간은 두려운 지점이지만.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은 없어 다른 선택지만 있을 뿐.
고등학생 때 동아리를 함께한 것도, 지금 메일을 쓰고 있는 것도, 네가 다큐를 만드는 것도. 언젠가 뒤돌아보면 결국 하나의 결말을 위한 길목이었음을 알게 되겠지? 올해의 수많은 선택을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이 영화 꼭 재생해봐!
🤩항상 존경하는 S에게
S야 네가 보다 보면 기겁할 장면이 몇 장면 나오는 영화지만, 너에게 선물하고 싶은 대사가 있어서 꿋꿋이 적어봐. 너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었어. 내가 전혀 모르는 세상에 뛰어들었을 시절인데, 너는 이미 그 분야에 빠삭한 사람이었지. 그때를 생각해보면 아마 난 영화 주인공 멜빈이랑 비슷했을 것 같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목소리만 크게 떠들고, 쉽게 단정 짓고, 숱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거든. (물론 진짜 멜빈 만큼 괴팍하진 않았길 바라)
하지만 넌 차근차근 나에게 많은 걸 알려줬어. 내가 느끼지 못하던 세상의 불편한 이면도 알려주었고, 이를 바꾸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알려주었어. 비건에 대해 처음 알려준 것도 너였어! 정말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내가 지금 회사에 흘러 들어가게 된 건 네 덕도 크다고 볼 수 있지. 그만큼 S 너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친구야. 극 중 캐롤이나 사이먼이 편협했던 멜번의 시각을 넓혀주는 것처럼 너도 그랬어.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
이 문장을 꼭 전해주고 싶었어. 너무 느글거렸다면 탄산 쭉 들이켜. 앞으로 나도 너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다. 그럼 이보다 더 좋은 친구 관계는 없을 거야.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별난 K에게.
혹시 별나다는 단어에 기분 나빴다면 미안. 하지만 이 단어가 가장 널 잘 표현하는 것 같아. 너랑 있다 보면 나랑 너무 달라서 재밌을 때가 많거든. 나는 대체로 ㅡ 일자로 일상이 흘러간다면, 너는 꼭 심장박동처럼 고점 저점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재미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일상을 조잘조잘 얘기해줄 때 가장 행복해 보여.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지닌 네가 요즘 취업 준비로 인해 힘들어하는 걸 보면 속상해. 그래서 이 드라마를 선물로 주고 싶었어. 조금이나마 응원이 될 수 있었으면 해서.
드라마 속에선 주인공 샘도 여동생 케이시도 '주체적 삶' 찾기에 돌입하거든? 연인을 찾기도, 진로를 찾기도 하며 온갖 감정을 느껴. 두려움, 설렘, 분노, 쾌감 등등. 이중엔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힘듦도 존재하겠지만 의미 없는 감정은 없다는 사실!
한국에선 아무래도 '평범한 때'가 중요하다 보니, 나이를 기준 삼아 느닷없이 자아를 찾고 나를 소개하며 별난 모습을 접어둬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지만... 평소의 너를 잃지 않고 감정의 파도에 즐겁게 올라탔으면 좋겠어.
+ 특히 인연을 찾겠다며 항상 지갑에 쪽지를 넣어두고 다니는 너의 깜찍한 모습이 영원하길 바라. 너를 주인공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와글와글 재미나겠다.
끝으로 좋아하는 문장을 남길게, 드라마에 나온 문장은 아니지만 전하고 싶은 말이라서! 명언, 명대사에 집착하는 나...좀 강호동 같다 하하.
이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전달 끝!
난 이만 크리스마스 향기 잔뜩 품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 보러 갈게. 참고로 이 영화에선 하루가 무한 반복 되거든. 난 크리스마스가 무한 반복되는 꿈을 꾸러 이만.
From.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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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연말엔 모두 손편지를 써보세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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