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축제를 열자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 DMZ PEACE TRAIN

2022.10.05 | 조회 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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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도망치듯 영화를 보러간 적이 있어?

얼마 전까지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나는 또 그랬어.

지원서를 낸 바로 다음날 면접이 잡혔고, 나와 면접관 2명, 셋이서 카페에 앉아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어. 난 이 일이 꼭 하고 싶은 양 연기도 하며 묻는 말에 착실히 대답했어. 면접을 끝내고 나오는데, 뭔가 못 견디겠더라.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어. 왜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어. 나를 너무 열심히 팔았나.

그렇게 급하게 버스를 타고,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로 향했어. 전개가 좀 이상하지ㅋㅋㅋ

작년에도 입사하고 2달쯤 됐을 때였나. 도저히 이렇게 퇴근하고 집에 갈 수는 없겠더라고. 그래서 무작정 영화를 보러 갔어. 그때 일기에 ‘기름 한 스푼을 먹었을 때 얼른 다른 맛으로 덮고자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라고 적어놨더라. 뭘 그렇게 못 참겠었는지, 왜 영화를 보러 갔는지 나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꽤나 진심으로 도망쳤고, 영화를 보고 나선 웃기게도 좋았어.

DMZ 영화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시간대가 맞는 영화를 찾았고, 그렇게 <장기자랑>을 보게 됐어.

<장기자랑> 스틸컷
<장기자랑> 스틸컷

<장기자랑>은 세월호 가족 어머니들로 구성된 극단이 연극 ‘장기자랑’을 무대에 올리고 순회공연을 다니는 과정을 좇는 영화야. 단원고 교복을 입고 연기하는 어머니들은 매번 자신의 몸에 아이들을 불러들이고 무대에 올라. <장기자랑>을 제작한 이보람 감독은 연극을 “어머니들이 망자와 만나는 통로”였다고 설명해. 어머니들은 그저 숫자나 사건이 아닌, 꿈꾸고 빛나던 한 명 한 명을 보여주며 멈추지 않고 진실을 밝혀나가고자 연극을 올리고 있다고 해. 하지만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하진 않아. 연극에 대한 진심이 커져가는 만큼 더 비중 있는 역을 맡고 싶고, 섭섭한 마음에 다툼도 일어나지만 그래도 다시 연극을 위해 모이지. 연극의 결말, 제주도에 도착해 연습했던 장기자랑을 선보이는, 그토록 바라던 장면이 엄마들의 연기로 펼쳐져.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고 또 웃었고 왠지 모를 힘을 얻었어. 옆에 사람도 흐느껴 우는 게 들리고, 다 얼싸안고 싶어지다가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며 머리를 깎는 어머니들을 보며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있음에 정신 차리고 앞에 보고 살아야지 싶다. 영화가 끝나고, 도망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마주한 게 부끄러웠고, 그 와중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받아 빚진 마음이 들어.

이것은 치유로서의 예술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치유’라는 말이 너무 간편하다고 느꼈어. 검색을 하다 이소현 감독이 “연극을 통해서 슬픔을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다. 엄마들도 그렇게 말한다”고 한 인터뷰를 봤어.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더라도 나아가기 위한, 더 나아지기 위한 움직임. 그렇기에 이들의 연극은 연대와 투쟁이었어. 그렇게 DMZ 영화제에선 <장기자랑> 딱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돌아왔어.

그 주 토요일, DMZ라는 이름이 붙은 축제를 또 다녀왔어. DMZ PEACE TRAIN! 이렇게 작정하고 뮤직 페스티벌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철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군용품 가게들이 보였고, 두루미 조형물이 있는 분수에선 디제잉 파티가 열리고, 고석정을 배경으로 하드락이 들려왔어. 정말 DMZ였고, 축제였어. 자연, 락, 요가의 조화에 K-히피를 살짝 느낀 것도 같고.

피스뿔 고석정
피스뿔 고석정

커피를 마시며 다니는 영화제와 달리 뮤직 페스티벌에서 필요한 건 술이더라. 페스티벌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나를 없애버리고 던져버리고 놀아야 하는데! 아, 쉽지 않더라고. 사회에 찌든 걸까 아님 체력이 떨어져서일까. 그래도 지금의 우리에겐 술이 있기에! 계속해서 술을 수혈하며 놀아보았어. 무대 아래서 흩어졌다가 달려들어 서로 몸을 부딪히는 슬램도 해보고, 간만에 방방 뛰어도 봤어. 다들 오늘을 즐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 노는 모습이 꽤나 종교적이기까지 했어.

퇴근하고 서울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DMZ PEACE TRAIN의 기억은 되게 꿈같아.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서 얼떨떨했던 기억들이 더 소중하게 떠오르기도 해. 올해 처음 맛봤으니, 내년 DMZ PEACE TRAIN에선 더욱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도록 수련하고 있어야지.

축제를 향해 장시간 이동하는 일주일을 보내며 축제라는 게 도대체 뭘까 생각했어. 내가 영화관으로 도망쳤던 것처럼 일상의 굴레를 잠깐이나마 깨고자, 사회에서 붙은 여러 명칭들로부터 살짝은 멀어지고자, 결국은 자유롭고자 오는 곳이 아닐까 싶어. 앗,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쓸모에서 벗어나 같이 춤을 추고 뛰어놀고 마주하는 행위가 세상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도 생각해.

DMZ DOCS와 DMZ PEACE TRAIN, 두 축제 모두 평화를 기치로 삼아. 사실 축제와 예술을 통해 평화, 투쟁,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고 실제로 뜬구름일 수 있겠지만, 결국 그것들을 보고 즐기고 느끼는 우리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존재이기에 예술과 축제가 의의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해. 잠깐이나마 여유를 가질 때 우리는 서로를, 평화를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도 난 종종 축제로 도망칠 것 같아. 허허.

너는 곧 부국제를 가겠구나. 후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다음 축제까지 잘 지내길 :)

FROM.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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