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다가올 날들을 기다리며, 아직 보내지 못한 여름 속에서
8월의 마지막 뉴스레터 보내드립니다💐
💬 8/31 예정이었던 뉴스레터를 내부 사정으로 인해 하루 늦게 발송합니다.
앞으로 더 발전하는 Pebbles가 되겠습니다.
Mon
민짱 / 남는 건 사진뿐이라
제토 / 진지한 게 아니라 재밌는 건데
Thu
주민 / 여러모로 확고한 - 음식 취향
온다 / 다합에왔다합
- 여러모로 애매한 - 음식 취향
여러분은 메뉴를 고르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인가요?
저도 그랬어요.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거든요. 최근 '한국인은 음식 수용력이 높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 역시 가리는 음식이 딱히 없고, 새로운 음식도 쉽게 도전하는 편입니다. 물론 호불호가 당연히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음식을 아예 질색팔색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입에 넣어보고 괜찮으면 오케이입니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가장 싫어하는 것 쯤은 있겠죠. 일단 저는 KTX 타고 지나가면서 생각해 봐도(?) 고기를 좋아합니다. 고기반찬을 없애면 식사에 대한 기대감이 반절은 줄어드는 것 같아요. 기대한 만큼의 맛이면 살기 위해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이 밥그릇은 비우겠다'는 약간의 의무감을 가진 채로 먹습니다. 기대 이상의 맛이면 ‘이래서 일단 음식은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먹어요. 물론, 이건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제 사랑을 바탕으로 갖게 된 생각이기도 하지만, 채소를 더 선호하고 편식 없는 식사를 위해 노력하셨던 부모님 덕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저에게 종종 지금보다 어렸을 때 반찬 투정을 더 안 했었다고 말하고는 하시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뭐든 잘 받아 먹어왔던 식사 습관이 지금 먹는 건 무엇이든 좋아하는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 야채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싫어하는 것은 익힌 가지입니다. 사실 익힌 파프리카를 동일한 수준으로 싫어했는데 잡채를 통해 극복하면서 어느 정도 이겨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 몸에서 안 받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익힌 가지를 선택한 이유는 특유의 물러터진 질감에 질색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먹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어요. 젓가락이 더 이상 가지를 향하지 않더라고요. 살짝 익혔을 때 덜 말랑한 것도, 푹 익혔을 때 부서질 정도로 말랑한 것도 다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런데 가지나 파프리카 모두 생으로 먹는 것은 좋아합니다. 생가지는 독이 있기도 하고 접하기 쉽지 않아서 먹어본 적이 손에 꼽기는 해요. 그리고 물론 생가지조차도 스펀지 같은 식감을 갖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생 파프리카는 오히려 불호보다는 호에 가까운 편입니다. 아삭아삭하고 달달해서 최근에는 거부감이 사라졌거든요. 특히 월남쌈에 넣어 먹으면 아삭한 식감이 먹는 즐거움을 더해주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그래도 세상 어디에선가 주변 어디에선가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도 맛있어할 가지 요리가 있다면 도전해 볼 의향이 있습니다. 싫어하는 음식을 극복할 때 먹는 즐거움이 배가 되고 만족감도 훨씬 높더라고요.
첫 문단에서 저도 메뉴 선택을 상당히 고민하는 편이었다고 했었죠?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조금 그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먹고 싶은 것’만 찾다가 뭘 먹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앞서 말했던 것과 비슷하지만 거기 있는 걸 다 먹고 싶었거든요. 제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게의 인기/베스트, 시그니처 메뉴들을 주문합니다. 전자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것이기에 실패할 일이 없고, 후자는 요리에 대한 사장님의 애정을 맛볼 좋은 기회가 되거든요. 먹는 영상보다 음식을 만드는 영상을 보는 편인 데다가 어머니가 요리를 오래 하셨기에 ‘어떤 재료를 써서 이런 맛을 냈을까?’ 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재료 하나로 음식 맛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는 건 정말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렇듯 특히 먹는 데 있어서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호불호를 제외하면 취향이랄 것이 아직은 명확히 있지 않습니다. 바라는 모든 걸 먹어본 뒤에도 음식 취향은 정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입맛은 늘 변하고, 레시피는 계속 새로 생기고, 제겐 맛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먹는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라요.
- 다합에 왔다합
다합에왔다합 마지막 편은 담백한 느낌으로 쓰고 싶어 ‘-다’ 종결어미를 사용했어요. 일기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내일 가는데 기분이 어때?”
“아직 실감이 안 나.”
그가 나에게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합에 온 지 한 달째. 떠나기가 아쉬워 비행기 표까지 미루었건만 이제는 정말 가야 했다. 그럴 때라는 느낌이 들었다.
떠날 준비를 했다. 이미 항공편을 미루며 꼭 하고 갈 것들을 적어 놓았기에 어렵지 않았다. 세계 3대 난파선 포인트라는 ‘시슬곰’에 다녀왔다. 일반 다이빙에 비해 비쌌던 터라 비용 문제로 고민했었지만,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까. 그때도 내가 바닷속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더더욱 모르니까. 태생적으로도 종합병원 같은 몸을 가지고 있긴 했으나, 발을 다친 이후로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이틀을 합해 여덟 시간도 채 자지 못한 몸을 이끌고 새벽 4시부터 보트를 타기 위해 출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픈 발에서 그치지 않고, 빡빡한 수트를 입느라 손가락이 다 까져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지만 그대로 입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다행히도 시슬곰은 그 명성에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2차 대전 때 난파된 배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함께 침몰한 오토바이, 기관차, 대포까지. 좁은 다합 앞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상어와 대형 어종들을 보면서는 공기 방울을 내뿜으며 감탄했다. 분명 역대 최악의 컨디션이었음에도 후회하지 않은 다이빙이 되었다.
스쿠버 다이빙의 유종의 미는 결국 떠나기 하루 전, 블루홀에서 거두었다. 분명 수업으로 블루홀에 입수했을 때는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일부러 낮은 수심에서 헤엄칠 정도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조류를 따라 춤추는 나뭇잎과 방울방울 올라가는 공기 방울을 보면서 때때로 나도 함께 빙글빙글 돌며 유영하곤 했다.
떠나는 당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을 뜨고 조금 뒹굴거리다 아일랜드로 프리 다이빙을 다녀왔다. 이질감 하나 없이 평소와 같았다. 이날의 다이빙은 분명 즐거웠으나 히드라 혹은 해파리로 추정되는 것에 쏘여 따끔따끔했던 감각만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오후에는 ‘꼭 하고 갈 것’에 포함되어있던 ‘인 요가(Yin yoga)' 클래스를 위해 다이빙이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호텔로 향했다. 벼르고 벼르다 마지막 날에서야 가게 된 요가는 바다가 보이는 건물에서 해 질 녘 붉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진행되어 무척 평화로웠다. 마음과 머리가 공허하지 않게 텅 빈 느낌이었다. 원체 생각이 많아 멍을 때릴 때도, 명상할 때도 머리가 맑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잠들기 직전의 찰나와 같이 고요한 머릿속이 처음이었다. 저녁에는 남아 있을 모두에게 인사를 하며 생각했다. ‘아, 이걸로 충분하다. 충만한 시간이었다.’ 라고.
열 두시, 항상 보내던 입장이던 내가 이제는 다른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짐을 싣고 한 명 한 명과 진심 어린 포옹을 하면서도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장 후련하게 웃었던 것 같다. 다합에서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혹 다합에 오게 되더라도 똑같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는 없어 아쉽겠지만. 소중해진 사람들을 거의 다 보낸 후 떠나서, 그래서 울지 않은 것도 같다. 다만 정현이가 써준 편지는 리스본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읽어보았다.
미니벤이 출발하고 나서야 조금 실감이 나서 마음 속으로 인사를 하다, 다합행 비행기 표를 끊은 직후 썼던 글에 대해 생각했다.
라고 글을 썼었는데. 사랑하게
된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일들도 많았다. 이렇게까지 타게 될 줄 몰랐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피부가 어두웠던 적이 있었나? "널 한 번도 까맣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며칠 전부터 좀 까매진 것 같아."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영에 자신이 있었기에 AIDA2를 따는 데 실패할 줄도 몰랐다. 한달 동안 너무 잘 먹어서 5kg가 찔 줄도.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알았던 것 같다.
"반복되던 생활에서 벗어나면 몸으로 느껴질 거야." 라던 그의 말처럼, 다합을 떠나면 바뀌게 되는 것들이 분명 많겠지. 더 이상 내 등의 수영복 자국은 진해지지 않을 것이고, 다 함께 보던 드라마도 혼자서는 보지 않을 것이고. 온기를 나눠주던 그 작은 몸도 이제는 쓰다듬어 줄 수 없고. 평범해서 소중한 줄도 몰랐던 일상들이 그리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남겨진 것들이 있다. 팔에 남은 헤나의 흔적처럼. 스쿠버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그들과 나눈 시간이 편린으로 남아있을 것처럼. 한국을 떠난 후 한국에 있는 이들만을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다합에서 보낸 여름이 내 인생의 행로를
미묘하게 바꾸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되돌아보면 잊을 수 없는 여름으로 올해를 기억하겠지. 이 챕터는 마무리되었지만 힘들 때면 기억 저 편에서 가끔 꺼내 볼, 좋아하는 문장들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걸 안다.
바다와 맞닿은 어느 카페에서 다합의 조약돌들을 보고 Pebbles를 생각하며 그렸던 그림을 마지막으로 <다합에왔다합>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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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짱🌈 : 이 세상의 귀여운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제토🧚 : 주로 갓생을 추구합니다. 밖으로 쏘다니는 외향 인간.
주민💎 :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고양이가 우주 최고입니다.
온다🫧 : 직업은 트래블러, 취미는 여유와 낭만 사이에서 유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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