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노트는 지식 생산자가 아니라 지식 전달자입니다. 저는 어디서 재밌는 이야기를 보고 들어 뒀다가 나중에 보다 상세히 조사한 뒤 메일을 씁니다. 제가 직접 연구해 낸 이야기는 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가 10년 전 쯤 자다가 꿈에서 깨달은, 제 꿈이 생산한 지식을 전할 것이라서 평소보다 조금 더 뿌듯한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구독자 님도 공감하실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술 게임을 많이 했습니다. 간단한 게임을 해서 진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통일 신라 시기에 만든 술 게임용 주사위가 출토된 바 있으니 술 게임은 최소 1,2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셈입니다.
제가 즐겼던 술 게임 중에는 '더 게임 오브 데스'라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 게임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1 버전의 규칙은 이렇습니다. 구령에 맞춰 동시에 한 사람 당 한 명씩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주최자가 숫자를 외치면 주최자부터 손가락을 따라서 한 명씩 세어 나갑니다. 그리고 주최자가 외친 숫자만큼 따라갔을 때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십니다. 예를 들어 주최자 A가 5를 외쳤고 A는 B를, B는 C를, 하는 식으로 가리키고 있다면 A->B->C->D->E->F 순으로 F가 술을 마시게 됩니다.
1 버전의 경우 필승법이 나무위키에도 이미 실려 있을 만큼 유명합니다. 1 버전은 주최자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게임에 참여하는 인원보다 큰 소수를 부르면 됩니다. 주최자가 패배하기 위해서는 주최자로부터 시작한 가리킴이 다시 주최자에게 돌아오는 고리가 형성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A->B->C->A로 돌아오는 고리는 길이가 3인 고리입니다. 이 고리의 길이가 주최자가 부른 수의 약수이면 주최자가 술을 먹게 됩니다. 하지만 필승법에서 주최자가 부른 수가 소수이므로 약수는 1과 그 소수 뿐입니다. 주최자가 본인을 지목한 게 아니라면 고리의 길이는 1일 수 없습니다. 주최자가 부른 수가 전체 인원보다 크다고 했으므로 고리의 길이가 주최자가 부른 수일 수도 없습니다.
2 버전의 규칙은 이렇습니다. 구령에 맞춰 동시에 한 사람 당 두 명씩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주최자부터 한 손가락을 내리며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던 사람에게 차례를 넘깁니다. 두 손가락이 모두 내려가 있어 더 이상 차례를 넘길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차례가 돌아오면 그 사람이 지게 됩니다.
제가 꿈에서 파훼법을 찾아냈던 게임은 바로 이 2 버전입니다. 1 버전은 필승법이 게임을 정한 주최자에게 있어서 비겁하지만, 2 버전의 필승법은 주최자를 제외한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비난도 받지 않습니다.
필승법은 두 손가락 모두 주최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게임의 시작을 주최자부터 하기 때문에, 주최자는 더 게임 오브 데스 2를 시작하자마자 손가락 하나를 내리게 됩니다. 차례가 돌아 제가 지목을 받게 되었을 때 저는 주최자를 지목 중이기 때문에 주최자는 두 번째 손가락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에 또 어떤 식으로 다시 제가 지목을 받아 제가 두번째 손가락을 내릴 때가 되어도, 저는 이미 두 손가락을 다 내린 주최자를 지목할 수 있습니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주최자보다 먼저 질 수 없게 됩니다. 오직 한 명의 패배자만 정하는 술 게임의 방식 상, 주최자를 제외한 모두에게 필승법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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