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은 카드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어려서는 인터넷이 안 될 때 윈도우에 기본적으로 설치돼 있던 프리셀, 스파이더 카드놀이, 하트 등의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중학생 때에는 유희왕에 빠지기도 했고 후에 하스스톤이 발매 됐을 때에는 5년 정도 꾸준히 플레이했었습니다. 포커에도 한동안 재미를 느껴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도 했었습니다. 어제는 애인과 '도미니언'이라는 카드를 활용한 보드게임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겼습니다.
어제 도미니언을 하면서 카드를 섞어야 할 일이 참 많았는데요, 이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대충 섞으면 카드가 이전과 비슷한 순서로 나오는 게 느껴지고, 꼼꼼하게 섞다 보면 카드가 상하기도 합니다. 카드를 자동으로 섞어주는 기계를 하나 살까 고민도 들었습니다.
카드를 충분히 섞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섞어줘야 하는 걸까요? 세상은 넓고 이런 걸 연구해 오신 분도 있습니다. 그리스계 미국인 Persi Diaconis라는 분인데요, 이 분은 수학자이자 전직 마술사로서 카드 섞는 법에 대한 재미난 연구를 해오셨습니다.
이 분에 따르면 카드를 반으로 나눈 뒤 드르륵 섞어내는 리플 셔플의 경우 7번, 흔히 화투 패를 섞을 때 쓰는 방법인 힌두 셔플을 사용할 경우에는 만 번 정도는 섞어야 카드가 랜덤하게 섞인다고 합니다. 카드를 바닥에 놓고 손바닥으로 마구 섞어 버리는 방법이라면 적어도 30초 이상은 섞어야 랜덤할 수 있다고 하네요. 만 번을 섞어야 한다니 힌두 셔플은 거의 의미가 없는 방법이었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실제로 타짜 덕후 김슬기 님의 설명을 보면 열심히 카드를 섞은 것 같은데도 꽤 큰 카드뭉치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카드 게임을 하실 땐 리플 셔플을 7번 하시거나 30초 이상의 스무싱을 하시길 권합니다.
이 분이 쓰신 논문 두 편을 대충 훑어 읽어 보았는데요,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리플 셔플을 3번만 했을 경우 얼핏 보면 충분히 잘 섞인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가 않아서 이걸 이용한 마술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마술의 방법은 논문에 소개 돼 있습니다.). 맨 위의 카드를 뽑아다 랜덤한 위치에 다시 꽂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되어 있는데, 이 방법의 경우 총 카드가 n장일 때 n* log n 회 반복하면 카드가 랜덤하게 섞인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트럼프 카드가 52장이니, 89회 정도 하면 카드를 완벽하게 섞을 수 있겠습니다. 저도 시간이 날 때 좀 더 꼼꼼히 논문을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일에 진지한 연구를 해오신 분들을 보면 가슴이 끓습니다. 그 넘치는 호기심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또 누군가 이런 연구를 대신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위만 아니라면, 누가 뭐라건 어떻습니까? 구독자 님도 구독자 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소한 일들을 즐기며 사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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