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않고 공중제비를 도는 비둘기들

롤러/텀블러 비둘기들, 또 인간의 잘못일까요?

2025.12.13 | 조회 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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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인간은 다른 종에게서 원하는 유전자만 선택 교배하여 그 종을 인간의 입맛대로 바꿔놓곤 했습니다. 무시무시한 늑대가 말티즈가 된 건 물론이고, 웬 강아지풀만한 것을 옥수수로 만들어 놓거나 25mm 짜리 열매를 복숭아로 만들어 놓기도 했죠.

이런 조작은 간혹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스코티시 폴드'라는 고양이 품종은 접혀 있는 귀가 귀여워 사랑받지만, 이는 사실 연골 발달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귀 연골 발달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만 선택되다 보니, 스코티시 폴드들은 골연골 이형성증을 유전병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불도그의 경우에도 한 세기에 걸친 근친교배로 인해 웬만하면 자연분만으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짧은 코로 인해 숨도 잘 못 쉽니다.

그리고 여기 겉보기에도 영 불편한 마음이 드는 품종이 있습니다. 구른다는 뜻을 갖고 있는 '롤러(Roller)' 비둘기, 또는 텀블링을 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텀블러(Tumbler)' 비둘기입니다. 예전에 비행기가 회전할 때에는 세 가지 축이 있어서 롤링, 피칭, 요잉이라고 한다고 소개드린 적이 있는데요, 혹시 이 중에 롤링을 하는 비둘기를 롤러라 하고 피칭을 하는 비둘기를 텀블러라고 하는 건가 싶어 찾아봤는데 그렇게 칼같이 나눠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도 둘을 묶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롤러/텀블러 비둘기들은 비행 중에 공중제비를 돕니다. 이 광경이 신기하다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애호가들이 이 비둘기들을 기릅니다. '버밍엄 롤러' 종의 경우 세계적으로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누구의 비둘기가 더 잘 구르나 겨루는 월드컵 대회까지 열립니다.

공중제비를 돌며 날아가는 버밍엄 롤러

앞서 말한 버밍엄 롤러처럼 롤러/텀블러 비둘기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명칭이 갈라집니다. 이 중에는 '거실 롤러'라는 뜻의 '팔러 롤러(Parlor Roller)'도 있는데, 이 비둘기들은 정말 거실에서 키워도 될 만큼 아예 날지를 못합니다. 팔러 롤러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 하면 머리가 뒤로, 꼬리가 위로 젖혀집니다. 정상적인 비둘기와 정확히 반대입니다. 그래서 날려고 할 때마다 땅바닥에서 뒤로 굴러갑니다. 평생 그렇게 구르며 살아야 합니다. 누가 더 멀리 구르는지 애호가들의 대회도 열리고 현재 기록은 662피트, 약 200미터입니다.

아예 날지도 못하고 굴러가는 팔러 롤러

일부 애호가들은 롤러/텀블러가 이렇게 구르는 모습을 행복해 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를 운동장애로 봅니다. 본능적인 행동인 비행을 못하게 만드는 것은 스트레스와 공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중추신경계와 관련된 신경학적 이상 행동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중추신경계를 들먹일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라는 것의 정의는 생물학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무엇이 그 종의 기능인지를 정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둘기에게 있어 하늘을 나는 게 기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유희를 위해서 무서워도 도망칠 수도 없게 만든 게 학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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