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명엔 자연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낸 기술이 많습니다. 인류가 풀어야 했던 많은 공학적 과제들에 대해 이미 자연은 이미 멋진 답을 갖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비행'에 관해선 자연을 모방하는 게 썩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연 때문에 갖게 되는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편이 나았습니다. 새나 곤충의 날개짓을 모방하려 하지 않고 진작에 열기구를 띄우려 했다면 비행의 역사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길었을지 모릅니다.
과학이 충분히 발달한 뒤, 우리 문명은 날개를 퍼덕이는 게 비효율적인 방법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날개는 대개 퍼덕이지 않고 점잖게 펼쳐져 있습니다. 설령 날개를 움직이더라도 굳이 관성에 맞서가며 왕복 운동을 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헬리콥터처럼 날개를 한쪽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동물의 날개는 이런 식으로 진화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은 자연이라면 결코 만들지 않았을, 본능이 거부하는 디자인의 비행기를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경사익기(Oblique wing plane)라고 불리는 비행기의 디자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한쪽 날개는 앞으로 향해 있고 한쪽 날개는 뒤로 향해 있는 이 특이한 모습의 비행기는어쩌다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을까요?
1947년, 인간의 비행 기술은 드디어 초음속의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초음속 비행에는 날개 디자인에 대한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비행기의 속도가 음속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옆으로 길게 뻗은 날개가 보다 많은 양력을 받을 수 있어 유리합니다. 하지만 옆으로 길게 뻗은 날개로 음속을 넘으려 하면 충격파로 인해 많은 저항을 받습니다. 음속을 넘는 속도로 비행할 때에는 날개가 진행방향에 비스듬한 것이 유리합니다.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가변익(Variable-sweep wing)'이 고안되기도 했습니다. 비행기에게 어깨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피벗을 두어, 처음엔 날개를 옆으로 펼치고 있다가 초음속 비행을 할 때에는 날개를 뒤로 젖히는 방식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 딜레마는 해결했을지언정, 몇 가지 새로운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날개를 뒤로 뻗을 때 양력 중심도 뒤로 이동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떨어졌고, 비행기가 무거워지고 구조가 복잡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어깨는 하나면 충분하다'라는 기똥찬 발상을 통해 경사익기가 개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날개를 양 옆으로 펼치고 있다가 속도가 빨라지면 한 개의 축을 중심으로 날개를 회전시켜 오른쪽 날개는 앞을 향하고 왼쪽 날개는 뒤를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비대칭 구조로도 비행기가 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피벗이 하나 줄어 무게와 안정성에서 유리했습니다. 왼쪽 날개가 뒤로 가는 만큼 오른쪽 날개가 앞으로 가기 때문에 양력 중심의 이동 문제 또한 덜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가변익도 경사익도 잘 쓰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딜레마를 낳게 했던 고정익의 단점들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금은 많이 해결됐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디자인의 비행기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것도 나름대로 낭만적입니다.
같이 볼 링크
페퍼노트 '이걸 왜 진작 못 했지?'
나무위키, '오니솝터'
나무위키, '가변익'
나무위키, '경사익기'
영문 위키피디아, 'Variable-sweep wing'
영문 위키피디아, 'Oblique wing'
영문 위키피다아, 'NASA AD-1'
유튜브 Mustard 채널, 'Could This Change Air Travel Forever?'
유튜브 Real Engineering 채널, 'Nasa's Weirdest Experimental Plane'
비행사의 다이어리, '양항비, 양력(LIFT)과 항력(DRAG)의 비(RATIO), 언제 최대가 될까? (수정)'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차노
참신한 글에 감사를 보냅니다.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