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은 울릉도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없습니다. 주변에서 울릉도에 다녀온 분들 후기를 들어보면 다녀온 국내 여행지 중 손에 꼽게 좋았다는 분들이 많아 궁금하기도 합니다. 울릉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울릉도 호박엿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울릉도는 원래 딱히 호박이나 호박엿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던 점 알고 계셨나요? 이게 웬 홍철 없는 홍철팀 같은 얘기일까요?
울릉도에는 호박이 아니라 후박나무가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울릉군의 군목은 후박나무입니다. 후박나무라는 이름이 낯설 수 있는데, 약재, 식재, 목재, 염색재 등 쓰임새가 많은 나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흔한 성인 朴 자가 바로 후박나무를 가리키는 한자입니다. 울릉도민들은 이 후박나무의 껍질, 진액, 열매 등을 활용해 엿도 만들어 먹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후박엿이 외부에 알려질 때 그 이름이 낯설다 보니 호박엿으로 잘못 퍼지고 맙니다. 그러던 중에 후박나무가 귀해지기도 해서, 울릉도도 이렇게 된 김에 후박엿 대신 진짜로 호박으로 호박엿을 만들어 밀기 시작해 지금의 울릉도 호박엿이 되었습니다. 울릉도가 딱히 호박으로 유명했던 것도 아닌데 단지 후박과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울릉도 호박엿의 전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청양고추는 음식 이름이 아니라 반대로 지역 이름이 혼란을 일으킨 경우입니다. 누가 들어도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나는 고추 같아 보이는 청양고추는 사실 청양군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선 청양고추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청양고추는 종묘 업체인 중앙종묘 사의 유일웅 박사가 1983년 개발한 고추 품종입니다. 유일웅은 1970년대 말, 일본의 한 카레 제조회사로부터 고추 신품종 개발을 의뢰 받습니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을 카레 원료로 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일웅은 태국 고추와 제주도 고추를 잡종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냈지만 본래 목적인 카레 원료로 쓰기에 캡사이신을 충분히 추출하지 못해 상품화에는 실패했습니다.
유일웅은 평소 친분이 있던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양군의 농민들에게 새로운 품종을 나누어 줍니다. 이 두 지역 농민들이 새로운 고추 품종의 잠재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재배하면서 두 지역명에서 한 글자씩 따와 청양고추가 되었습니다. 청영고추가 아니라 청양고추가 된 데에는, 단순히 발음이 더 좋았을 뿐이라고 유일웅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청양군은 물들어 올 때 노 저을 줄 아는 지자체였습니다. 청양군은 '식탁 위의 화려한 혁명 고추'라는 책자를 발간해 청양고추의 원산지가 청양임을 주장하고 청양고추축제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청송군과 영양군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올해에도 9월에 청양에서 '청양고추구기자문화축제'가 열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본명에는 처음 들었을 때 다소 헷갈릴 수 있는 음절이 들어 있습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저는 이름을 말할 때 특별히 그 음절을 강조해서 발음하는데 그래도 한 번에 제대로 들어주는 경우가 드뭅니다. 때로는 애초에 제 이름을 음성이 아닌 문자로만 접했음에도 잘못 입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면 솔직히 화가 납니다. 울릉도는 그래도 후박이 호박이 되는 흐름 속에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냈지만 청송군과 영양군은 눈 뜨고 청양고추 베이는 상황이었을 텐데요, 얼마나 억울했을지 조금은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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