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연극배우일 뿐임을 기억하라.
작가가 당신에게 배역을 맡겼다.
다른 역할이 아니라 왜 이 역할을 맡겼을까? 절대로 알 수 없다.
당신이 맡은 역할은 짧을 수도 있고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
작가는 당신에게 거지나 장애인, 하급 사무원, 노예, 또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맡겼을 수도 있다.
당신에게는 맡은 역할을 멋지게 해낼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맡을지 여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에픽테토스
여러분은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한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알 수 없는 작가에 의해 우리가 배역을 맡게 되었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누구나 타고났다는 운명론적 입장을 보여줍니다.
다만 주어진 역할은 짧게 이어질 수도, 혹은 길게 이어질 수도 있으니 이는 순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말하는데요.
인간의 삶을 연극배우의 삶으로 보는 에픽테토스의 시각은 셰익스피어가 남긴 다음의 명대사에도 함축되어 있으니, 시작부터 강렬한 울림을 주는 [맥베스] 속 대사를 함께 음미해 보시죠.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고
잠시 동안 무대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
더 이상 소식 없는 불쌍한 배우이며
소음, 광기 가득한데 의미는 전혀 없는 백치의 이야기다.-셰익스피어, [맥베스]
마녀의 예언만을 믿고 살인을 감행해 결국 원하던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제대로 권력을 누릴 새도 없이 파국을 맞게 된 맥베스의 서글픈 독백.
왕의 신임을 받는 뛰어난 장군으로 명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스스로의 배역을 '왕'으로 바꾸길 욕망하게 됨으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죠.
너무도 짧은, 촛불과도 같은 왕의 역할을 서툴게나마 소화해야 했던 그에겐
삶의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자체가 그저 우습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맥베스의 이 독백을 들으며, 우리도 각자 배우로서 살아가는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정말 맥베스의 말처럼 배우로서 우리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이 삶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요?
여기, 앞서 든 두 사례와는 딴판으로, 오히려 아무런 역할을 맡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 얼핏 홀가분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올라오는데요.
비록 역할을 잘 수행해낸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해냈을 때라야만 비로소 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일단,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죠.
어떤 상황에서든 역할과 동일화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들 각자가 이곳에서 배워야 할 삶의 예술이고 가장 중요한 배움이다.
만약 어떤 행동이 자신의 역할 정체성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고 따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만 행동 자체를 위한 것이라면, 그때 무엇을 행하든 간에 당신은 매우 강력해진다.
모든 역할은 허구의 자아의식이며,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이 개인적이 된다.-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여러분은 '역할'을 의식하지 않고, 다만 행동 자체에 집중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에크하르트 톨레는 역할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할 일'을 할 때 '나'가 가장 강력해지며, 그게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예술이자 가장 중요한 배움이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역할이란 건 그저 '허구의 자아의식'에 불과하다고 하니,
역할을 중요시하는 세상의 상식으로 보면 충격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의 말대로라면 역할을 얼마나 잘 하고 못 하고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할을 신경쓰지 않고, '~답게 해야겠다'는 의식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게 강력한 '나'가 되는 방법이니까요.
왜 역할을 떠나있으면 '강력한 나'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역할에 쏟았던 에너지가 '나'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역할에 중요성을 부여하면 부여할수록, 얼마나 그 역할을 잘해내느냐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한 가치 평가가 달라지고, 감정적으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역할을 잘 해낼 때는 스스로가 뿌듯하고, 주변에서도 인정을 받고, 보상을 통해 능률감을 경험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마치 패배자가 된 것 같고, 주변의 시선에 움츠러들고,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죠.
'역할'이 '나'를 대신해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역할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삶이라면
그걸 과연 '강력한 나'로서의 삶, 주체적인 삶이라 봐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학생으로서, 직업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여자친구로서, 아들로서
삶의 환경이나 사회적 관계에 따라 무수히 역할을 바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여러분은 역할 뒤에 있는 '나'를 의식한 적이 얼마나 있으신가요?
역할이 바뀌어도, 그것을 선택하는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머물고 있으니
그 불변의 속성을 지닌 '나'가 가진 힘이 곧 '주체성'입니다.
또는 '창조성'이라 해도 되겠고요.
그게 진정 여러분 존재의 본모습이며, 참된 '나'는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생의 주관자이기에
아무런 평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충분'한,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근원이니까요.
역할과 역할이 대체되는 삶,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삶,
탄생과 죽음이 교차되는 삶,
'존재'는 한결같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판단을 멈추고, 의미를 내려놓고, 감각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세요.
여러분은 결코 역할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역할을 의식하는 게 아닌 '나'의 창조력을 의식하며
계속해서 펼쳐질 한 폭의 삶을 '나'가 지닌 예술적인 손 끝으로 완성해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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