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볼 때마다 거기에 있는 것 말고 뭔가 다른 것을 보는 사람은 그 사물을 볼 수도, 사랑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 그는 사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나머지 세계와의 연속성을 생각한다. 어떻게 한 대상을, 대상의 바깥에 있는 어떤 원리 때문에 사랑할 수 있겠는가?
-페르난두 페소아, [페소아와 페소아들]
페소아가 말하는 사랑,
'거기에 있는 것 말고 뭔가 다른 것을 본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 걸까요?
그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삶의 드라마를 만드는 데 있어 빠져선 안 될 경험으로 인식됩니다.
사랑이 주제가 된 드라마에 한 번이라도 출연해야 소위 말하는 '사연'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분노하고, 낙담하고, 용기를 얻고 ...
누군가는 그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지만,
또 누군가는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좋아하는 마음이 싹트면 더는 커지지 않도록 안으로 꾹꾹 눌러 담곤 하지요.
그런데, 이처럼 우리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만이 꼭 사랑이라 볼 수는 있는 걸까요?
더 단순히 묻자면, 감정이 곧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떠한 감정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에 관한 판단이 개입되어야만 합니다.
내가 좋게 생각하는데 나쁜 감정이 생겨날 리 없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긍정적인 감정이 생겨날 리가 없겠지요.
그리고 판단이란 그 자체로 나의 주관을 바탕에 둔 것이기에, 대상의 모습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간 살아온 경험의 축적으로 이러저러한 이유를 조합해 내리는 규정은 어디까지나 대상의 바깥, 나의 사고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한 이유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사랑에는 이유가 필요한 것일까요?
그러니 페소아도 '어떻게 한 대상을, 대상의 바깥에 있는 어떤 원리 때문에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겠지요.
진정 사랑에 이유가 없다면, 살펴본 바와 같이 판단이 없어야 하며 감정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유 없는 사랑에 쉽게 공감을 하면서도, 감정이 빠진 사랑에는 다소 낯선 기분을 느끼지요.
나를 자극하지 않는 사랑도 사랑일 수 있음을 자꾸만 잊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들자 머리 위에 떠 있는 환히 빛나는 달, 골목을 꺾자 건물 사이로 빼곡 얼굴을 드러낸 붉은 태양, 어디선가 풍겨오는 싱그러운 풀 내음, 인파 속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소중한 사람 …
오직 지금 이 순간에 포커스를 둔 상태,
시선을 내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에게만 향하여 마음이 멎어있는 듯한 상태를 경험해 봤음에도 말이지요.
만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순간들을, 만나는 사람들을 그저 경험하려고만 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까요?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란 게 오게 될까요?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보지 않으니 '지금'만을, 그 대상만을 보고, 사랑하고, 느끼게 되겠지요.
여러분, 여러분은 요즘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유독 나를 사로잡는 감정이 있으신가요?
그 감정이 떠오를 때,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나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건 바깥의 시선이 아니듯,
우리가 바깥에서 바라보려고만 한다면 그 대상을 볼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겠지요.
어떠한 모습이든 간에, 사랑받지 않아야 마땅한 대상이란, 상황이란 없습니다.
감정이 일면, 판단을 멈춰 보세요.
멈추고서 생생한 실존만을 느껴 보세요.
그것은 요란하든, 정적이든, 차갑든, 뜨겁든, 뾰족하든, 부드럽든
그렇게 살아 에너지를 내뿜고 있을 뿐입니다.
나 역시 어떠한 모습이든 살아 마땅한 존재일 뿐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사랑한다는 겁니다.
사랑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지요.
살아있음에 이유를 덧붙이려 하는 순간, 살아있음은 그만큼 희미해집니다.
저와 더불어 여러분은, 세상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음은 곧, '사랑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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