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바람이 불어오면 오후의 대기 속으로 소리 없이 날리고,
고요한 저녁 빛 속 어느 우연한 장소로 내려앉는다.
더욱 위대한 사물들 사이에서 자신을 망각한다.
이 모두를 확실하게 인식하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햇살을 주는 태양에게 감사하고, 아득함을 가르쳐 주는 별들에게 감사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굶주린 자의 음악, 눈먼 자의 노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방랑자의 기억, 사막을 가는 낙타의 발자국, 그 어떤 짐도 목적지도 없이.-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글이 아닌 침묵으로 쓰인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을 읽을 때면 저는 꼭 사라져있는 듯 느껴집니다.
남은 것은 저녁 빛, 태양, 별, 음악, 노래, 기억, 발자국...
내가 아닌 것들뿐.
세상의 풍경이 곧 내가 되는 느낌입니다.
일부만이 아닌 세상의 풍경 전체 속으로 녹아드는 것만 같죠.
그런데 이처럼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요구될 게 없는,
절대적 실재로서의 풍경이 되듯
어떤 소유도 없이, 원하는 것도 없이 살아간다는 게 현실의 우리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즐거움도 슬픔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요?
자신을 '다양한 배우들이 다양한 작품을 공연하는 텅 빈 무대'라고 하며
각기 다른 인격을 분화시켜 작품으로 구현했던 페소아는
그게 가능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자신의 선택대로 자아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여러 자아를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어느 하나에 정착하려 들지 않았던 거겠죠.
자칫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병적인 자아 분열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페소아는 무기력하게 자아의 통제력을 잃었던 게 아닌 오히려 창조자로서의 주체 의식을 지닌 채 복수의 자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텅 빈 무대─바탕─로 두되, 어떤 배우를 출연시킬지를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는 그가 제창한 감각주의 이론을 살펴보더라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감각주의 이론이란
하나의 감각을 느끼면 그 감각으로부터 벗어나 느끼고 있는 나에게 초점을 옮기고,
다시 감각을 느끼는 나로부터 벗어나 그 모든 과정 전반을 의식하는 것으로
감각이 일어나는 전 과정을 관망함으로 자각력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하는데요.
이러한 방식을 터득한 그인 만큼, 페소아는 감각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하듯 자신이 만든 캐릭터로부터도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유하는 것, 원하는 것, 느끼는 것,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이 있더라도
그건 지금 내가 임시로 택한 정체성에만 해당되는 것임을 안다면
그 이상의 의미는 없겠지요.
정체성을 바꿔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그토록 많은 이들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하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쉽지 않은데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니, 아리송한 기분이 드실 수도 있을 텐데요.
이는 정체성이 곧 '나'라는 믿음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페소아는 정체성을 초월하여 관찰하는 존재, 모든 개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독립된 존재가 있음을 알았던 거고요.
정체성이 흔들릴 때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정체성의 부재 때문이 아닌 참된 나는 정체성의 경계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음에도 규정하려고 하니,
진실이 아닌 것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하니 괴로울 수밖에요.
<참존재>는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어나는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이다.
<참존재> 속에서 모든 시간관념은 사라지며,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평화의 핵심적인 측면이다.-데이비드 호킨스, [나의 눈]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건,
진정으로 자율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정체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모든 정의가 그렇듯, 하나의 정체성을 정하게 되면 나머지의 것들을 배제하는 일이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정체성의 너머에 시선을 둔 참존재 속에서는 명명할 필요가 없이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도, 장소도 사라진 그 자체로 열려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죠.
'굶주린 자의 음악, 눈먼 자의 노래, 낯선 방랑자의 기억, 사막을 가는 낙타의 발자국, 그 어떤 짐도 목적지도 없이'
말입니다.
아직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체성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모르더라도 괜찮습니다.
참존재의 인도에 맡기며 나아갈 때
내가 해야 할 역할,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빚어지고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며
외부의 소음이 어떠하든
나를 한순간도 떠나지 않은 그 존재로 인해
소리 없는 자유와 평화가 늘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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