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의 본성과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 적시할 수 없음에도 이 어려움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내려 하면서 다른 사람의 관점을 자기 것인 양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원인을 모르면서도 결과는 자신의 책임이라며 괴로워한다. 이런 꾸며댐이야말로 허위의식이다.-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아픈가]
우리는 끝없이 답을 찾는 존재입니다.
답을 내리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알게 될 답이라 할지라도, 그 알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마냥 달갑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문제의 크기가 급하고 무겁게 다가올수록, 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해져만 갑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알 듯 말 듯 모호할 때, 내가 찾은 답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답인지 알고 싶을 때, 익숙치 않은 일에 차질이 생겼을 때와 같이
우리는 자신의 관점에서 해답을 찾기가 힘든 경우 괴롭고 답답한 감정을 느끼고,
그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누군가의 조언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그 모든 상황들은 타인이 아닌 오직 내가 직접 경험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한 원인 역시 나에게 있겠죠.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을 통해 그 일이 생겨난 원인과 방법을 찾고자 하며, 타인이 그럴 듯한 답을 제시해줬을 경우 이를 나의 답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타인은 그저 외부의 일이 나타난 결과만을 보고 판단을 내릴 뿐인데 말이죠.
물론, 우리는 답을 빨리 찾아준(내 관점과 최대한 비슷하게 제시해준) 누군가(또는 검사 결과)가 있다면 고마움을 느끼고,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후 또다시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면 어떨까요?
당시에는 타인을 통해 답을 얻었다 해도 나의 답은 아니었기에, 훗날 누군가에게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나에게 조언을 준 상대가 내가 알고자 하는 그 분야에 상당한 권위가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한편으로 여러분 중에는, 답을 찾고자 여러 사람을 만나봤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답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 회의감을 느낀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답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꼭 잘못됐다고 봐야 할까요?
오히려 누구에게도 답을 찾을 수 없어 겪어야 했던 방황이, 더 빠르게 '원인'으로 안내하는, 나 스스로를 돕기 위한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당신 자신을 자기 이외의 곳에서 찾지 마라.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그대로 진실이 된다고 믿는 것, 이것이 천재의 행동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 신뢰]
결과가 나타난 곳에 원인이 있습니다.
내가 겪는 모든 일들의 원인은, 나에게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가 항상 명쾌한 조언을 내놓는다고 해서, 같은 문제에 더 빠르게 대응한다고 해서, 별 문제 없이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나와 비교를 하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유능해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나의 답'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며
내가 가장 책임져야 할 것은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로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 모든 흔들림도, 안정감도, 원인도, 결과도
나 한 사람만이 일으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를 랄프 왈도 에머슨은 천재의 행동이라고까지 말했는데요.
정말 천재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일단 그렇게 살아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자신을, 나 이외의 곳에서 찾으려 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한결같이 나의 관점을 주시하며, 그 관점대로 실현될 거란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요?
삶에 대한 문제와 해답을 스스로 찾고, 내가 나를 이끄는 삶.
이게 바로 천재의 삶이 아닐까요?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놓지 마세요.
무엇이 답인지는 오직 여러분만이 아실 수 있으며
이는 여러분 모두가 지닌 천재성, 또는 본성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 있어 가장 비범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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