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지배하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두려움과 사랑.
두려움은 온갖 부정적 감정의 뿌리이며,
사랑은 온갖 긍정적 감정의 뿌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두려움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걸까요?
욕망 때문입니다.
욕망은 집착으로 인해 생기게 되며, 집착은 두려움에서 기인하지요.
우리는 잃는 것, 소멸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이 몸, 이 신념, 이 집, 이 돈, 이 사람, 이 직장, (여기에 '이후'를 대입해도 무방합니다.)
뭐가 됐든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움을 품는 것이죠.
그렇다면 대체 왜 우리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그토록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걸까요.
두려움은 나(또 다른 '나'들)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앎의 근원인 우리가 알지 못할 것은 없기에
날을 잡고 파헤쳐 보았습니다.
두려움의 실체를 알아야 집착을 떨치고, 욕망을 떨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만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자유라는 게 얼마나 좋은지
비로소 알게 될 테니 말이지요.
아,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지 않나요?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행복이고 평화겠지요.
물론 맛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기에
더더욱 이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떠올려봤습니다.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했습니다.
생각은 결코 '나'가 아니니까요.
제가 가진 두려움의 큰 갈래는
첫째로 사람이 떠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어차피 인연은 오고 간다.
노력해서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내 맘대로 통제를 하겠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나부터가 자유롭고자 하는데 떠나겠다는 상대를 왜 통제하고자 하는가?
이게 정말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인가?'
사랑하며 산다고 자신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제 뜻대로 붙잡아두고 싶어 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다음은
부모님을 비롯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람은 모두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음을 맞을 때가 있다.
사람의 죽음을 내가 어떻게 손쓸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원치 않아도 사랑하는 이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고
두렵지 않다면 그 또한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은 각자의 몫이다.
언제까지고 살아있길 바라는 나의 욕심은 현실과 동떨어진 집착이다.
사람은 홀로 태어나 홀로 가는 것이 이치다. 이치를 거스르려 하지 말자.'
이 또한 사람에 대한 집착이었고, 생과 사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사람의 운명까지도 내가 컨트롤하려고 했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 욕심은 상상 초월이었습니다.
셋째,
빈털터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을 마주하자
삶의 모든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사기를 당하고,
도난을 당하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제가 그려졌고,
그 끝은 홀로 죽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말이지요.
이조차도 너무나 터무니없지만, 그보다도 더 비현실적인 마지막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도 모를 깊은 산속에서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거나, 뱀한테 물려 죽는 것.
어릴 때 너무 동화에 몰입해서 아직도 그 잔재가 남은 것인지.
어떻게 이런 두려움이 있었는지, 갑자기 웃음이 터졌습니다.
평범하게 살다 죽는 걸 거부(?)하는 것인지
이 밖에도 온갖 죽음에 대한 시나리오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참혹 그 자체.
공포영화의 장면들에 나를 대입시키는 꼴이었죠.
'그래. 그렇게 죽는다 치자. 그런데 죽음까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가?'
죽음의 방식에 대한 나의 집착을 발견했고, 놓아 보내기로 했습니다.
결국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 가는 나를 상상하며.
두려움을 마주하며 저는 몇 번이고 죽었습니다.
어떤 두려움이든 항상 그 끝은 죽음이었지요.
두려움이 곧 '죽음'이었습니다.
몸과 자아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지요.
그리고 물었습니다.
'나는 이 몸인가?, 이 자아인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영원한가?'
이 모든 게 얼마나 황당무계하고, 나의 두려움이 어쩌면 이리도 터무니없는 것인지
허탈감이 찾아왔습니다.
1+1=2라는 걸 헤매고 헤매다 찾은 기분 같은.
코 앞에 물건을 두고서 저 멀리까지 돌아가 샅샅이 뒤지며 다닌 것만 같은.
스스로 짜고 치는 판 속에 놓여 허우적대는 제가 보였습니다.
사실 두려움에 원인이란 건 없음을 알았습니다. 원인처럼 보였을 뿐이었죠.
내가 나를 파멸로 이끄는 욕망, 집착, 두려움을 '쥐고서' 사건을 만들어낸 것뿐이었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째서
두려움을 위한 두려움,
집착을 위한 집착,
욕망을 위한 욕망
을 가져야 하는가-?'
그렇죠.
두려움, 집착, 욕망을 굳이 왜 원해야 합니까?
왜 삶을 어렵게 만들어야 하지요?
그것들은 '나'가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따로 있었지요.
제가 원치 않았던 것들은
자아의 타고난 속성이었습니다.
한시도 '잃지 않기 위해'
잃고 얻고, 잃고 얻고, 잃고 얻고, 잃고 얻고,
무한 루프를 반복하는.
희로애락으로 이루어진 삶을,
그 루프를 저는 바라보았습니다.
네, 우리는 모두 '바라볼 수 있지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꼭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어.
자유롭고자 한다면 쥐고 있던 걸 내려놓으면 돼.'
'얼마나 얻든 잃든, 어떤 죽음을 맞든
그게 내 자유를 방해할 수 있을까-?'
다시, 자유를 원하는 욕심마저도 내려놓았습니다.
온몸이 풀어져 가고
저는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무'
그제야 모든 건 멈췄습니다.
좋은 삶은, 좋은 죽음은 무엇일까요.
나쁜 삶은, 나쁜 죽음은 무엇일까요.
중요성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께서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두려우신가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변치 않을 정답인 걸까요?
'또 다른 나'들이신 여러분께 따로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으로서,
사랑으로서 존재하시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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