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했지만, 왜 사는지 저도 모릅니다.” 1년 전, 가볍게 쓴 글로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철학 전공자가 어쩌다가 습관 디자이너가 된건지, 종종 질문을 받아서 오늘은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철학에 빠진 17살
17살의 저는 철학에 빠져 있었어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신은 존재할까” 등을 고민했는데, 철학자들이 이에 대해 각자 다른 답을 내놓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3년 내내 “나는 철학과 갈거야” 말하고 다녀서, 비인기 학과에 진학하는 저를 선생님과 친구들은 신기해 했어요.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그 몰입이 더 깊어졌어요. 1학년 서양철학사 시간에는 한 사상가씩 배울 때마다 "세상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구나" 하며 희열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매 수업 시간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밀려와 노트에 손이 부서져라 적어 내려갔고, 그런 제 모습을 본 동기와 선배들은 "너는 수업 시간에 도대체 뭘 그렇게 쓰는 거냐"며 신기해하곤 했어요.
꿈, 그리고 첫 좌절
20살, 철학함의 대중화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게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철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려면 당연히 박사까지는 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고민없이 석사 과정에 지원했죠. 당시 교수님들과 대학원을 함께 준비하던 선배도 "너는 당연히 붙지"라고 말했기에, 저 역시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떨어졌어요. 면접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철학함의 대중화를 하려는데 왜 석사를 해야 하죠?"라는 질문 앞에서 ‘망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던 석사 과정에서 떨어지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플랜 B가 없었거든요.
무기력의 시간
그 후 3개월은 무기력의 시간이었어요. 처음에는 “며칠만 쉬자”며 자고 싶은 만큼 자고, 그동안 못 본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모르니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쉬면 쉴수록 무기력해졌어요.
매일 12시간이상 잤어요. 16시간, 17시간 자는 때도 있었죠. 깨어 있는 시간에도 그저 멍하니 누워 있다 밥만 먹고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어요. 누워있으면 마치 늪에 빠진 듯,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우울했던 것 같아요, 그 때.

독일 유학, 준비와 시작
그러다 문득 꼭 한국에서 대학원을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독일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목표가 생기자 다시 활력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대전의 경북대학교 괴테 어학원에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수강생이 적어 다음 반이 열리지 않아서 매일 KTX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 오전 수업을 듣고 다시 내려오곤 했어요.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대학원 입학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진짜 도전은 대학원 입학 후 시작됐어요. 첫 세미나에서 전체 내용의 20%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겨우 알아들은 부분조차 말을 준비하는 데 오래 걸려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앉아만 있던 날도 많았거든요.
영어로 읽고, 독일어로 말하고, 한국어로 생각하며 3개 국어 사이를 오가는 매일이 버겁고 혼미했지만, 논문을 읽고 쓰는게 저는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당연히 박사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졸업 논문을 제출하고 나자, 박사는 내 길이 아니다 싶더라고요. 연구로는 사람들에게 바로, 직접적으로 이로움을 줄 수 없다는 게 답답했어요.
철학과의 작별
나이는 곧 서른, 이제 뭐 하지 생각이 들었어요. 잊고 있던 10년 전 꿈이 떠오르더라고요. "철학함의 대중화." 혹시 아직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 관련된 논문들을 찾아 읽고, 한국에서 어떤 흐름이 있는지도 살펴봤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어떠한 열정도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도무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것도 귀찮고, 논문을 읽다가도 머릿속에서 뭔가 '뚝'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순간 알 수 있었어요. “이제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억지로 붙잡고 있을 때는 가슴이 답답했는데, ‘아니다’라고 스스로 정리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직업으로서의 철학과는 작별을 고했습니다.
유레카, 습관!
이제 철학 말고 다른 걸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10년 동안 한 거라고는 글을 읽고 쓴 것밖에 없는데, 도대체 뭘하지?"
정말 운이 좋게도,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어느날 아침, 침대에 누워있는데, 누가 정말 머리를 한 대 친 것처럼 '딩-' 하더니 '유레카!' "나 습관을 한 번 파봐야겠어!"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렌의 탄생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리고 "철학함(Philosophieren)"을 습관 디자이너로서의 제 이름에 담았어요. 필로소피렌의 마지막 두 글자, '피렌'으로요. 철학에서 출발해 습관으로 이어진 제 여정을 담은 이름이에요. 그렇게 저는 습관 디자이너 피렌이 되었습니다.

철학에서 습관으로, 저의 길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 길에서 행복해요. 함께 습관 디자인을 한 분들이 “변화가 신기하다”, “하루가 달라졌다”라고 이야기해주실 때마다 행복하고, 또 습관은 아직 연구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신생 분야라 재밌는 것이 정말 많거든요.
여러분도 오래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택해본 적 있나요? 혹은 변화를 고민하고 계신가요?
앞으로 몇 주간은 습관 이야기 말고, 습관 디자이너 피렌으로서의 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어떻게 습관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그리고 습관 디자인이 기존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차근차근 나눠보려 해요. 그리고 왜 습관 디자인이어야 하는지까지도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분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독자분들 덕분에 항상 힘을 얻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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