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때문에 많이 바쁘시겠어요.”
독일에서의 이사는 한국과 다르다. 포장부터 청소, 정리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대부분 셀프로 해야 한다. 심지어 집을 떠나기 전에 새집처럼 페인트칠까지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더 힘들다.
승하는 <습관 디자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참가자였다. 그는 퇴근 후 집안 정리 습관을 만들고 싶어 했다. 우리는 함께 정리 습관을 디자인했다. 퇴근 후 설거지를 한 다음, 정리를 이어서 할 수 있도록 루틴을 구성했고, 정리를 쉽게 만들기 위한 환경도 미리 준비했다. 예를 들어 사용한 물건을 아무데나 두는 것이 아니라 책상 위에 올려놓기로 했다.
다행히 이 방식은 승하의 일상에 잘 맞았고, 퇴근 후에도 무리 없이 정리 습관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정돈된 집을 보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고, 이 만족감이 습관 정착에 큰 동력이 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출장이 잦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텔에서는 설거지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습관이 끊어질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변수에 대비해 '변수 대처법'을 함께 만들었다. “출장으로 호텔에서 머무를 경우, 호텔에 들어와 환복을 하자마자 정리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정리 습관은 빠르게 자리 잡았고, 두 달 뒤에는 하지 않으면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한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순간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습관 디자인이 끝나고 2개월간, 습관이 유지되는지를 관찰하는 ‘습관 추적’ 기간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승하에게 갑작스럽게 더 좋은 조건의 이직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직과 함께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하기 힘든 상황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은 부정적인 감정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잠시 쉬는 것을 권해드렸다. “이사할 때는 정신도 없고, 체력적으로도 힘드니까 지금은 잠깐 멈추셔도 괜찮아요. 이사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작성했던 실행 의도와 환경 설정을 다시 확인하고 다시 이어가 보세요.”
승하는 이사 직전까지는 그래도 할만하다고 하며 정리 습관을 이어갔다. 정리 자체가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사 당일, 나는 습관 추적용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늘은 안오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알림이 울렸다. [카톡]
확인해보니 승하로부터 메세지가 도착했다. ‘했음’이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벌써 정리 다 하셨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아, 안 하려고 했는데, 설거지를 하고 나니까 정리를 해야겠더라고요. 안 하면 좀 허전해서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냥 했어요.”
그 메시지를 보고 나는 깨달았다. 이게 진짜 습관이구나. 아무리 바쁘고 힘든 상황이어도, 하지 않으면 허전해서 결국 하게 되는 것. 내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습관 디자인이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도 작동했고,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 깊이 녹아든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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