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0] 🍄 90년대생 노래가 온다!

안녕하세요, 로이🍄입니다! 이번 주도 잘 살아내셨나요? 저도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을 착실하게 해내면서 또 다가올 미래를 계획해보고 대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 중에서는 설레는 일들도 있고 약간의 불안감이 있는 일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다가올 미래를 걱정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오늘, 지금에 충실해야겠지요.

오늘에 충실해라,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moment), 현재를 즐겨라 등등의 뜻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라는 표현이 있죠. 예전에는 너무 이곳저곳에서 많이 소모된 것 같아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한사랑산악회 아저씨들이 카카오톡 프로필에 한 줄 써 놓을 것만 같은 단어였죠. 그런데 요즘은 이 단어가 삶의 진리처럼 느껴집니다. 괜히 모든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표현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에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후회스러운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에 미리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설교 말씀을 들었어요. 저에게 매우 송곳 같은 말이었어요. 과거에 제가 힘들어했던 일, 그리고 지금도 머리를 아프게 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이런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느라 정작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카르페디엠! 지나간 과거와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지금 이 아름다운 현재를 놓쳐버리긴 너무 아쉽잖아요? 우리 구독자님께서도 너무나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시길 응원합니다.

오늘은 요즘 제가 빠져 듣고 있는 90년대 노래들을 가져와봤어요. 마침 이번 PRIIISM도 딱 90호! 80년대 신디사이저 중심의 레트로 음악 열풍이 이제는 90년대로 옮겨진 것 같아요. 그 시절은 저의 유년기와도 맞닿아 있어 할 이야기들도 꽤 많답니다. 부디 제가 추천드리는 음악들이 구독자님의 카르페디엠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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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 그대 떠난 후

요즘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을 보면 왜 K-pop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지 충분히 납득이 될 만큼 훌륭하다. 수려한 비주얼 만이 아니라 뛰어난 음악성에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제작사의 실력 있는 프로듀싱에 밀도 있는 세계관 설정까지. 풍부한 자원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종합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30년 전이었던 90년대 초는 어땠을까? 당시에는 아마도 지금과 신선하고 차별화된 기획과 프로듀싱을 선보이기에는 자원이 충분하지는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봐도 신선한 퍼포먼스를 발견했다. 바로 이상은의 <그대 떠난 후> 활동이다. 우연히 발견한 그 시절 활동을 보고 "그녀가 정말로 아이코닉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담다디>라는 불후의 명곡으로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고 데뷔할 때부터 이미 그녀는 전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였는데, 본격적인 프로듀싱의 힘을 얻어 탄생한 <그대 떠난 후>는 우리 대중문화계의 첫 '톰보이(Tomboy)'라는 평가를 증명하기에 너무 좋은 모습이었다. 

지금 성수동에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스타일과 특유의 간지, 멋, 힙, 릿이 폭발한다. 분명 그 시절 이상은이 당시 모습 그대로 2023년 지금 데뷔한다 해도 분명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마 여성 팬들에게 많은 팬덤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그대 떠난 뒤>의 다양한 무대 영상을 찾아보며 그녀의 패션을 보는 것도 재미다. 마이클 잭슨을 닮은 듯한 수트에 선글라스를 낀 모습, 스키니 데님에 보더 티셔츠, 루즈핏 데님에 스카잔 느낌의 바시티 재킷, 올 블랙의 루즈한 수트 등등 그리고 이 모든 스타일을 더 멋지게 만드는 가르마 헤어스타일이 화룡점정이다. 본인 스스로 스타일을 꾸몄을까? 아님 스타일리스트가 있었을까? 누구든 간에 칭찬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다. 

* <그대 떠난 후>가 수록된 이상은 2집 앨범은 1989년 12월에 발매했으나, 주된 활동은 90년대 이뤄졌다.

🍄 빛과 소금 - 진한 커피의 야상곡

아마 9살 정도였을까? 이제 막 가요라는 것에 귀가 트였던 나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발라드 음악을 들으면 마음속에 조금씩 조금씩 간지럽게 긁히는 것들이 느껴졌다. 이것이 감성이라는 것일까. 늦은 잠 방에 엎드려 공책에다가 무언가를 막 적어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사랑, 밤, 기억 등등 따위의 단어들을 사용해가며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정확히 알지도 모른 채 가사를 썼다. 물론 엉망진창이었다. 자랑스럽게 부모님께 보여드렸는데, 부모님은 놀라시면서도 웃으며 “너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라고 물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쓴 글은 “너와 함께 이 밤을 보내고 싶어”라는 글이었으니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 이제서야 듣게 된 빛과 소금의 <진한 커피의 야상곡>에서 다시 그 시절의 마음속 간지럼이 느껴진다. 가사는 왜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술이 아닌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를 떠올리고 시를 쓰고, 피아노를 친다. 묵직한 그리움이 아프게 느껴질 정도니까 분명 커피는 풍부한 바디감에 초콜릿의 달콤함과 쓴맛이 어우러졌을 테다. 자정을 갓 넘긴 시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 생각나는 그리움의 대상, 그리고 진하디 진한 커피 한 잔. 치사량이 넘는 감성에 영감이 마구마구 떠오르겠지.

빛과 소금은 1990년 데뷔하여 96년까지 5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퓨전 재즈 음악 등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시도들을 선보였다. <진한 커피의 야상곡> 외에도 그들의 가장 유명한 노래인 <샴푸의 요정>과 최근 유튜브를 통해 어린 세대들에게도 특유의 펑키함으로 인기를 얻은 <오래 된 친구> 등이 있다. 사실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워낙 굵직한 역사를 남긴 밴드였다. 리더인 장기호(Kio)는 김현식,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와 함께 활동했던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였고, 이후 사랑과 평화에서도 잠깐 활동하다 박성식, 한경훈 등과 함께 빛과 소금을 결성했다. 아, 장기호는 그분이다. <나는 가수다>에서의 심사위원으로 등장하셨던 그분!

🍄 뱅크 - 가질 수 없는 너

마지막 곡은 너무도 유명한 곡, 그때 그 시절 아니 지금도 남자들의 노래방 애창곡 뱅크(The Bank)의 <가질 수 없는 너>다. 1995년 뱅크의 데뷔 앨범 [The Bank]의 타이틀곡이었던 이 노래는 발매되자마자 큰 사랑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정말 많은 가수들에게 리메이크, 커버가 되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록발라드 곡으로 남아있다. 사실 나조차도 명성에 비해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었던 노래였는데, 이상은으로부터 시작된 90년대 발라드 디깅 중에 이제서야 곡을 음미할 수 있었다.

당연히 발라드 곡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풍성한 밴드 사운드와 긁히는 보컬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후반부의 샤우팅 코러스가 노래의 특별함과 완성도를 더해주는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코러스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김바다였다. 시나위와 나비효과로 유명한, 우리나라 록 보컬리스트이자 뮤지션으로 유명한 김바다가 바로 뱅크의 원년 멤버로 데뷔했던 것이다. 뱅크는 데뷔 당시 메인 보컬이었던 정시로와 설처용(소속사에서 김바다에게 부여한 닉네임)이 멤버였는데, 데뷔곡 <가질 수 없는 너>의 흥행에 록 음악을 하고 싶었던 김바다는 자신이 계속해서 발라드를 하게 될까 두려워 잠적(...)했다고 한다. 하긴, 이렇게 코러스로 샤우팅을 질러대는 분이 발라드를 하고 싶을리가... 그 뒤로 김바다는 신대철의 콜을 받고 시나위에 합류했다.

이렇게 세 곡을 소개해 보니 모두 이별과 상실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아마 제일은 <가질 수 없는 너>일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야기하며, "헤어진 그를 위해선 남아있는 니 삶도 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보다 더 아리는 순간이 있을까. 아무래도 오늘 밤 진한 커피 한 잔 털어내고, 그 잔에 눈물 좀 채워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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