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1] 🌻 요즘 듣는 국내 인디 가수들의 공통점은 바로...

2월의 내리막이 시작된 지점에 편지를 부치는 숑🌻입니다. 혹시 'hump day'라는 표현을 아시나요? 'hump'는 낙타 혹을 뜻하는데, 중간의 가장 높은 부분을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에 빗댄 말이래요. 주말을 등지고 시차 적응하듯 맞이하는 월요병도 힘겹지만 '수요병' 또한 만만치 않다는 말이겠죠. 2월의 가장 높은 부분을 이제 막 찍고 내려온 지금도 제게는 'hump'의 시기로 느껴집니다.

하여튼 목요일이 왔네요! 2월의 높다란 혹도 이제는 지나쳤고요. 월화수를 지나느라 고된 심신이지만 잘 도닥여서 맘에 드는 주말을 보낼 수 있게끔 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2월의 오르막을 지나 온 구독자님의 요즘은 어땠나요? 저는 '음력 1월 1일이 진짜 새해!'를 외치기 무섭게 현생과 만물에 혼쭐이 나느라 홍삼과 영양제로 하루하루 연명했답니다...

그래도 'hump day'는 이제 지나갔단 사실을 되새겨봅니다. 주말을 상상하기 가장 좋은 시간인 목요일 오후 4시! 오늘은 요즘 자주 듣는 국내 인디 뮤지션 세 팀을 소개하려고 해요. 써 놓고 보니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모두 세 글자 이름이란 사실입니다. (딱히 낚을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럼 같이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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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로로 - 입춘

이 곡을 처음 알게 된 시기는 올해가 갓 시작되었을 때였다. 패딩을 잔뜩 여며야 할 만큼 혹독하게 추운 나날에 접한 <입춘>이란 제목이 왜인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얼어붙은 마음에 누가 입 맞춰줄까요',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와 같이 문학적인 노랫말 곳곳에서 봄을 기다리는 이의 지긋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생의 개화를 맞이할 준비를 고요히 마친 사람의 용기, 결연함 같은 것 말이다.

한로로의 이름은 아마 국내 인디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으리라고 생각한다. BTS의 RM이 작년 여름 인스타 스토리에 추천해 화제가 됐고, 이곳저곳 미디어에서 2023 주목할 신인으로 기사를 여럿 냈으며, 2023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과 '최우수 모던록 노래' 2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니까. (데뷔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인이 데뷔곡으로 후보가 되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

사실 2월 초의 입춘이 지나고도 일과 피로에 치여 날씨의 변화를 알아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저 비슷한 겨울 외투를 꺼내 입고 진자운동처럼 집과 회사를 오가는 날의 연속일 뿐. 그럼에도 이번 주의 어떤 순간에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그닥 시리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내가 계절의 테두리를 밟고 있다는 사실 또한. 힘 있는 목소리로 봄인사를 건네는 한로로의 노래를 곁에 두고 '결국 봄은 온다'는 명백한 문장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 콩코드 - 봄날

공교롭게도 <입춘>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제목이다. 입춘을 지나 봄날을 기다리는 지금 이들의 노래를 들을 인연이었을까? (의미부여 갑) 한로로를 발견한 시기와도 비슷해서, 애정을 갖고 방문하는 서촌의 어느 뮤직 바에 갔다가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뮤지션이었다. 전주부터 간드러진 미성까지 의심의 여지 없이 산울림 시절 같은데 2022년 발매된 음반이란 사실에 기함했다.

알고 보니 콩코드는 89년생 보컬 오지호의 1인 밴드로 이름 뜻부터 레트로의 묘미를 가득 담았다고 한다. 기아의 각진 올드카이자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의 이름. 모두 교통수단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과거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의미가 되겠다는 생각에 정하게 됐다고. 그래서 콩코드의 데뷔 앨범 이름도 [초음속 여객기]다. 또 한번 공교롭게도 이 앨범 또한 2023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부문 후보로 올랐다.

산울림, 신중현, 김정미 시대의 노래를 들을 때 강하게 느껴지는 힙이 있다. 닳고 닳은 '힙'이란 글자 말고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사이키델릭 록'이란 장르에 닿는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에선 레트로와 미래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고고한 다짐이 읽히기도 한다. 초음속 여객기와 같이 과거와 현재, 먼 미래까지 잇는 콩코드의 음악을 앞으로도 기대하려 한다. (같은 앨범 노래 각각이 매력적이라 하나를 꼽기가 정말 어려웠다)

🌻 모임 별 - 2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밴드 모임 별(Byul.org)은 2000년대 인디 음악을 활발히 듣던 이들에게 친숙한 이름일 듯하다. 멤버 구성이며 활동이 뭔가 명확하지 않고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런 신비함 또한 이들의 매력이지 싶다. 조월, 조태상(둘은 형제), 서현정, 이선주, 황소윤(새소년의 그 So!YoON! 맞다)으로 이루어졌고 '비단뱀클럽'이란 이름의 레이블과 출판사도 설립해 잡지도 발행했다.

이 모든 예술적 확장이 그들의 술 모임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든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놀 듯이 예술하는' 아티스트들을 지켜보는 심정이라고 할까. 물론 창작 과정은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므로 어떤 말을 더 얹기보다는 그저 감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모임 별의 공연이 상당히 재밌다는 소문을 자주 들었는데 언젠가 가보고 싶다)

나는 이 곡을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지친 몸을 침대에 뉘였을 때 주로 들었다. 강렬한 사운드로 기력을 끌어올려주는 노래 말고,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담요처럼 나를 도닥여주는 노래 말고, 그냥 무중력 속에 나를 놓아두고 가구처럼 존재하고 싶은 그런 순간에 모임 별의 음악은 적당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사실 이 앨범의 <멍청이들 (CD Only Track)>이란 노래를 조금 더 자주 들었는데, 유튜브를 아무리 뒤져도 음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모임 별의 음악이 맘에 들었다면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앨범 전체를 들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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